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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 내려 7번 출구로 나가면 철공소 거리를 만난다. 철을 이용하여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철을 깎아내거나 녹여서 붙이는 장면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연마기가 쇠를 갈아내면서 튀기는 불꽃과 소음도 이곳의 일상적 풍경 중 하나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싸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도 한다. 특별히 일로 이곳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들를 일이 없을 듯한 곳이다.

 

그런데 이 철공소 거리에 예술가들이 하나 둘 섞이면서 동네 모습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네를 찾기 전에 상상한 것은 예술가들이 동네의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나 거리에 설치해놓은 작품들이었다. 아마 그런 벽화나 거리의 작품들 덕택에 단순히 동네를 찾는 것만으로도 볼거리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이렇듯 벽화나 예술 작품으로 단장을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곳들이 여러 곳 있다. 한 예로 옥동광업소가 폐광되면서 쇠락해가던 강원도 영월의 모운동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데 이러한 벽화가 크게 한몫 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하철권에 있어 찾아가기도 수월한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를 찾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7번 출구로 향한다. 통로가 길다. 긴 통로는 멀리 하나의 작은 소실점으로 수렴이 된다. 하얀 타일로 단장을 하고 이렇게 길게 흐르는 통로를 만나는 경험도 흔치가 않다. 잠시 이 통로를 계속 걸어가면 저 끝의 작은 소실점으로 사라지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7번 출구를 나오자 가장 먼저 거리의 행상이 걸음을 반겨준다. 하지만 이곳에 예술 창작촌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럴 때는 행상도 예술에 슬쩍 묻어가는 것이 좋다. 그러니 거리의 행상은 지금 장사 중이 아니라 작품 전시중이다. 모두 침구류였다. 그러니 나를 반겨준 것은 침구류 행상이 아니라 침구류 전시회이다. 관람료는 따로 받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 구입에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색색의 침구류들이 눈길을 끄는 전시회였다.

 

 

이곳에 문래창작촌이 있음을 알리는 작품들이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화분으로 변신한 신발 속의 풀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신발이 너무 큰 거 아냐?" 풀이 대답한다. "넓고 큰 대지가 내 신발이었는데 크긴 뭐가 커요. 사실은 너무 좁아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거죠." 이상한 동네다 싶다. 풀도 말을 거니까 답을 한다.

 

 

동네의 골목을 돌다 아주 좁은 골목에서 벽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현실에선 담이 길을 막는다. 하지만 예술가는 그 담에 길을 낸다. 예술가가 길을 내는 방법은 좀 독특하다. 담을 무너뜨리고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담을 걷게하여 사람들의 걸음으로 길을 연다. 골목으로는 사람들이 걷고 골목을 따라가고 있는 담에서도 사람들이 걷고 있다. 골목도 길이었고 담도 길이었다.

 

 

또다른 골목에서는 물의 길을 만났다. 원래는 벽이었으나 빗물이 한곳으로 모여 흘러내리면서 그 걸음으로 낸 길이었다. 물이 벽에 길을 내자 어느 날 한 사내가 나타나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흘러들면서 함께 온 사내였다.

 

 

예술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색이다. 그런데 이렇게 색을 칠하면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것 아닐까. 그러나 예술은 그러한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색을 칠하기 전에는 창살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창살은 집을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집이 창살 속으로 갇히면 때문에 답답하다. 예술가들이 그 창살에 색을 칠하는 순간, 사실은 창살이 지워지고 창이 난다. 노란 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창살을 색으로 지우고 있었다.

 

 

연통이 삭아 겨우내 붉은 녹을 토해냈다. 연통이 토해낸 녹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얼룩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가 그 자리에서 겨울의 혹한을 견뎌낸 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몸통밖에 남지 않은 나무였지만 그 예술가가 가지를 살려냈다. 그러자 연통도 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은 그곳에서 일해온 사람들의 세월이기도 하다. 창문의 철망은 슬쩍 건드리면 부서질만큼 심하게 녹이 슬어있다. 그 녹슨 철망엔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때는 빛나는 철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은 짐작하기도 어려울만큼 심하게 녹이 슬어있다. 녹은 빛이 바래 짐작하기도 어려운 우리의 오랜 기억이기도 하다.

 

 

문에 노크가 아니라 노코라고 적혀 있는 문을 만났다. 왜 노코라고 적었을까. 뭔가 내려놓고 두드려야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철공소 거리에서 만나는 가장 큰 예술은 역시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며 일해온 사람들의 철공일이었다. 아저씨의 용접은 단순히 용접이 아니라 요술이 된다. 아저씨에게선 용접봉이 요술봉이다. 요술봉을 뻗어 용접할 부위에 대고 아저씨는 속으로 '수리수리 마수리 야잇, 붙어라'라고 주문을 외우신다. 그러면 불꽃이 일고 쇠가 녹으면서 감쪽같이 붙게 된다. 물론 주문이 서투르면 잘 붙질 않는다. 아저씨의 마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자 빛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용접을 하는 아저씨는 말이 없다. 아저씨는 아무 말이 없는데도 아저씨의 앞엔 빛이 있었다. 빛이 반짝일 때마다 무엇인가가 창조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철공소의 일은 쇠를 깎아내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쇠는 아저씨의 손끝에서 제 몸을 고집하지 않았다. 무수한 부스러기를 내려놓으면서 쇠는 모양을 갖추어갔다. 아저씨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쇠가 스스로를 내려놓고 쓸모를 갖추게끔 설득하는 선수였다.

 

 

찾은 날이 공휴일이라 쉬는 곳들도 많았다. 내려놓은 문이 온갖 풍파를 헤치고 오늘에 이른 세월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낡고 오래된 철공소가 아니라 마치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 오늘에 이른 거함같았다. 철공소 마을의 예술은 예술가들의 몫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오랜 세월 일해온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철공소 마을의 예술은 철공일이었다.


태그:#문래동 철공소 거리, #문래창작촌, #예술과 삶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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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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