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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과 잔디밭 위애서 잠을 자면서 게지공원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천막과 잔디밭 위애서 잠을 자면서 게지공원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 엄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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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이하 현지 시각)로 이스탄불 게지공원 시위가 11일을 맞았다. 지난 5월 28일 시작된 탁심광장 뒤편 게지공원 시위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잔치 분위기로 변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뷸렌트 아른츠 터키 부총리의 사과 이후 탁심광장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은 사라졌지만, 개발 철회가 이뤄질 때까지 게지공원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은 게지공원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변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에르도안 총리가 귀국에 앞서 6일 튀니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게지공원 개발을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미 발표된 계획도 못 하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왜 계획 당시에는 말을 안 했습니까?"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말인 8·9일, 대규모 집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자원봉사로 공원 질서 유지하는 시민들

게지공원을 청소하는 시민들,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게지공원을 청소하는 시민들,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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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된 쓰레기를 운반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수거된 쓰레기를 운반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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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9시, 총리 퇴진 주장과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의 시발점이 됐던 게지공원을 찾아가 봤다. 게지공원에서 천막과 잔디밭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시민들과 공원 주변을 청소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세 명이 짝을 이뤄 공원 여기저기서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청소하는 시민들, 쌓인 쓰레기를 운반하는 시민들. 이들은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민과 무료배급을 위해 가져다 놓은 터키 국민빵, 시미트.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민과 무료배급을 위해 가져다 놓은 터키 국민빵, 시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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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두 손 가득 빵과 음료를 운반하는 시민들과 가방에서 음식물과 수건 등 필요 물품을 꺼내놓는 시민들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시민들의 얼굴에는 시위의 긴장감보다는 기쁨이 넘쳐 보였다. 시민들이 자원해서 설치·운영하는 자원봉사소마다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이들과 음식 등을 나르는 이들이 가득했다.

게지공원에 나온 교사 "이게 살아있는 교육"

가정에서 직접 준비한 음식을 가져다 무료 음식가판대에 설치하는 시민의 모습.
 가정에서 직접 준비한 음식을 가져다 무료 음식가판대에 설치하는 시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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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자원해서 운영하는 자원봉사소 가운데 하나인 무료 음식배부처에 가봤다. 터키인들의 주식은 빵이다.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가지고 딸과 함께 나온 시민, 자신이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며 가방에서 꺼내는 청소년, 두 손 가득 무거운 음료수를 운반하는 시민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무료 음식배부처에는 배고픈 시민보다 음식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누구든지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음료수와 빵이 가득 담긴 손수레도 자주 보였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우유를 권하는 청소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우유를 권하는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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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여기저기에서는 손에 음료수와 빵·과일을 들고 다니며 권하는 시민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자원해서 준비한 음료수와 빵·과일들이다. 시위 지도부는 없다. 모든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석한 것이다.

현장에서 열심히 아침 빵을 준비하고 나눠주고 있는 공립고등학교 교사를 만났다. '공립학교 교사가 근무 시간에 반정부 시위에 동참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도 함께 나왔습니다"라며 "이것이 살아있는 교육입니다, 보세요, 학생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라고 말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빵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교사와 고등학생들의 모습에서 지난 며칠간의 긴장감이 아닌, '터키의 봄'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의료품 그리고 책

진료상담과 치료 및 약품 배급을 하는 곳이다.
 진료상담과 치료 및 약품 배급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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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지공원 여기저기에는 응급치료소도 설치됐다. 의료 전공 대학생들과 교수들 그리고 의사들이 자원해 참여했다. 경찰과 충돌이 없는 현재 상황은 의약품을 헌납하는 시민들의 수가 환자 수보다 더 많았다.

응급치료소에서 치료만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기초 의약품들을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무료로 배부하고 있기도 했다.

"시위 중에도 독서해야 한다"며 무료도서관에 헌납하기위해 책을 들고 온 시민들의 모습.
 "시위 중에도 독서해야 한다"며 무료도서관에 헌납하기위해 책을 들고 온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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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게지공원 한쪽에는 시민들에 의해 무료 도서관이 개설됐다. 저마다 나누기를 원하는 책을 가져와 도서관에 기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은 책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시민들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

이른 아침 책을 잔뜩 들고 온 한 시민은 "국민이 정부에 속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며 "시위 중에도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의 거짓말에 속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민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 고맙다"

탁심광장에서 터키 민속춤 할라이를 추는 시민들이다. 이 춤은 한국의 강강술래와 닮았다.
 탁심광장에서 터키 민속춤 할라이를 추는 시민들이다. 이 춤은 한국의 강강술래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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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들은 춤과 노래 그리고 시를 좋아한다. 게지공원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춤판이 열리고 있었다. 일부는 터키 민속춤 중의 하나인 할라이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이 춤은 한국의 강강술래랑 비슷하다.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때로는 둥근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도 한다. 이 춤의 특징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과 인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원하면 언제든지 춤판에 참여할 수 있다.

할라이 전통춤은 동일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서 하나 됨을 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춤이다. 이 전통춤에는 영웅이 없다. 뛰어난 기교나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선두에서 춤의 흐름을 인도할 수 있고, 언제든지 선두 인도자를 교체할 수 있다. 평등과 민주, 화합과 강력한 하나 됨을 전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춤이다. 보고 있으니 흥이 넘친다. 공원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할라이 춤판이 열리고 있었다. 음율과 춤사위에 시민들이 하나가 되고 있었다.

게지공원 내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백발 할머니가 보인다.
 게지공원 내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백발 할머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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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한 할머니가 자원봉사하는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청소년들의 손을 잡고 "여러분들을 격려하러 나왔습니다, 시민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라며 "시민이 가만히 앉아 복종만 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격려를 받은 청소년들은 할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껴안으며 감사를 표했다.

터키는 아프리카와 중동국가에 '개발과 성장' '민주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본보기가 됐던 나라다. 터키에 찾아온 '6월의 봄'은 단지 이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덧붙이는 글 | 엄규수 기자는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나톨리아 문명과 터키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태그:#터키, #게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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