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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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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내달 4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청와대는 취임 100일을 조용하게 맞을 예정이다. 역대 정권이 관례적으로 해오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은 3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하며 지난 100일간의 소회를 간략히 밝히는 정도의 '행사'만 진행한다.

청와대는 '박근혜 스타일'을 이유로 들었다. 박 대통령이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싫어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29일 미래창조과학부 주도로 진행될 예정이던 창조경제 비전선포식을 취소시켰다. 박 대통령은 "보여주기 행사를 지양하라"고 지시했다. 자신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국민 앞에 선보일 수 있는데도 이벤트 성격을 문제 삼아 제동을 건 셈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화자찬하지 않고 향후 국정운영으로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민 앞에 서서 국정성과를 설명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 및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다. 특히 국민이 지상파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과 내·외신 기자들의 일문일답도 진행된다. 국민은 주고받는 질문 속에서 대통령의 '맨 얼굴'을 지켜볼 수 있다.

즉, 단순한 홍보용 행사가 아니라 소통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00일을 되돌아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인왕산 개방·칼국수 자랑했던 YS... "자유로운 일문일답 생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10년 8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10년 8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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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100일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성공적으로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사정 바람을 일으켰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에 대한 전격적인 숙청 등 군 개혁을 단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6월 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자신의 성과를 세세히 소개한다.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하고 안가를 철거한 것을 두고 군사독재 이후 첫 '문민(文民)정부'를 강조하고 나섰다. 또 청와대 식단을 칼국수와 설렁탕으로 바꾸고 청와대 운영예산의 20%를 삭감한 일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윗물맑기운동'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선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과 국민이 밑으로부터 받쳐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며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의 속에 하나가 되고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높은 도덕성을 실천하는 선진국, 7천만이 하나 되는 평화적으로 통일된 조국" 등을 '신한국'이라 칭하며 이를 향해 "우리 모두 '제2의 건국'을 한다는 각오로 함께 전진하자"고 호소했다.

자유로운 일문일답도 진행됐다. 신당창당설 및 개각 여부, '개혁 사정'의 정치보복성, 금융실명제 실시시기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당시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질문내용과 질문자 순서까지 사전에 미리 짜놓고 시작했던 옛날의 그 청와대 회견에만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자유로운 일문일답이 오히려 생소하기조차 하다"고 평했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초기 100일을 성공적으로 보냈다고 평가받는다. 김 전 대통령은 IMF 사태 속에서 집권해, '외환위기 극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재벌 및 금융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80.5%라는 국정 지지도를 자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5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이같은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금융과 기업 등의 구조조정을 포함, 국내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에 전념해 금년 말까지 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겠다"고 말했다. 또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겠지만 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라고 맡기는 것은 아니다"며 "정부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는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력한 경제개혁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일문일답 역시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정계개편 등 여러 길을 통해, 또 저와 여당을 지지하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도 성심껏 협력하고 봉사함으로써 지역대립 문제를 시정해 나가겠다"며 자신의 정국 구상까지 설명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 여부로 논란이 제기됐던 경제청문회 실시 여부에 대해서도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확답했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전면개혁이 궁극적으로 재벌해체 아니냐", "정부가 기업의 협조융자 및 퇴출기업 선정에 간여하고 있다"는 날선 지적도 쏟아졌다.

'촛불정국'으로 두 번 반성문 쓴 MB... "뼈저린 반성하고 있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전임자들에 비해 취임 초기 힘든 100일을 보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6월 46.8%의 지지율을,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21.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6월 2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임 초기 국정혼선에 대한 비판을 수용했다. 그는 "'모두 잘했다'고 말씀드리지 않겠다, 시행착오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정착시키는 데에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100일 동안 우리 사회에서 빚어진 여러 현안들 대부분이 (권력 중심의 권위주의 정치로부터 국민중심의 참여정치로의 전환 등의) 이 같은 전환에 따른 진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저와 정부의 잘못도 적지 않았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고쳐가겠다 그러나 이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전환과정에서 빚어졌던 일부의 혼선과 시행착오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해 나가겠다"며 "하루 속히 국정시스템 구축작업을 마무리 하고 적어도 취임 6개월쯤부터는 국민 여러분과 약속한 사항들을 가시적으로 진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일문일답에서도 대북송금 문제나 신당문제, 측근·친인척 비리 의혹 등 민감한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대통령의 다변·직설 화법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평소 대중적 집회와 강연을 좋아하다 보니 대중적 표현을 버리지 않은 것이 '쪽수', '깽판'식으로 종종 나온다"고 해명했다.

시민들이 지난 2008년 6월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관련한 특별 기자회견을 TV로 통해 시청하고 있다.
 시민들이 지난 2008년 6월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관련한 특별 기자회견을 TV로 통해 시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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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은 더욱 참담한 상황 속에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부자)' 인사로 본격 출범 전부터 빈축을 샀던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파동으로 촛불정국을 맞이하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께 생계형 민생 사범을 중심으로 약 280만여 명을 사면하고 취임 116일인 2008년 6월 19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서 이 대통령은 다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5월 22일 대국민담화에 이은 두 번째 '반성문'이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다"는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때 나왔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한 달 전 대국민담화보다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각총사퇴를 초래한 쇠고기 파동과 관련,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한다"면서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도 포기 가능성도 내비쳤고, "첫 인사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국민의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도록 인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다짐했다. 일문일답에서는 ▲ 화물연대 파업 ▲ 인사개편 ▲ 공기업 민영화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두루 설명하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조용히 100일 맞이한다? 참 머리 좋은 것 같다"

결국, 역대 대통령 모두 자신의 취임 초기 평가와 관계없이 취임 100일을 맞아서 국민 앞에 서서 국정성과를 설명하고 안팎의 평가를 수용한 셈이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전례없는 '조용한 100일'을 주문한 것은 "생얼을 보여주기 싫어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박 대통령은 지금 국민과 '대화'해야 할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28일 국무회의 결과, 140개 국정과제를 최종 확정했고 그에 따른 추진전략 및 계획을 보완·확정했다. 대선 당시 공약에 대한 '공약 가계부'도 확정한 상황이다. 이 모든 것들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사항이다.

더군다나, 장·차관급 고위직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사태로 박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여성 인턴을 성추행 하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참모들이 국민 앞에 나서 '사과'했다.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셀프 사과' 논란까지 일으켰다. 

다만, 박 대통령은 통상적인 '대국민사과' 대신 지난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번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과 남북 갈등 고조 등으로 국정이 정상적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서 '취임 100일'에 내놓을 성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에서 '조용히 맞이하겠다'고 했는데 머리가 참 좋은 것 같다"며 "솔직히 박근혜 정부에서 지금 뭘 내놓을 게 없는 거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역대 정권 중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무라도 하나 내놓지 못한 대통령이 있었나,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부 취임 초기부터 인사난맥상을 보이더니 결국 100일을 맞고도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권 일각도 낮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29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 "(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최소한도 'B-'는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면서도 "인수위 때부터 인사실패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헤매다가 100일이 됐다 이렇게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고 지적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9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윤창중 성추행 사건' 등을 거론하며 "곧 취임 100일이 돼 한 말씀 드리면 사회분위기 쇄신에 실패했다고 본다"며 "새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건 인사를 통해서다, 지금까지도 주요 공기업의 인사도 못하고 있다, 대대적인 사회 바로세우기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태그:#박근혜, #취임 100일,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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