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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물소리길
 양평 물소리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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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중앙선 전철은 사람들로 붐빈다. 용산역에서 출발해 용문까지 가는 중앙선 전철을 다음 역인 이촌역에서 탔는데, 내릴 때까지 50여 분을 서서 갔다.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승객이 역마다 올라타는데, 갈수록 많아진다.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양평 물소리길을 걸었다. 물소리길은 제주올레팀이 3개월간 답사를 해서 만들었다고 해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길로 2개 코스로 되어 있다. 1코스는 출발지가 양수역이고, 도착지는 국수역으로 전체 길이는 13.8km. 2코스는 국수역이 출발지, 도착지는 양평 전통시장이며 전체 길이는 16.4km. 이번 도보여행은 길친구 하라쇼가 동행했다.

전철 안에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양수역에 내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역 앞에서 잠시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샀다.

"물소리길 걸으러 많이 오나요?"

편의점 쥔장에게 물으니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양수역 앞에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나 리본을 보지 못해 쥔장에게 가는 길을 물으니 가르쳐 준다. 하늘색과 벽돌색 화살표가 길바닥에 표시되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날씨가 좋았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채색된 것처럼 펼쳐져 있다. 낮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갈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땡볕이 될 거라는 얘기다. 그래도 숲으로 들어가면 한낮의 더위는 온전하게 피할 수 있으리라.

길은 숲에서 숲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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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길이라서 그런지 리본이나 표지판이 곳곳에 아주 잘 붙어 있거나 설치되어 있었다. 경사가 진 곳에는 바닥에 매트를 깔아서 미끄러지지 않게 해놨다. 제주 오름에 가면 이런 매트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물소리길에서 보니 새롭게 느껴졌다. 한데 요즘 이런 매트를 '길'에 까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오전 10시 20분경, 양수역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 지도를 프린터로 출력해놓고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물소리길 1코스는 길 곳곳에 리본이며 표지판이 촘촘하게 세워진 편이라 지도가 없어도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다만 리본은 걷다가 자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어 코스를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표식을 잃어버려 한 2km쯤 더 걸었다. 13.8km로는 걷는 양이 부족한 모양이라면서 같이 웃었더랬다.

길은 숲에서 숲으로 이어졌다. 숲길로 들어서면 나무들이 뿜어내는 은은한 나무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푹신한 흙길은 발걸음을 내내 가볍게 했다. 연한 녹빛 나뭇잎들을 보면서 걷노라면 그야말로 눈까지 맑게 씻겨지는 것 같다. 정찬손 묘를 지나고, 부용교를 지나 폭이 넓은 징검다리(?)까지 건넜다. 물소리가 들리는 길이다.

양평 물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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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반쯤 길 한 모퉁이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라쇼가 싸온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인지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고, 한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1시간쯤 쉬었던 것 같다.

"여기에 물 붓는 건 내 호박식혜에 대한 모독!"

1시간쯤 걷고 나니 길 옆 전신주에 호박식혜라고 쓰인 것이 보인다. '방통아줌마 호박식혜'란다. 허름한 집인데 막걸리에 부추전, 도토리묵까지 판다고 써 있다. 시원한 호박식혜나 한 사발 먹자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먼저 온 손님들이 있다. 그들은 막걸리 병을 막 따던 참이었다. 지평막걸리인데 아주 맛있다는 감탄사가 들린다.

쥔장 '방통아줌마'에게 호박식혜를 달라니 노란색 액체가 담긴 작은 페트병을 가져다준다. 반쯤 언 상태다. 우와, 시원하겠다. 종이컵에 따라 단숨에 마셨다. 달고 시원한 액체가 걷느라 흘린 땀을 순식간에 식혀준다. 페트병안에 든 액체를 전부 따라 마셨더니 얼음만 남았다. 거기에 물을 부어서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했더니 방통아줌마가 펄쩍 뛰면서 병을 빼앗는다.

"여기에 물을 붓는 건 내 호박식혜에 대한 모독이야."

방통아줌마는 얼음만 남은 페트병에 다시 식혜를 담아서 내준다. 덤으로 더 준 것이다. 인심이 푸짐해서 좋네요, 하면서 웃었다.

호박식혜와 물이 든 아이스박스
 호박식혜와 물이 든 아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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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자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손님들이 내게 막거리를 마셔보라면서 종이컵에 가득 따라 내준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막걸리는 아주 진한 맛이다. 지평막걸리가 원래 유명하단다. 막걸리가 원체 맛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걸으면서 땀을 많이 흘린 때문인지 막걸리는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방통아줌마는 호박식혜를 잘 만드셨단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호박식혜를 만들었는데, 물소리길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만들어서 팔아야지, 마음먹었다. 설탕을 안 넣고 맛을 내려고 했지만, 호박 특유의 맛 때문에 도무지 안되겠더란다. 그래서 설탕을 조금 넣어서 지금의 맛을 만들어냈다는 게 방통아줌마의 설명이다.

양평 물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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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길에서 호박식혜와 막걸리를 팔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면서 방통아줌마는 호탕하게 웃었다. 손님들이 몰려오니 화장도 하고 멋을 내려고 했는데 "그런 컨셉이면 안 된다"고 해서 소박한 이미지로 관리를 하고 있으시다나. 아주 재미있는 분이었다.

평일에는 그럭저럭 손님이 있고, 주말에는 조금 더 많다고 한다. 물소리길 개장하는 날에는 4천 명이 몰린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걷는 사람들이 분산돼서 한 2천 명 정도 방통아줌마네 가게 앞을 지나갔단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죄다 가게로 몰려온 건 아니란다. 단체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가기 바쁘고, 몇 명이 온 사람들이 여유롭게 들러서 막걸리도 마시고 식혜도 먹고 간다는 거다.

물소리길 1코스는 중간에 식당이 없다고 해서 점심을 준비했는데 간단하게 간식만 준비하고 다 걸은 뒤에 방통아줌마네 들러서 막걸리에 부추전을 먹어도 될 것 같다. 아니면 신원역 부근에 식당이 많으니 거기서 매식을 해도 될 것 같다.

시원한 호박식혜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한동안 방통아줌마와 수다를 떨었다. 방통아줌마는 벌써부터 매스컴을 탔다면서 실린 매체 자랑을 하신다. 방통아줌마네 가게, 물소리길의 명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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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길 1코스 도착지는 국수역 아닌감?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나

몽양 여운형기념관을 지났다. 조금 더 걸으니 신원역이다. 신원역에서 길을 건너면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진다. 강이 펼쳐지니 눈은 시원한데, 땡볕이다. 땡볕 아래를 걷는 게 고역이라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강변길은 육교를 건너면서 끝났다. 육교를 건너 남한강 자전거길로 들어섰는데, 이정표를 제대로 보지 않고 다시 신원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물론 한참을 걸을 때까지도 몰랐다. 길은 외줄기니 그 길 말고는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걷다보니 표지판이 없다. 리본도 없다.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코스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간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 걷는 이들보다 자전거를 타고 양수리를 지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길 위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국수역으로 가는 방향을 물었더니 "집이 어디냐"고 물으신다.

양평 물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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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우리가 걷는 방향으로 가면 신원역이 나올 거란다. 그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물소리길 1코스의 도착지는 국수역이 아닌감.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나, 가다가 살피니 육교를 건너서 자전거길로 들어서면서 표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시가 있는데 나나 하라쇼 둘 다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도곡터널
 도곡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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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을 헤매느라 2km쯤을 더 걸었다. 그것도 땡볕 아래 자전거길을. 그래도 도곡터널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해진다. 터널 안에서만 맴도는 바람이 있는 모양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선풍기를 돌리는 것처럼 바람이 분다. 터널 덕분에 땡볕 아래를 걷느라 흘린 땀이 식었다.

국수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25분. 양수역에서 출발한 지 5시간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제로 걸은 시간은 3시간 반 정도? 그것도 2km 정도를 더 걸었음에도 그것밖에 걸렸다. 우리는 대충 15km를 걸었다, 고 계산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걸음을 재촉한 것도 아니다. 쉬엄쉬엄 느긋하게 걸었다.

길의 난이도는 중하 정도. 처음 걷는 사람이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땡볕인 날이라면 양수역에서 출발해 신원역까지만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양평물소리길] 13.8km, 난이도 중하.
양수역 - 용담마을 입구 - 정창손 묘 - 부용교 - 이덕형 신도비 - 부용산 약수터 - 몽양 여운형기념관 - 신원역 - 굴렁쇠휴게소 - 국수역

양평 물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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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물소리길, #양평, #양수역, #국수역, #호박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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