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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갑'의 수난시대

이쯤 되면 '을'의 전성시대다. 아니, '갑'의 수난시대라는 표현이 옳겠다. 비록 청와대 윤창중 전 대변인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여 '갑'에게 쏠린 시선들을 빼앗으려 했지만 아직도 인터넷에는 그동안 설움과 압박을 당해왔던 '을'들의 피맺힌 이야기가 차고 넘쳐나고 있다.

'갑'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을'들을 쥐어짜 왔는지, '갑'들이 어떻게 '을'을 밟고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한국 사회의 '슈퍼 울트라 초 갑' 삼성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 없이 만만한 배상면주가나 남양유업만 문제 삼냐는 호기로운 꾸짖음까지.

덕분에 현재 '갑'들은 이래저래 분주하다. 혹여 어떤 개념 없는 '을'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지 입단속을 시켜야 하며, 또는 이미 사건이 불거졌다면 남양유업 등처럼 못 이기는 척 티 나게 사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로는 딴 짓을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갑'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 고개숙인 남양유업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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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직 영업사원의 입장으로서 확신하건대 그들의 석고대죄는 어디까지나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특히 '밀어내기' 관행에 대한 사과는 한낱 쇼에 불과하다. 물론 '을'에 대한 압박 등은 예전보다 약해지겠지만 소위 '밀어내기' 관행은 조금 달라진 형태로 이어질 것이며, 또 다른 '을'이 양산될 것이다.

이는 최근 '갑'의 횡포로 처음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포스코 임원의 소위 '라면' 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라면을 빨리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무원의 뺨을 때린 임원의 경우는 회사에서의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일반적인 대인관계에도 적용시켰던 그 개인의 책임이 크지만, 소위 '밀어내기'는 개인의 품성 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쌍욕을 퍼부은 영업사원 개인이 비난을 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갑을 관계를 떠나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양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좀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업사원이 그와 같은 욕을 하면서까지 '밀어내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갑'의 '을'에 대한 횡포 자체를 넘어서, 왜 '갑'이 그렇게까지 하느냐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갑'들은 '을'들에게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하는 것일까?

영업사원의 비애

매년 10월쯤 되면 각 회사들은 바쁘다. 다음 년도 사업계획을 짜기 위해서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매출 부분이다. 매출이 증가해야 이윤이 늘고 그래야만 사장 이하 직원들 혹은 사장만의 소득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성장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숙명.

비극은 바로 이때 발생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지난해 매출 실적을 기반으로 다음 년도 계획을 짜게 마련인데, 많은 회사들이 이와 관련하여 주먹구구식으로 매출 계획을 세운다. 영업사원의 계획 및 예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경영진의 바램이 매출 계획으로 영업사원에게 할당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느 회사가 올해 100억 신규매출을 일으켰다고 하자. 경영진들은 똑같은 자원을 투자하고도 다음 해 신규매출로 100억 이상을 기대한다. 영업사원들의 영업력이 1년 동안 일하면서 그만큼 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매출의 증가 분이 영업사원의 영업력을 훨씬 초과했을 경우이다. 적지 않은 회사가 합리적인 수치를 내놓기 보다는 영업사원들의 의지를 운운하며 과도한 계획을 할당시킨다. 올해 100억 신규매출을 일으켰다면 매출 100% 증가를 가정하여 다음 해에는 200억의 신규매출을 잡는 식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며 국가 경제 성장률 연 7%대 당시의 기업문화를 여전히 강조하는 그들.

특히 이는 회사가 클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데 년 매출 10억을 20억으로 늘리는 것과 100억을 200억으로 늘리는 것은 그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그만큼의 자원을 투자하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투입하는 자원보다 더 큰 매출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영업사원은 이와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가 요구하는 만큼 열심히 영업을 해도 계획이 그 이상을 넘어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영업사원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매출 미달성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자신이 끌어안든지, 아니면 강제로 자신의 실적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든지.

결국 이번에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어내기'는 후자의 경우로서 이와 같은 관행의 구조적인 산물이다. 월 마감 전에 매출 실적을 맞춰야 되는 영업사원이 자신의 '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리점에게 압력을 넣어 강제적으로 물량을 받아들이게 한 사건이다.

경영진이 세우는 얼토당토 않는 매출 계획에 항거할 수 없는 영업사원이 가장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 자신의 부담을 전가시킨 것이다. 그리고 경영진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으레 그러려니 방조한다. 어떻게든 이윤만 늘어난다면 다른 건 상관없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와 같은 현상이 결코 남양유업이나 배상면주가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출 계획을 경영진의 바램대로 비합리적으로 세우는 기업은 그들 말고도 많으며, 그들 조직의 영업사원은 같은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업체의 경우는 하필 '을'이 대리점이라는 계약 주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재수없는 경우일 뿐, 업종에 따라서는 영업사원 자신이 가장 약한 고리가 되어 불합리한 상황을 감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철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자동차를 바꾸고, 출판사 판매원이 어쩔 수 없이 자사 전집을 구입해 싼 값에 중고로 내놓고, 보험사 직원이 당장 자신의 친척들 보험을 재설계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니던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이 '밀어내기'의 또 다른 형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밀어내기' 하는 '갑'들을 잡아먹을 듯 비판하지만, 며칠 뒤 언론들은 특정 기업의 매출이 사상 최고를 찍었다면서 여전히 호들갑을 떨 것이고, 사회는 그 장단에 맞추어 수치에 가려진 그늘은 보지 않은 채 또 성장 제일주의를 외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 천민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다.

성장만이 살 길인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되고 있는 죽음의 '밀어내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선 이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성장'에 대한 신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밀어내기'가 일어나는 원인은 수요와 상관없는 공급의 과잉 때문인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장 지상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성장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을 깨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이 시대의 성장주의가 승자독식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등만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에서 성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1등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할 때, 기업은 매출을 거짓으로라도 늘리려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착취마저도 양육강식의 논리로 합리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극복을 위해 모든 경제적 주체가 공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과한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경제적 주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갑'과 '을'이 굳이 자신만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사회를 그려봐야 한다.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밀어내기'를 근절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와 같은 움직임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최신 저작 <피로사회>에서 현재 사회를 성과 사회로 규정하면서 사회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타자착취의 시대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기착취시대로 진화한다고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의 성과를 이루는데 있어서 타자착취 보다는 자기착취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론인데, 그의 규정에 따르면 소위 '밀어내기'는 전형적인 타자착취의 수단으로서 아직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발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주장이 100% 옳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밀어내기'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숙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밀어내기'는 전형적인 타자착취의 수단으로서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관행이다. 한병철이 이야기 하듯 그것은 아직 덜 성숙한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야만적인 방법일 뿐이다.

이젠 99%의 '을'이 '갑'에게 말해야 하는 시점이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태그:#남양유업, #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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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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