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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닭 천여마리를 야외에 방목했시유. 근디 집에 한 번 넣으려면 생쇼를 해야 하고, 한두 마리가 서로에게 밟혀 죽더라고유. 또 날씨가 추우면 저것들이 밖에 나가지도 않대유. 그래서 방목은 포기하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방목하고 있어유."

안성 미양면에서 유정란 닭 1000마리를 키우는 송창호(64)씨의 말이다. 지난 14일, 거기를 방문했을 때 코를 의심하게 했다. 닭 농장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그건 닭똥을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서라고 했다. 헉? 똥을 치우지 않아서라고? 닭똥을 치우지 않으면 닭은 자신의 똥에서 먹이를 찾느라 헤집는단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똥이 숙성되면 마치 흙가루처럼 고와진다고 했다. 

자신의 농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송창호씨. 그는 자신의 노년을 지난 삶을 바탕으로 이 농장에서 재밌게 디자인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이 이일을 한다기 보다 노년을 즐기려고 이일을 한다고 했다.
▲ 송창호 대표 자신의 농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송창호씨. 그는 자신의 노년을 지난 삶을 바탕으로 이 농장에서 재밌게 디자인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이 이일을 한다기 보다 노년을 즐기려고 이일을 한다고 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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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닭대가리'라고 할 수밖에

"야생짐승(쥐, 두더쥐 등)이 하우스 내에 출몰하면, 닭들은 대항을 못해유. 우왕좌왕 하다가 한곳으로 몰리쥬. 한곳으로 몰리고 또 몰려 탑을 쌓듯 하쥬. 그러다가 서로에게 밟혀 수십마리가 죽어유. 그걸 '압사'라 하쥬. 이러니 내가 한시라도 마음을 놓것시유."

부화장에서 바로 이사 온 병아리들이 있는 날은 아침 5시면 일어나 돌본다. 저녁 7~8시까지 살핀다. 그것도 모자라 한밤중에도 가끔 들여다본다. 한시라도 마음을 못 놓게 하는 녀석들이다.

"좋은 곳으로 옮겨 주려고 몰이를 하면 꼭 몇 놈이 옆으로 새고 난리유. 그러다가 서로에게 밟혀 몇 마리가 죽기도 하고. 개, 소, 돼지 하다못해 거위조차도 주인말대로 몰이를 할 수 있지만, 닭은 안 돼유. 주인 말 절대 안 들어유. 어떤 때는 그냥 덤벼든다니께유. 이러니 닭대가리 하지 않것시유. 허허허허허."

그래도 닭을 다스리는 비결이 있을 거라 싶어 묻자 그는 당장 대답한다.

"없시유. 그냥 참는 거쥬. 저 놈들은 그런 놈들이다 해야지. 자꾸 다스리려면 열불 터져서 못혀유. 하하하하."

아, 맞다. 닭대가리였지. 하하하. 우린 이런 맘으로 함께 웃었다. 그는 '닭대가리'들과 동행하면서 인생 도를 닦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과도 의사소통이 너무 되지 않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알 낳기 직전 닭이 마치 처자처럼 예뻐유"

여기엔 외부인은 절대 출입금지라 했다. 항생제를 쓰지 않는 곳이니 전염병을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기에 1천마리 정도의 닭들이 자시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진 촬영도 송창호 대표에게 부탁해 찍어달라고 한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 닭집 내부 여기엔 외부인은 절대 출입금지라 했다. 항생제를 쓰지 않는 곳이니 전염병을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기에 1천마리 정도의 닭들이 자시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진 촬영도 송창호 대표에게 부탁해 찍어달라고 한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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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첫 번째 산란하기 직전이 제일 예쁘러다구요.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고, 얼마나 예쁜지. 꼭 젊은 처자 같다니께유. 하하하하."

그의 말은 '계란으로 보답하는 닭의 보은행위가 더 예쁠 수도 있겠다'는 말인 듯싶어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 닭들은 '유정란 생산'이 양육 제일 목적이니까.

"닭이 어느 정도 연령대인지 척보면 알아유. 나이 든 닭은 자세히 보면 주글주글하고, 젊은 닭은 피부가 벌써 탱탱혀유. 사람과 똑같다니께유."

닭이 2년 정도 나이를 먹으면 산란율이 50%로 저하된다. 털도 빠지기 시작한다. 이때, '강제환우'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닭을 15일 정도 금식을 시키는 방식이다. 죽는 닭은 죽겠지만, 살아난 닭은 다시 털이 난다. 병아리는 4~6개월을 길러야 알을 낳지만, '강제환우' 닭은 60일 정도면 다시 알을 낳는다

그런 '닭대가리'들과 동행하는 이유

그는 안성 지역에서 오랫동안 동물병원 원장을 했다. 안성에선 웬만한 사람들은 그가 수의사라는 걸 안다. 그동안 남의 집 동물을 살려주고 살아왔던 게다. 이제는 그가 남의 집이 아닌 '나의 집' 동물과 살아보려는 거다. 

처음엔 소를 시작하려다 닭으로 전환했단다. 그것도 유정란을 낳는 닭으로. 그건 오랫동안 수의사를 하면서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양육시스템을 고민해온 결과라고 하겠다. 양육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로 얻어지는 고기든 알이든 사람 몸에 유익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또한 유정란이라고 해서 턱없이(?) 비싸게 받는 일부 대기업의 유통구조에 조그만 대항이라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그래서 그의 농장은 싸게 판다). 누구나가 몸에 좋은 유정란을 먹을 권리가 있음을 그는 말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도 펼치고, 몸에 좋은 것을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도 있고, 노년에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도 않아도 될 만큼 용돈벌이도 되고, 평생 동물을 대하던 노하우를 이용해서 관련 축산업을 하고 있는 것들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지난 인생을 바탕으로 그 농장에서 자신의 노년을 재밌게 디자인하고 있는 게다. 그는 "농부는 논두렁에서 죽어야 하듯 자신은 이 일을 하며 죽고 싶다"고 말했다.

넓은 밭과 농장이 어우러져 있다. 저기엔 천 마리의 '닭대가리'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그 농장 대표 송창호씨와 아웅다웅 실랑이 하면서 말이다.
▲ 농장 전경 넓은 밭과 농장이 어우러져 있다. 저기엔 천 마리의 '닭대가리'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그 농장 대표 송창호씨와 아웅다웅 실랑이 하면서 말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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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하고, 제멋대로인 닭들. 그 '닭대가리'들과 동행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 그건 바로 이 일이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자신의 노년을 디자인하는 주요 자원이기 때문이리라.


태그:#닭 농장, #송창호, #유정란,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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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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