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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부산 울산 답사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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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에 행해지는 충주 전통문화회의 정기답사는 1박2일이다. 금년에는 답사가 부산과 울산으로 잡혔다. 부산과 울산은 큰 도시이기 때문에 해방 후 문화유산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도시는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부산은 항구도시이자 무역도시가 되었고, 울산은 산업도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 두 도시에서 우리는 이틀 동안 역사와 문화유산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도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주로 동래와 언양에 모여 있다. 그것은 동래와 언양이 경상도 동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이기 때문이다. 동래는 부사가 관리하는 도호부였고, 언양은 현감이 관리하는 현이었다. 동래에서 우리는 복천동고분군, 읍성, 향교, 범어사. 금정산성을 둘러볼 예정이다. 범어사와 금정산성은 지금 금정구에 들어가 있지만 1988년 금정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동래구였다. 언양에서 우리는 반구대 암각화, 반구서원, 천전리 각석을 돌아볼 예정이다.

 동래읍성을 오르는 회원들
 동래읍성을 오르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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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숙소를 부산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자 했다. 기존의 여관이나 호텔 대신 템플스테이를 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절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금정산성을 답사하려면 3시간이 걸리는데, 오후에 3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범어사 템플스테이에 산행 프로그램이 있어 그것을 이용할 경우 비교적 여유 있게 답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범어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고, 스님과 담당자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낼 수 있었다. 중간에 몇 번의 조율을 거쳐 5월 7일 오후 4시까지 범어사에 도착하기로 약속을 했다. 예정대로 우리는 7일 오전 7시 충주를 출발했다. 3시간 50분 만에 부산박물관에 도착한 우리는 박물관을 1시간 30분 동안 구경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복천동 고분군과 박물관을 구경하고, 북문에서 서장대를 지나 동래 향교까지 동래읍성을 걸어갔다. 그리고 향교를 관람한 다음 범어사로 향했다.  

템플스테이는 시작되고...

 휴휴정사
 휴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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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45분에 향교룰 출발한 버스는 4시 15분에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계획보다 15분쯤 늦은 셈이다. 차를 내린 우리는 서둘러 템플스테이 장소로 향한다. 언덕길을 올라가니 대웅전이 나온다. 템플스테이는 대웅전을 지나 언덕에 있는 휴휴정사(休休精舍)에서 진행된다. 휴휴정사는 '편안하고 또 편안한' 집이라는 뜻이다. '마음이 착하고 너그럽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정사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처사와 보살로 변한다. 나는 가섭불이라는 사물함에 속세의 옷을 벗어 넣고 처사로 변신한다.

27명의 회원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입제식을 한다. 1박2일 동안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입학식이다. 묘중(妙中) 스님이 식을 진행한다. 간단한 환영사를 하고, 목탁 소리에 따라 인사하고 절하는 법, 예경문(禮敬文), 범어사의 역사와 문화유산, 이틀간의 일정 등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여기서 예경문이란 예불과 관련된 글과 반야심경을 말한다. 그런데 2012년부터 반야심경을 한문으로만이 아니라 한글로도 독송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입제식을 마치고 공양간으로 가는 회원들
 입제식을 마치고 공양간으로 가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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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제식과 간단한 대담을 마치고 5시가 되어 우리는 공양간으로 간다. 모든 게 빨리빨리 진행된다. 휴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말이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보니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연등을 다는 손길이 바쁘다. 초파일이 10일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웅전을 내려와 미륵전과 영주선재(瀛洲禪齋)를 지나 공양간으로 간다. 발우공양이 원칙이나 우리는 식판에 원하는 만큼 음식을 떠가는 세속의 방식을 따른다.

밥과 국에 반찬이 너댓 가지로 먹을 만하다. 상큼한 미나리 무침이 내 입맛에 맞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도 꽤나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식판을 씻어 가지런하게 원 위치시킨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공기가 조금은 더 차가워졌다. 해는 금정산 너머로 넘어가고 경내에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 경내를 둘러본 다음 종루 앞에 6시에 모이기로 한다. 종루에서 저녁을 알리는 법고의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범어사 일주문과 당간지주를 보고

 범어사 일주문
 범어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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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문에서 시작, 경내를 한 바퀴 돈다. 범어사 일주문은 돌과 나무가 어우러진 전통건축으로,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은 받침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공포와 처마 그리고 지붕을 얹은 특이한 방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가 다포식으로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일주문의 공식명칭은 조계문(曹溪門)이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조 5년(1781) 백암선사가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했다고 한다. 가운데 칸에 조계문이라는 현판이 있고, 좌우 칸에는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과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범어사가 선찰대본산이 된 것은 구한말 성월선사에 의해서다. 성월선사가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 당대 최고 고승 경허선사를 조실로 모셔 당대 최고의 선방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범어사는 선찰대본산이 되었다.

 금정산 범어사: 오른쪽 위에 고당봉이 보인다.
 금정산 범어사: 오른쪽 위에 고당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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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은 말 그대로 황금 우물이 있는 산이다. 그럼 그 우물이 어디 있을까?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산마루에 있다. 현재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아래 고당이 있고, 그 주변에 금샘(金井)이 있다고 한다. 금샘 건너편에는 동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의상망해(義湘望海)와 원효석대(元曉石臺)가 있다. 이를 통해 원효와 의상이 금정산에 왔음을 알 수 있다.

"금정산: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산마루에 3장(丈)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자이며, 깊이는 7치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짓고, 그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라 불렀다."(『신증동국여지승람』)

 범어사에 있는 의상대사 진영
 범어사에 있는 의상대사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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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범어사가 의상이 전교(傳敎)한 화엄십찰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범어사는 의상대사 또는 그 제자에 의해 창건되어 화엄종을 전하다가 고려시대 선종계열의 사찰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범어사는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퇴락했다가 임진왜란 이후 승병 육성의 차원에서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 5년(1613) 이후 묘전(妙全)화상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 등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아래로 칠팔십 미터쯤 내려가면 왼쪽으로 당간지주가 있다. 당간은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다. 이 당간을 양옆에서 지탱해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범어사 당간지주는 기단과 당간의 받침돌이 모두 사라지고 양쪽의 두 기둥만 남아 있다. 기둥 윗부분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네모난 홈이 있다. 이 당간지주는 장식이나 조각이 없어 소박한 모습이다. 그래서 유형문화재가 되었다.  

법고의 울림에 축생들이 눈을 뜨고

 종루에서의 법고 의식
 종루에서의 법고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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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과 당간지주를 본 나는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간다. 그곳에는 벌써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 법고의식을 기다리고 있다. 6시가 되자 스님이 나와 법고를 치기 시작한다. 이 스님들은 전국 법고치기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실력자들이라고 한다. 우리 회원 중 상당수 불교신자들은 넋을 잃고 그 소리에 빠져 들어간다. 감동과 환희심을 느꼈다고 말하는 회원이 많다. 법고는 축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약 십이삼 분 정도 법고치기가 끝나자 한 삼분 정도 범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는 범종소리를 들으며 대웅전으로 간다. 그곳에서 저녁예불이 올려지기 때문이다. 예불은 스님과 대중이 함께 올린다. 예불은 지심귀명례로부터 시작해서 반야심경 독송으로 끝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다 외우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부분만 함께 따라한다. 재미있는 것은 반야심경을 우리말로도 독송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반야심경의 내용이 머리에 훨씬 더 잘 들어온다.

 대웅전 저녁예불
 대웅전 저녁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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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심경 독송에 나도 깨달음을 얻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언어의 힘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반야심경의 한문 독송만을 고집했던 것인지... 반야심경 독송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데 말이다. 예불을 마친 우리는 다시 휴휴정사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묘중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다담(茶談)을 나눈다. 불교신자가 많아선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휴휴정사에서의 차담(茶談)
 휴휴정사에서의 차담(茶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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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원래 부처님께 바치는 다섯 가지 공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해서 차와 선수행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로 하는 다담인지라 과자도 나오고, 대화의 주제도 세속과 종교를 오간다.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묘중 스님이 비교적 쉽게 설명을 해준다. 타 종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8시 30분이 되어서 우리는 방 배정을 받는다. 여자들은 휴휴정사에 자고, 남자들은 나한전 아래 선방으로 이동을 한다. 선방 한쪽에는 초파일에 달 연등이 가득하다. 우리는 각자 침구를 펴고 잘 준비를 한다. 9시가 취침시간이다. 아침 기상시간은 5시다. 그렇지만 불교신자들은 3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새벽예불과 4시부터 시작되는 참선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5시에 일어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덧붙이는 글 | 충주 전통문화회 회원 27명이 부산과 울산으로 1박2일(5월 7-8일)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7일 오전 7시에 시작, 8일 저녁 6시에 끝났다. 그리고 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7일 오후 4시부터 8일 오전 10시까지 범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필자는 1박2일의 템플스테이에 대해 먼저 2회 글을 쓰려고 한다. 이어서 템플스테이 전후 부산과 울산 지역 문화유산 답사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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