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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거리캠페인에 참여한 학생이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27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거리캠페인에 참여한 학생이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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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가 되나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리를 걷는 게 두렵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7일 오후 3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은 깨알같이 쓰여진 색색의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이 메시지들은 이 땅의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작지만 큰 응원들이었다. 이날 대한문에서는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거리 캠페인이 열렸다. 동성애자 청년 육우당이 생을 마감한지 10년이 지난 올해, 고(故) 육우당 추모위원회가 선정한 '육우당 10주기 추모주간'의 여섯 번째 날이다.

그의 자살 후 10년이 지나도... 원점으로 돌아간 성소수자 인권

"내 혼은 꽃비 되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네" 거리행사에서 슬로건이 적힌 걸개에 무지개색(성소수자 상징 색깔)을 입히는 시민들. 이 걸개는 당일 저녁 추모제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 "내 혼은 꽃비 되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네" 거리행사에서 슬로건이 적힌 걸개에 무지개색(성소수자 상징 색깔)을 입히는 시민들. 이 걸개는 당일 저녁 추모제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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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우당(필명)은 가톨릭 신자였으나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이기지 못하고 2003년 4월 25일 1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청년이다. 그는 "죽으면, 이젠 내가 동성애자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서에 마지막 글귀를 남겼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등 인권단체들은 육우당의 죽음을 기리고자 이달 22일부터 28일까지를 추모주간으로 정했다.

그의 죽음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여전히 원점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종교, 정치적 의견, 학력 및 병력,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에 반대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인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몇몇 의원이 '법안 철회'를 밝히면서 난국에 처했다. 이에 따라 육우당 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지난 22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25일에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추모 기도회를 진행했다.

올해 봄으로 5회째를 맞는 거리 문화제에서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퀴즈 행사 및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행사에는 대한문을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수 참여하여 영어와 불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성소수자를 향한 응원메세지를 볼 수 있었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성적 정체성은 '20세 생일 선물' 아니다"

"나는 차별이 아닌 사랑을 원한다" 오후 7시 추모제 행사 현장. 이날 시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 "나는 차별이 아닌 사랑을 원한다" 오후 7시 추모제 행사 현장. 이날 시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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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대한문 앞은 본격적인 육우당 10주기 추모를 찾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노래, 몸짓, 연주 등 장르를 불문한 공연들과 함께 "우리는 차별이 아닌 사랑을 원한다"는 구호 아래 성소수자 인권유린에 맞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소수자 당사자들, 특히 청소년들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직접 나서서 의견을 밝힌 것이 눈에 띄었다. '청소년 자긍심팀'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바람'은 자신에게 그동안 가해지고 묵인된 폭력들을 어렵게 털어놓았다.

"제 성별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너는 아직 어리고 연애를 안 해봐서 그렇다, 돈을 주고 하면 여성이 좋아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너무도 쉽게 듣습니다. 다니던 교회 청년회에서 '쟤는 동성을 좋아하니까 거세시켜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어봤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은 스무 살 생일에 받는 선물이 아닙니다. 이 모든 폭력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는 이윽고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다면 그들을 조장하는 혐오와 차별의 분위기"라며 동성애를 치료나 학습의 대상으로 삼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했다.

동인련 활동가 '가온'은 자신을 '비수술 FTM(Female to male) 범성애자'로 정체성화했다. 오랜 동안의 자해와 자살시도 끝에 뒤늦게 성소수자 인권 활동에 뛰어들어 음악활동을 한다는 그는 "아직까지도 부모님께 (내 정체성을)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저도 결국 여러분과 별다를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종교 종사자도 다수 참여...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느님은 정말 성소수자를 싫어하는 것일까?'라는 말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육우당의 짧은 일생을 휘감던 질문이었다. 이날 종교 종사자들도 차별에 관한 반대를 외치며 발언대에 올랐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우리는 차별과 폭력, 혐오를 정당화하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며 기독교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교회의 전도사를 맡고 있다는 공연자 '엔틸드' 역시 "하나님은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바이섹슈얼이든,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하셨다"라고 발언했다.

한편, 연대발언을 온 윤명화 민주당 서울시의원은 "민주당의 섣부른 차별금지법 철회 때문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며 "서울시의회는 육우당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문용린 교육감에 맞서 학생인권조례를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200명 가량의 시민이 모인 문화제에서는 비 동성애자이거나 그간 성소수자의 존재에 익숙하지 않던 참여자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친구들과 함께 문화제에 참여한 대학생 장형륜(20)씨는 "그동안 성소수자를 인정할 수 있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어도 만나볼 기회 자체가 없어 직접 공감할 수 있는 자리에 와보고 싶었다"며, "뒤늦게 그들의 간절함을 마주하고서야 현실을 체감했으며 앞으로도 기회가 생긴다면 더욱 주목하겠다"고 말했다.

역시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 처음 참여한다는 대학생 고미정(22)씨도 "집회 중간에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녀는 "차별이라는 것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내 주변 사람이 말 못하는 당사자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거리낌 없이 '게이 드립'을 치지 않나"라며 "인간 대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느니만큼 이제는 사회적, 정책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처우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육우당 추모문화제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버튼과 쪽지들.
 고 육우당 추모문화제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버튼과 쪽지들.
ⓒ 고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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