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정겨운 초가집, 정취있는 고택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정겨운 초가집, 정취있는 고택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숲은 사시사철 언제가도 좋지만 요즘 같은 봄날에 가면 더욱 좋다. 여름날의 햇살과 달리 따사로운 온기가 느껴지는 봄 햇볕, 새싹과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런 숲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느껴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충남 아산시 외암리 민속마을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500여 년 전부터 씨족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숲과 나무가 마을을 품다시피 하고 있다. 산림청과 '(사)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공동 개최한 제 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으니, 안 가볼 수가 없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도 쉬워 좋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온양온천역에 내리면 역 앞에 외암리 민속마을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들이 여러 대 서고, 그 중 한 버스를 타고 20여 여 분 달리면 마을 앞에 도착한다.

야트막한 마을 언덕위에서 마을 샛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하듯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고령의 소나무들이 동네 어른들 같다.
 야트막한 마을 언덕위에서 마을 샛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하듯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고령의 소나무들이 동네 어른들 같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동네 어르신처럼 마을을 보호하고 안아주는 숲 

몇 년 전 외암리 민속마을에 왔을 땐 초가집과 고택, 제사를 지내는 사당 등 정겹고 이채로운 마을 풍경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이번엔 소나무 외에도 상수리 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각종 과실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날 반겨줬다.

매표소를(입장료 2천 원)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을 늙은 정자나무와 함께 야트막한 언덕 위에 모여 사는 소나무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거북이 등딱지 같은 나뭇결이며 등이 구부정한 모습이 흡사 동네 어른 같다. 500여 년 전통의 외암리 민속마을엔 고택(古宅)에 어울리는 고목(古木)들이 많이 산다.

마을 관리 사무소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동네 들머리에 마을 보존회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몇몇 모여 있으니, 마을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를 여쭤볼 수 있다. 보존회 회장님으로 일하신다는 이준봉 어르신은 예안이씨 씨족 마을이기도 한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대를 이어오며 살고 있다.

마을을 위해 여러 도움을 주는 숲은 묘지가 있는 선산이 되어 주기도 한다.
 마을을 위해 여러 도움을 주는 숲은 묘지가 있는 선산이 되어 주기도 한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마을 개가 짖기는 커녕 꼬리를 흔들며 외지인을 반긴다.
 마을 개가 짖기는 커녕 꼬리를 흔들며 외지인을 반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마을에 들어서니 왼편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숲이 반겨주는 것 같아 좋고, 부드러운 산등성이 아래 포근히 자리한 마을이 참 아늑해요."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오면서 느꼈던 첫인상을 밝혔더니 충청도 사람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신다. 동수(洞蓚)라 하여 풍수지리상 마을의 불리한 지세를 보완하고 더불어 묘소 주변을 감싸기 위해 조성됐다. 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70여 그루)와 상수리나무(30여 그루)다.

더불어 이 숲은 추운 겨울날의 삭풍을 막아주고 마을을 아늑하게 가려주며 수구막이 역할을 겸한다. 나무 기둥에 만들어 놓은 그네를 타면 마을 숲과 전경이 눈앞에 색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꼭 타볼 일이다.

누구나 타보고 싶게 하는 나무 사이의 큰 그네.
 누구나 타보고 싶게 하는 나무 사이의 큰 그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마을 공간을 흐른 물길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곳을 수구(水口)라고 하는데 그것이 막는 것을 '수구막이'라 한다. 수구막이에 대해서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넓은 곳에서는 비록 좋은 밭이 만 이랑이 있고 집이 천간이 있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을 때는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 구할 것이다.'

마을엔 송림숲 외에도 다양한 나무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소나무, 상수리 나무는 물론 향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와 과실나무 (감, 밤, 호두, 복숭아, 매실 등)들이 지천이다. 갖가지 수목들이 마을, 집, 돌담들과 잘 어울리며 살고 있어 한 폭의 큰 그림이나 정원 같기도 하다. 숲과 마을 풍경으로 만나는 조화로움은 외암마을만이 갖는 아름다움인 듯싶다. 요즘 같은 봄날뿐만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전통으로 씨족 마을이 되다

마을의 오래된 고택들에도 나무들이 운치있게 들어서 있다.
 마을의 오래된 고택들에도 나무들이 운치있게 들어서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 마을의 원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예부터 외암리는 삼다(三多) 마을로 알려졌는데 삼다란 돌, 말, 양반이 많다는 것을 뜻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대기시키는 역마가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그곳이다. 외암이라는 지명도 외양간을 뜻하는 '오양골'에서 '오야골'을 거쳐 '외암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16세기에 예안이씨 이사종(?~1589)이 이 마을에 살던 참봉 진안평의 맏딸과 결혼하여 입향하면서 예안이씨 일가가 정착, 씨족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혼인풍속인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 행해지던 시기이므로 이사종은 평택 진씨와 결혼하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이후 이사종의 5대손 외암 이간(1677~1737)이 왕으로부터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고 사후에 불천위로 모셔지면서 외암마을이 예안이씨의 씨족마을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불천위란 국가에 큰 공헌을 한 공신이나 대학자 등을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것이다.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릴 수 있다. 마을에 불천위 사당이 있다는 자체가 영광스런 마을임을 의미한다.

마을의 주산(主山)인 설화산 자락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외암리 마을.
 마을의 주산(主山)인 설화산 자락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외암리 마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외암리는 조선후기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 중 퇴호 이정렬(1868~1950)은 근현대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에 이르는 벼슬을 지냈으며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그의 나이 34세 때 일본이 강제로 통상조약과 사법권 이양을 요구하자 이에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당시 책임자인 외부 대신을 탄핵할 것을 주장했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은 나라를 팔아먹은 조정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관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외암리 마을이 자랑하는 대표 고택이 몇 채 있는데 그 중 참판댁이 이정렬이 살던 집이다.
외암마을에는 현재 69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농가 38가구,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 가옥이 31가구이며 거주민은 약 200명이다. 2001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중요민속자료 제 236호로 지정되었지만, 누구나 집을 사고팔며 이사를 가거나 이사를 와서 거주할 수 있다. 씨족마을답게 1990년까지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예안이씨였는데 계속 줄어들어 현재 약 36% 정도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550살 느티나무

외암마을은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정겨운 돌담이 흔한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마을 남자 어르신들과  마을 얘기를 하면 맨 먼저 돌담 얘기를 꺼내실 정도로 자랑거리다. 집집마다 둘러쳐진 돌담이 무려 5.3㎞에 달한다고 한다니 마을에 들른 엿장수가 열 번을 헤매다 겨우 동네를 빠져나갔다는 어르신 얘기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겠구나 싶다.

마을 돌담길 위 나뭇가지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돌담 안 닭들의 목청 좋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을을 돌다보면 550살 먹었다는 신령스러운 느티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외암민속마을 안에 있는 랜드마크다.

갖가지 수목들로 풍성한 마을 돌담길은 그래서 더욱 걷기 좋다.
 갖가지 수목들로 풍성한 마을 돌담길은 그래서 더욱 걷기 좋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높이 21미터, 둘레 3미터의 이 느티나무 나이가 550살이 넘었다고 하니 예안이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나무 앞에 서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산신령스러운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다.

어릴적 외갓집에 온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드는 마을.
 어릴적 외갓집에 온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드는 마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외암리 마을은 꽃샘추위가 물러나는 4월말에 들어서야 봄이 활짝 깨어나고 있다.
 외암리 마을은 꽃샘추위가 물러나는 4월말에 들어서야 봄이 활짝 깨어나고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외암마을의 특징은 물길에도 있다. 주산(主山)인 설화산 계곡에서 내려온 개울물을 마을로 끌어들인 물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흐르던 물은 도랑으로 마을길과 집 안팎, 텃밭 사이를 졸졸 맑은 물소리를 내며 누비고 있다. 비가 오면 배수로이자 주민들의 생활용수, 농업용수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외암마을의 주택이 대부분 초가집이므로 방화수로 사용되기도 한다니 조상들의 지혜가 깊기도 하다.

대가족이 모여 앉아 있는 것 같은 크고 작은 크기의 항아리들, 주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우물, 논 두렁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개구리 소리, 동네 곳곳에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화사하고 예쁜 풀과 꽃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갔던 시골 외갓집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며칠 머물고 싶게 한다.

마을안에 초가집으로 된 민박집이 몇 채 있으며 아이들이 오면 농촌 체험 마을 프로그램도 경험할 수 있다. 구수한 시골 시골 청국장을 먹을 수 있는 '신창댁'이라는 집은 마을에서 유일한 식당이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ㅇ 찾아가기 ;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169-1번지
- 대중교통은 1호선 전철 온양온천역 앞에 외암리 민속마을을 오가는 버스들이 여러 대 있다. (20여분 소요)
ㅇ 이용문의 ; 041) 540-2110



태그:#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아름다운 숲, #예안이씨, #씨족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