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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0년 유엔은 '아프리카 지역에 살고 있는 14세 이하 어린이 280만 명이 에이즈(AIDS)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나이지리아 29만 명, 남아프리카공화국 23만 명, 탄자니아 14만 명에 이어 짐바브웨와 함께 12만 명의 아이들이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이즈에 걸린 엄마로부터 출산 후 모유 수유의 과정을 통해 2차 감염된 아동들은 대부분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에이즈 고아'(AIDS Orphans)가 돼 또다시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게 된다. 또한 이들은 노동 착취와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되거나 또 다른 감염의 경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해 이들에 대한 관리와 보호가 절실한 실정이다.

몇 년 전 에이즈로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르뎃 운달래(35). 그녀 역시 등록된 에이즈 환자다.

"남편 때문에 걸린 에이즈... 다행히 딸은 건강해요"

쓰낫 엄마는 적어도 무지한 엄마는 아니었다. 남편을 에이즈로 잃고 난 뒤 HIV검사를 통해 자신 역시 HIV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모자감염예방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쓰낫 엄마는 적어도 무지한 엄마는 아니었다. 남편을 에이즈로 잃고 난 뒤 HIV검사를 통해 자신 역시 HIV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모자감염예방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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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다니다 에이즈에 걸렸나 봐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남편과 관계를 가졌고, 그런 이유로 저도 에이즈에 걸렸어요. 다행히도 위에 두 딸은 남편이 에이즈에 걸리기 전에 낳아서 에이즈 위험이 없었어요. 다섯 살인 쓰낫이 태어나기 전부터 병원에서 약을 먹고 관리를 해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란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를 말한다. 보통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를 HIV 또는 HIV 감염이라고 한다.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돼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각종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발생해 사망하게 되는 병이다. 인체의 면역력이 상당히 저하돼 이러한 감염증과 종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태를 에이즈 또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국제기구들의 도움을 받아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홍보·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HIV 모자감염 예방 프로그램(mother-to-child HIV transmission programmes)은 예방프로그램의 하나로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에이즈 환자로 확인될 경우, 임신과 출생의 단계에서 항레트로 바이러스 요법을 실시해 2차 감염으로 인한 소아사망과 에이즈 확산을 막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에이즈로 인한 영아사망률을 낮추는 데 높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 에이즈 환자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그 어떤 문명의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각종 국제기구들이 에이즈와 기아·전염병 등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들어가 있지만, 이들의 접근이 어려운 시골이나 산악지대·정글·오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는 교육도, 의료혜택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티오피아의 성인 문해율은 35.9%, 초·중·고 총 등록률은 49%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보고된 자료일 뿐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하는 교사들의 말로는 실제 문맹률은 그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성을 매개로 에이즈 확산의 통로가 되고 있는 성인들. 그들의 낮은 교육 수준이 에티오피아를 '에이즈 위험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쓰낫 엄마는 적어도 무지한 엄마는 아니었다. 남편을 에이즈로 잃고 난 뒤 HIV검사를 통해 자신 역시 HIV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모자감염예방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학교 교육을 통해 HIV에 대한 정보를 배웠기에 또 다른 불행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은 없지만 딸 받아달라고 사정했어요"

쓰낫의 엄마는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좋아 구멍가게지 가게 안에는 물건이라고는 없고 파리만 윙윙거리고 있었다.
 쓰낫의 엄마는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좋아 구멍가게지 가게 안에는 물건이라고는 없고 파리만 윙윙거리고 있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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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낫의 엄마는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꽉 찰만한 크기의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말이 구멍가게지 가게 안에는 물건이라고는 없고 파리만 윙윙거리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물건을 가져다 놓는데 가진 돈이 없으니 가게도 비어있는 것이다.

"쓰낫은 공부를 시키고 싶어요. 저는 아파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쓰낫 만큼은 공부를 시켜서 저처럼 살지 않게 하려고요. 좋은 학교에서 공부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업료 낼 처지는 못 되지만 무작정 한별학교를 찾아가 쓰낫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르뎃은 막내딸 쓰낫을 꼭 한별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학비가 들지 않는 르뎃은 공립학교의 문은 늘 열려 있었지만, 그곳은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머지않아 스러질 목숨, 딸을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떼를 쓴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딜라 지역의 한 공립학교는 하루 3교시 한 반에 70명에 가까운 아동들이 3부제로 나뉘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좁은 교실에 많은 아이들. 구멍 난 칠판과 무너져 내릴것처럼 허름한 건물. 전쟁통에 문을 연 임시학교와 같은 모습이지만 취학 아동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해 이런 학교라도 곳곳에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게 에티오피아 교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교실과 책걸상·칠판 등의 시설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의 태만이다. 대부분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아이를 가르치기보다는 월급을 받기 위해 학교에 온다고 한다. 책임감 있는 교사도 없고 교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도, 규정도, 없다보니 교사들의 평균 출근일수가 한 달에 열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학생보다 교사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다.  

교사의 수업 참여율이 저조하니 학생들도 학교에 오지 않는 날이 많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공립학교를 졸업하고도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교육에 뜻이 있는 부모라면 어려운 형편에도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사립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지역 다른 사립학교의 경우 분기당 250비르(1비르는 한화 60원가량)에서 300비르의 학비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별학교는 그보다 저렴한 150비르를 받고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경우 분기당 수업료가 500비르 이상인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커피 노동자나 건설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이 20비르에서 30비르인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비용이다.

"사흘을 쫓아와 울더라고요. 학교 형편상 전액 장학생을 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쓰낫 엄마가 처음 학교를 찾아왔는데 정말 놀랐어요. 얼굴에 검은 반점들이 가득하고 해골처럼 말라서 온몸의 뼈가 다 드러났는데 참담해서 볼 수가 없을 정도였죠. 안타깝지만 우리도 도울 형편이 안된다고 했더니 한참을 교장실에 앉아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러더니 다음 날 찾아와 교문을 붙잡고 통곡을 하는 거예요. 달래서 보냈더니 그 다음 날 또 찾아왔어요. 장대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세 시간 넘게 그 비를 다 맞고 우는데 저희가 손을 들었습니다. 죽기 전에 딸 하나 살려보겠다는 모성애를 어떻게 모른 체 하겠어요."

다섯 살 쓰낫의 꿈은 의사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라는 쓰낫.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라는 쓰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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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마의 정성에 감동한 한별학교는 쓰낫을 전액 장학생으로 받아줬고, 현재 유치원 2학년 과정을 다니고 있다. 머리가 좋고 성격이 명랑한 쓰낫은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엄마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친구들이랑 다른 사람들도 다 아프지 않게 해줄 거예요."

사진 작가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한껏 애교를 부리는 쓰낫은 엄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매일 아프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쓰낫도 언젠가는 엄마의 병을 알게 될 것이고, 언니들처럼 엄마를 떠나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지금은 쓰낫과 단둘이 살고 있지만 원래 쓰낫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었다.

"남편이 죽고 저도 아프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열두 살, 열 살 된 쓰낫의 두 언니는 집을 나가버렸어요. 얼마동안 소식이 없더니 50대의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둘 다 우리들과는 소식을 딱 끊고 지내요. 쓰낫이 가끔 언니들을 찾지만 이제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워낙 해준 게 없으니 어디 가든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만 있어요."

에티오피아 에이즈 발병률이 줄지 않는 까닭

집안에 비어있는 물통이 여러 개 있었지만 엄마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져 물을 길어올 수 없다. 모녀는 이웃들의 도움이 없으면 물조차 먹기 힘들다.
 집안에 비어있는 물통이 여러 개 있었지만 엄마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져 물을 길어올 수 없다. 모녀는 이웃들의 도움이 없으면 물조차 먹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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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 에이즈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조혼과 난혼의 풍습이다.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일부다처가 일반화돼 있고, 가난한 부모가 나이 어린 딸을 부잣집에 일꾼이나 첩으로 파는 것도 흔한 일이며 마음에 둔 여성을 납치해가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게 전통이란다.

어떤 부족은 양쪽 집안의 형제 중 한 사람이 결혼할 경우 다른 형제들도 한꺼번에 배우자의 자매들과 결혼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신랑과 신부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 신랑 집에서 민며느리를 들이듯 데려와 성장할 때까지 일을 시키다가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조혼과 난혼의 풍습은 에이즈의 확산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영아 사망률과 산모 사망률에도 영향을 끼쳐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높은 영아 사망률과 산모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쓰낫의 엄마 르뎃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잘 먹고 많이 쉬어야 하는데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지는 것이다. 집안에 비어있는 물통이 여러 개 있었지만 르뎃은 물통을 지고 나를 힘이 없다. 어린 쓰낫이 하굣길에 학교에서 물을 길어오지만, 이웃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물도 마시지 못할 형편인 것이다.

주변에서는 쓰낫의 엄마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르뎃도 쓰낫이 성장할 때까지 곁을 지켜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다섯 살인 쓰낫이 고아가 돼버리면 다른 에이즈 고아들처럼 성적 학대·인신매매의 대상이 돼 엄마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쓰낫은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 이렇게 됐는데, 쓰낫마저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쓰낫을 부탁해요. 우리 쓰낫을 살려주세요. 제가 죽고 나면 우리 쓰낫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아요."

차 세운 한 여인의 외침 "내 아이를 살려주세요"

쓰낫의 발. 이 아이가 길거리에 버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쓰낫의 발. 이 아이가 길거리에 버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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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쓰낫 엄마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쓰낫의 집을 나와야 했다. 쓰낫이 원한다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게 해주겠다는 한별학교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 멈췄다. 초라한 행색의 아기 엄마가 우리가 타고 있는 차로 무작정 달려와 매달린 것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울며 사정했다.

"내 아기를 데려가 주세요. 내 아기를 데려가 주세요. 내 아기를 살려주세요."

부유하든 가난하든, 검든 희든,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사는 곳이 어디든…. 엄마들은 다 같았다. 자식을 위해 목숨 하나 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에티오피아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구걸을 하고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노동을 하며 자식을 키우기 위해 허다한 어려움을 마다치 않았다. 그래도 안되니 외국인을 잡고 울며 매달리는 것이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처럼 눈물조차 마른 땅, 에티오피아에서 엄마들이 울고 있다.

"내 아기를 데려가 주세요. 내 아기를 데려가 주세요. 내 아기를 살려주세요."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한별학교, #HIV, #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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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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