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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까지 지속됐던 기나긴 한파가 끝나고 이곳 베를린도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은 새 여름학기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학과 친구들을 만나 반가웠는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처럼 '휴가 잘 다녀왔는지' '인턴십은 어땠는지' '숙제 잘 끝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인지라 한 가지 질문이 더 따라왔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최근 북한의 연이은 위협과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는?"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이는 질문을 건넨 독일 학생이 한국을 둘러싼 정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나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답할지,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자못 구체적이었다. 독일 매체들도 이 문제를 주요 뉴스의 톱기사로 다뤘다.

나는 독일에서 이 뉴스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경직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버텨온, 최후의 대화창구이자 보루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문제에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시민들과 학자들은 통일 후 경제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남북통일에 대한 담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적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개성공단은 통일 경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유일한 현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지속된 위협이 '개성공단 무용론'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는 것. 이는 남북통합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더욱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선대인 연구소장의 '한국 경제의 미래, 북한에 있다'라는 글을 읽게 됐다. 경색 국면에서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경제적으로 해석한 글이었다. 특히 분단 비용과 통일 편익에 대해 강조하고, 통일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독일의 통일 후유증에 대해 비용분석과 관련해 연구를 지속해왔다. 선 소장의 글의 경우,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할만한 글이었다.

다만 글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도 어느 정도 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해 한국의 중소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부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같이 한국에게 좋지만 너무 한국의 입장에서 경제적 편익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독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회경제학적 그림자

최근 독일에서는 NSU(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국가사회주의 지하운동)에 대한 재판이 화제다. 단어만 봐도 이들이 네오나치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재판이 왜 중요한 이슈가 됐을까.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들이 발생하는데, 공통점은 피해자가 주로 독일 이민자 사회의 상징이었던 터키 케밥 레스토랑 및 분식집(Imbiss·한국어로 직역)의 주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가 2011년 작센 주 츠비카우(Zwickau)의 어느 집에서 폭파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츠비카우의 집은 NSU에 속해 있던 세 청년의 아지트였다. 세 청년의 이름은 우베 벤하르트(Uwe Böhnhardt), 우베 문트로스(Uwe Mundlos) 그리고 베아테 체페(Beate Zschäpe). 동명이인이었던 두 우베는 은행강도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두 청년의 자살 이후 베아테는 자신이 아지트로 삼던 주택을 폭파하면서 달아나지만, 결국 자수했다. 폭파된 저택에서 나왔던 증거물들은 독일과 터키 이민자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바로 이들이 연쇄살인사건에 개입했다는 영상과 신나치주의와 관련된 영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뉴스가 전해지자 독일 내에서는 극우주의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럼 이 사건을 왜 사회경제학적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된 세 청년은 모두 구 동독 지역 출신의 젊은이들이다. 네오나치주의는 현재 구 동독 지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는 통일 이후 동독 경제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시민들은 서독 기업들의 투자를 중심으로 공산주의 정부 당시 파괴된 경제구조를 다시 개선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선의로 시작된 투자는 헬무트 콜 총리의 급진적인 화폐 및 경제 동시통합 정책으로 인해 동독 지역에 대한 서독 기업의 투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약한 구 동독 지역에는 커다란 리스크였다. 돈에 눈이 먼 기업들로 인해 훗날 이 지역에서는 자본 이탈이 촉진됐고, 실업률 증가와 전통산업의 파괴가 발생했다. 젋은이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자 서독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인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 지역에서 경제적 활기를 찾기 힘들어졌다. 이 과정만 본다면 마치 자본에 크게 휘둘렸던 1997년 한국 IMF 위기가 떠오른다.

구 동독 지역의 전통경제 몰락과 실업률 증가는 외국인 혐오증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됐다. 그리고 이는 구 동독지역 일부 젊은이들에게 네오나치주의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2000년대 케밥집 연쇄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구 동독 지역에서는 네오나치주의 문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기존 사회주의 경제 익숙했던 동독 주민들에게 서유럽 자유경제는 가혹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통일 비용도 주로 이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게 많다. 통일재정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토론되는 주제는 '인간지향적인 새로운 균형개발의 문제' '투기 후유증 극복'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게 있어 NSU 살인사건 및 재판 과정은 통일경제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한국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통일 이후 너무 지배적인 자세로 임하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북한의 기존 전통산업구조를 존중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통일 후 북한에 대한 '묻지마 투기'를 방지하는 것은 통일 정부의 중요한 의무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비타콜라(Vita Cola)에서 해답을 찾아보다

우리집 수퍼마켓의 탄산음료 진열대.(베를린 지역) 오른쪽에는 코카콜라 브랜드, 왼쪽에는 펩시 및 독일 토종브랜드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비타콜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콜라의 공존 우리집 수퍼마켓의 탄산음료 진열대.(베를린 지역) 오른쪽에는 코카콜라 브랜드, 왼쪽에는 펩시 및 독일 토종브랜드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비타콜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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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하면 생각나는 브랜드는 코카콜라와 펩시다. 이 두 기업은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경제계 글로벌 챔피언이다. 하지만 독일의 콜라 산업은 한국과 다르다. 독특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앞서 언급한 두 기업 외에 여러 유명 콜라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눈에 띄는 브랜드는 함부르크의 프리츠 콜라(Fritz-Kola)와 비타 콜라(Vita Cola)다.

비타 콜라는 동독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산물이다. 이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해 서방 브랜드를 방어하기 위한 동독 공산주의 정부의 산물이었다. 1958년 국가의 주도 아래 공장이 설립됐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비타민C가 들어갔다는 게 상당히 강조됐다. 이들은 콜라뿐만 아니라 사이다 및 오렌지 탄산음료 그리고 오렌지·콜라 혼합 탄산음료(독일어로는 Spezi라고 하는데, 독일인들이 흔히 즐겨마시는 음료수다)도 나름 독특하게 개발했다. 비타 콜라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서방의 자본 폭격에서 꿋꿋이 버티는 '동방 콜라'의 상징이 됐다. 또한 서방 콜라를 맛보기 힘들었던 동독 주민들에게 비타 콜라는 파티를 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도 했다.

콜라도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져있고, 오렌지탄산음료 및 슈페치(오렌지/콜라 혼합음료) 상품도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비타콜라의 영향력은 현실적으로 구 동독 및 베를린 수퍼마켓에 제한되고 있지만, 통일 이후에도 동독의 전통적 산업을 살린 좋은 사례로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교훈을 준다.
▲ 비타콜라의 상품들 콜라도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져있고, 오렌지탄산음료 및 슈페치(오렌지/콜라 혼합음료) 상품도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비타콜라의 영향력은 현실적으로 구 동독 및 베를린 수퍼마켓에 제한되고 있지만, 통일 이후에도 동독의 전통적 산업을 살린 좋은 사례로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교훈을 준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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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콜라시장을 분석할 때 재미있는 점은 바로 구 동독 지역에서 비타 콜라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 있다. 옛 동독 지역의 튀링엔주에서 온 한 친구는 비타 콜라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까지 냉전을 체험했으며 동독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 아래서 자랐다. 현재는 베를린에서 유치원 교사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커리어 우먼인 셈(사실 그녀가 비타 콜라의 역사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고향인 튀링엔에서의 비타 콜라 점유율은 무려 40%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구 동독 지역의 점유율은 평균 18% 정도 된단다. 문제는 서독 시장에서 아직 이 콜라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옛 서독 지역의 개척 여부에 따라 비타 콜라의 운명이 좌우된다. 베를린 지역에서는 특이하게도 동서 베를린 거의 모든 슈퍼마켓이서 비타 콜라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전환기 독일 사회를 경험한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던 것은 북한에도 그들에게 맞는 전통산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차가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이 부분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이는 앞으로 통일경제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쉽게 북한 이탈주민과 남쪽으로 피난왔던 할아버지 세대들의 경험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들의 경험과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결합해 북한 내 전통적 산업을 주민들에게 맞게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이는 남북경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통일 후 우리나라 기업의 무차별 투기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예로 들어 통일 이후 북한의 기존기업과 우리나라의 중소기업과 조인트 벤처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갑을 관계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등한 자본지배구조 및 합리적이며 상호호혜의 의사소통 구조는 통일 이후 남북경협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학계 및 산업계의 인사들도 이제 이 사회경제학적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며, 한반도의 올바른 산업구조를 이끌어가려는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위해 소장께서 언급하신 통일 이후 비용편익을 어떻게 최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필수다. 더불어 인문학적인 질문도 같이 다뤄져야 한다. 비용편익을 특정 기업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한민족에게 모두에게 실현시키는 방법 그리고 올바른 정의를 바탕으로 비용편익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는 자칫 우리나라도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는 네오나치와 같은 비슷한 문제를 똑같이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치적 상황에서 필자가 제기한 부분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통일을 꿈꾼다면 개성공단 재개의 노력과 북한지역 전통 및 현대 산업 연구를 통해 남북경협 및 통일경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남북경협, #개성공단, #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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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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