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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는 '이윤의 극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그렇지 않은 기업과 기업가들이 있습니다. 기업 설립의 목적도 '돈'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 있습니다. 감히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고 말하는 사람들, 지금부터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17일 오후 3시 21분]

"모두가 똑같았어요. 상영관에 앉은 사람들이 영화의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울었죠. 그들 중 대다수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이요. 오랫동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생각지도 못하던 거였죠."

이은경(46)씨는 2010년 11월 일본에서 배리어프리영화 <워낭소리>를 보던 날을 잊지 못한다. 1992년부터 스크립터, 조감독, 코디네이터 등을 거치며 '영화인'으로 살아왔지만, 그런 이은경씨에게도 배리어프리영화는 생소했다.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소비되는 영화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그날 이후, 영화를 바라보는 이씨의 시선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배리어프리영화(Barrier-Free Movie)는 기존의 영화에 화면을 설명하는 음성해설, 대사와 소리 정보를 알리는 자막을 넣은 것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서 시각·청각장애인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말 그대로 영화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화 참 좋아하잖아요. 영화가 끊임없이 화제에 오를 정도로요. 그건 장애인들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다만 그들에겐 기회가 적을 뿐이죠. 일본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영화를 통해 함께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쯤 가져야한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죠."

이은경씨는 곧바로 배리어프리영화에 뛰어들었다.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함께한 후배 두 명도 이씨의 뜻에 동참했다. 2011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설립됐고, 그해 10월 <블라인드>가 한국의 첫 번째 배리어프리영화로 제작됐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사회적 기업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블라인드>를 시작으로 2년에 걸쳐 <도둑들>, <완득이> 등 상업영화에서부터, <달팽이의 별>, <엔딩 노트> 등 독립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총 14편의 영화를 배리어프리영화로 탈바꿈시켰다.

이번 4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15번째 배리어프리영화를 내놓는다. 천만 관객을 넘어선 화제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다. 4월 8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이은경 대표를 만났다.

영화를 통해 실현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소통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시각,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접근성을 높인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4월 8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은경 대표를 만났다.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시각,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접근성을 높인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4월 8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은경 대표를 만났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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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대표적인 배리어프리영화 선진국이에요. 영화제작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배리어프리영화를 염두에 두는 경우도 많죠.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저변이 넓으니까, 저작권 문제나 상영관 확보에서도 유리해요. 세금 혜택, 제작비 지원 등 정부의 역할도 잘 이뤄지고요."

배리어프리영화 제작의 첫걸음은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바꿀 영화의 저작권 확보다. 이은경 대표는 배리어프리영화의 제작을 시작할 때, 사람들에게 배리어프리영화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를 찾아 취지를 설명하면 "그거 장애인들만 따로 보는 영화인가요?"라고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배리어프리영화를 경험한 비장애인들도 본래의 영화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다고들 말해요. 화면해설 덕분에 영화와 시나리오 대본을 함께 감상하는 것 같다는 분도 있죠. 더 중요한 점은 배리어프리영화를 장애인들과 함께 즐기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거예요. 상영관을 나서면 '여기는 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이나 엘리베이터가 왜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아요. 영화를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공감의 기회를 얻으니, 장애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거죠."

배리어프리영화의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즐기는 데 있다. 영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더 많은 소통이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배리어프리영화가 한 편씩 만들어지자 영화계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커졌다.

영화제작사, 배급사들도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가고 있다. 저작권 문제 등을 협의할 때 긍정적인 반응이 늘었다. 이은경 대표는 "초창기에 비하면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뀌면, 관객들이 바뀌고, 그럼 배리어프리영화가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의 확대'가 필요, 영화인들의 참여가 큰 힘

"(기존의 영화를) 배리어프리영화화 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이 한국영화 같은 경우에는 천만 원 정도고요. (번역 등에서의 추가비용으로) 외국영화는 그 두 배 정도예요. 배리어프리영화는 단순히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넣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본래의 영화가 지니고 있던 감동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기존의 소리(본래 영화의 효과음이나 배경음악)와 새로운 소리(추가되는 화면해설 음성 등)를 정밀하게 조정하는 일이 필수적이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1년에 7~8편 정도의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해왔다. 제작비 중 30% 정도는 외부의 지원이나 후원을 받고, 나머지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자체 재원으로 충당한다. 그나마 작년에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3편에 대한 제작비 전액을 지원 받았다.

이번에 제작된 <7번방의 선물>의 경우, 배급사인 NEW가 배리어프리영화의 취지에 공감해 제작비를 선뜻 내놓았다. 최초의 사례다. 이은경 대표는 "뜻 깊은 일"이라며 "정부가 배리어프리영화 지원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제는 배리어프리영화에 들어간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제작한 14편 영화의 평균 제작비 회수율은 30% 내외. 배리어프리영화의 상영기회가 부족한 까닭이다.

배리어프리영화 중 가장 많이 상영된 <달팽이의 별>도 그 횟수가 60회를 막 넘긴 수준이다. 대부분의 상영은 부산국제영화제처럼 특별한 행사나 장애인복지관, 맹학교, 농학교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사회에서 배리어프리영화 상영이 문화 바우처 차원에서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상영관에서는 대관이 아니고서야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키 어렵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그 대안으로 전국의 상영관 일부를 '아름다운 영화관'으로 지정, 배리어프리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는 CGV신도림, CGV미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곳들도 상영회수가 주 2~3회에 그친다. 영상자료원도 꾸준히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지만 일반 관객에게는 접근성이 낮다. IPTV나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한 배리어프리영화 유통도 저작권 문제로 인해 <블라인드>, <소중한 사람>,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일부로 한정돼 있다.

그래도 이은경 대표는 낙관적이다. 그는 "지금은 초기 투자금을 까먹어나가고 있는 중이다"라면서도 "처음부터 한 5년은 사람들에게 배리어프리영화를 알리는 기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은 변화에 민감한 사회니, 그 가치만 인식시킬 수 있다면 지속가능성, 확장성이 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다행인 것은 배리어프리영화 초창기부터 영화인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원작 영화의 감독이 배리어프리영화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터치오브라이트>같은 외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원작의 감동을 살리는 것은 물론 배리어프리영화의 질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원작 영화의 감독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뜻 재능기부에 나섰다.

"화면해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하려면, 전문적인 배우나 성우의 도움이 필수적이에요. 스케줄이 바쁜 와중에도 웃는 얼굴로 참여해줬죠. 작업이 끝나고 나서도 다들 '다음번에 또 하고 싶다'며 좋은 반응을 보여요."

재능기부에 적극적인 것은 배우나 성우들도 마찬가지다. <달팽이의 별>에는 뮤지션이자 배우인 김창완씨가 도움을 줬다. 이밖에도 <완득이>에는 배우 최강희씨,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성우 전숙경씨 등 많은 이들이 배리어프리영화에 자신의 목소리를 선물했다. 이번에 제작된 <7번방의 선물>에 함께한 이는 배우 차태현씨다.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원작 영화의 감독이 배리어프리영화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도 배리프리영화화에 재능기부로 선뜻 참여했다.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원작 영화의 감독이 배리어프리영화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도 배리프리영화화에 재능기부로 선뜻 참여했다.
ⓒ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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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영화에서 생동감 있는 화면해설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배우나 성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재능기부로 <7번방의 선물>에 함께한 이는 배우 차태현씨다.
 배리어프리영화에서 생동감 있는 화면해설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배우나 성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재능기부로 <7번방의 선물>에 함께한 이는 배우 차태현씨다.
ⓒ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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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가짓수를 늘려가는 일"

"'배리어'라는 말은 장벽이라는 뜻이잖아요? 장벽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장애일 수도 있고, 사고방식, 편견일수도 있겠죠. 배리어프리영화는 사람들의 그런 장벽들을 없애고, 열린 마음을 가지게끔 만들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배리어프리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나가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은경 대표의 최우선 목표는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인식의 확대다. 일반 상영관에서도 배리어프리영화가 널리 상영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알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공서나 공기업,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상영기회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뜻깊은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짝을 지어,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초청하는 방식의 상영행사를 기획 중이다. 2011년부터 11월마다 개최하고 있는 배리어프리영화제도 올해는 크게 확대시킨다. 이은경 대표는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다채로운 공연도 마련해서,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가짓수를 늘려가는 일이에요. 우리가 DVD나 비디오테이프를 마다하고 영화관에 가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함께 영화를 즐기고 호흡하는 기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의 문화 복지 확대를 위해서라도,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은경 대표가 배리어프리영화로 초대하는 메시지다. 배리어프리영화 <7번방의 선물>의 첫 상영은 4월 18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다. 배리어프리영화의 더 많은 상영정보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arrierFreeFilm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상영요금은 일반 영화와 같다.

▲ 배리어프리영화 <완득이>의 본보기 영상
ⓒ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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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회적기업, #배리어프리영화,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장애인, #이은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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