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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5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권아무개군이 투신 자살 사망하였다. 지난 3월 11일, 경북 경산에서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한 고교 1년생 최아무개군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 사망한지 딱 2주만이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처음 접하면서, 나는 문득 재작년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연쇄 자살'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대한민국의 중등학교에서 3월은 아주 미묘한 시기다. 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기 초에 진급에 따른 학교 생활 적응과 성적 관리 문제 등으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강박적인 심리 불안 상태에 빠질 개연성이 높은 때인 것이다. 이번 두 건의 자살 사건에서 새 학년 초 특유의 불안한 징후 같은 것을 느낀 이가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본다.

권군은 올해 열여섯 살로 경북 지역에 있는 자율형사립고를 다녔다고 한다. 지난 13일, 2학년에 올라와 치른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는 인문계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1학년 때는 반장, 2학년에 올라와서는 부반장을 맡는 등 학교 생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온 것 같다.

권군은 투신하기 1주일 전쯤에 담임교사와 상담을 했다. 그는 그때 담임교사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행정학과에 가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전교 석차 10위 권 안에 드는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이번에 인문계열 1위를 차지했으니, 밝은 '웃음' 속에서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가졌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왜 권군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는 투신 직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문장을 남겼다.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

나는 권군이 자살한 이유가 이 세 개의 문장으로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가 봐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다. 대학 입시가 주는 과도한 중압감이나 최상위 성적 유지를 위한 심적인 부담감 같은 것들 말이다.

학생 자살 사망 사건은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

자살이 10대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학생 자살 사망 사건은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는 노동자들이 산재 사고로 하루에 여섯 명씩 죽어가는데도(2011년 기준) 그와 관련된 뉴스를 쉽게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혹여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르더라도 며칠간 선정적인 보도 경쟁이 이뤄지고 나면 세상은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교육당국이 자살사건에 때맞춰 대책 같지도 않은 재탕 삼탕의 대책들을 내놓는 것도 아주 상투적이고 전형적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교육당국은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을 포함해 '인성교육 중심의 수업 강화', '진로상담 강화', '학교체육 활성화' 등을 장강의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빼고 나면, 이미 재탕하고 삼탕하여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맹탕뿐인 것들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교육당국과 학교, 학부모, 언론 등 모든 권력 집단과 기성 계층 간의 공모자 의식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적극적 공모 의식은 아니다. 그저 기존 체제의 한 자락을 붙잡고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들은 큰 변화를 두려워한다. 아이들이 간혹(?) 죽어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다. 그렇다고 지금의 교육 체제를 바꾸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엄청난 혼란과 비용이 뒤따를 게 뻔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기존 질서에 구멍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 후의 결과 또한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므로 두려워진다. 그러니 내놓는 대책이라야 고작 현재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이 아주 가끔 '근본적인 대책'을 운운할 때가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그들이 내놓는 '대책'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다. 가령 이번에 교육부가 내놓은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인 '인성교육 중심의 수업 강화'나 '학교체육 활성화'를 보라.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인성교육'이나 '학교체육'을 강화하면 학교장이나 학부모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교사들이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했으니 포상 추천이라도 해야겠다고 추어올릴까. 인성교육과 체육교육의 위대한 힘을 알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려나. 이야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음조차 짓지 않을 것들이다. 저들은 이런 대책이 멀쩡한 말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우리 정신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알기나 할까.

자살 사망 배후에는 대학 입시 열풍과 성적 지상주의가 놓여 있다

이번 권군의 자살 사망 배후에는 대학 입시 열풍과 성적 지상주의가 놓여 있다. 이들 문제는, 이제 16살짜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하여금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다"고 말하게 할 정도의 위력으로 지금 우리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하면서, 나는 그 무게감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 감히 '오죽'이라는 부사어를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말은 실상 권군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의 어두운 이미지는 지금 2013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10대 아이들 모두에게 드리워 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는 일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렵고 더디더라도 '진짜 근본'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게 요지부동이니 불안하다. 권군이 다닌 학교는 이제 충격에서 벗어나 '우리만이라도 열심히' 모드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교육당국 또한 관련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자신들이 할 일은 다했다며 보람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면 이 세상은 전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조용히 굴러가리라. 그 사이에 또다른 '예비 권군'은 더욱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할 것이다.

공화국은 모두가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룬 나라를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2013년의 대한민국에 '10대'는 없는 모양이다. 10대가 빠진 공화국이라는 것. 수많은 '예비 권군'을 진정으로 어루만지는 손길을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나는 이런 대한민국이 정말 진정한 민주공화국인가 회의감에 젖는다. 그리고 무서워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생자살, #입시 열풍, #성적 지상주의, #민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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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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