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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과 취업난, 더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9.1%입니다. 이는 전체실업률 4.0%에 비하면 두 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정부 통계발표보다 훨씬 높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청년실업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실업 탈출’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고민과 고통을 나누면서 실업 문제 해결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니?"

엄마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잠깐 망설인다. 신문도 읽고, 신문에 나온 상식도 정리하고, '국회 정상화 방안'에 대해 논술을 쓰고 토론도 한다고 해야 하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갖고 고민도 해본다고 설명하려다 멈칫한다. 엄마는 이걸 '공부'로 받아들일까. 괜히 움츠러들어 '그냥 공부지 뭐' 한마디 하고 집을 나온다.

기자를 꿈꾸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뉴스를 읽으며 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일들을 겪으며 산다는 걸 배웠다. 그 곳곳의 소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 후부터 내 꿈은 기자가 됐다.

꿈이 구체화 된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멋모르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의 짧은 경험이 끝난 후다. 24시간 중에서 적어도 9시간, 많으면 12시간을 붙들고 해야 하는 일은 정말 '좋아해야' 하는 일이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곤혹스러운 날들 끝에 배훈 교훈이다. 2009년, 첫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후로 난 '백수'가 됐다.

올해로 서른,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독서실로

 해원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대신 꿈을 꾼다
 해원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대신 꿈을 꾼다
ⓒ (주)영화제작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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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서른.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 속에서 난 회사가 아닌 다른 목적지로 향한다. 오전의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보낸다.

스터디가 있는 경우 모임 장소로 간다.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의 스터디가 끝나면 간단히 밥을 먹는다. 혹은 그 자리에 앉아 미처 보지 못한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기도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네다섯 시가 되면 슬슬 펼쳤던 책을 가방에 넣는다. 과외 때문이다. 보통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때우고 두 시간에서 네 시간의 수업을 마치면 밤 열시가 넘는다. 엇비슷한 하루가 반복된다.

엇비슷한 하루하루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활동도 꾸준히 한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잘 '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들으러 다녔다. 소출력라디오 방송국(FM주파수 대역에서 1W 이하의 작은 출력을 이용해 제한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방송)에서 지역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듣고 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촛불집회 때는 인터넷 방송의 리포터를 하며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나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백수가 되고 나서야 진짜 세상을 조금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력서가 조금 채워지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힘이 됐던 책의 한 페이지 김중혁의 산문집'뭐라도 되겠지'중에서. 어떤 경험이든 언젠가 도움이 된다는 말에 위안을 얻어 찍어놓은 페이지
▲ 힘이 됐던 책의 한 페이지 김중혁의 산문집'뭐라도 되겠지'중에서. 어떤 경험이든 언젠가 도움이 된다는 말에 위안을 얻어 찍어놓은 페이지
ⓒ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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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줄의 경험이 적힌 이력서가 나의 언론사 합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1년에 적게는 3~4곳, 많게는 7~8곳에 원서를 넣었다.

서류면접은 그럭저럭 통과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연거푸 떨어졌다. 이러다보니 차라리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종 면접장에 가면 안내하는 담당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온 것은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그냥 연이 닿지 않은 걸로 생각하세요."

그럼 내 인연은 아예 없는 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왜 떨어졌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면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잘못된 부분을 고칠텐데···. 인연을 이야기하니 혼자 답답할 뿐이다.

'꿈'이 있어 좋겠다고?

주변에는 사회생활 4~5년차의 친구들이 수두룩이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의 모습과 맡을 일들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마냥 부럽다. 나는 어디까지 온 걸까 생각했을 때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건 아닐까 때로는 무섭다. 자기 일을 한다는 것, 자기 몫을 해낸다는 게 멀게만 느껴져 심란하기도 하다.

"꿈이 있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뭐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런 내게 친구들은 부럽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말 좋냐고? 외려 나에겐 꿈이 짐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한달 용돈은 자급자족한다. 그러기 위해 과외를 하고 간간이 들어오는 원고 작업을 하고,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자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예고 없이 과외에서 잘릴 때, 드문드문 들어오던 원고 작업이 마침 딱 끊겼을 때 생활고를 직면하면 앞이 깜깜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나한테 왜 이러나…'하는 마음이 들어 남몰래 훌쩍이기도 한다. 또래 친구들의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인데 그것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면 '꿈'은 나에게 '빌어먹을 꿈'이 되기도 한다.

서른의 나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자꾸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건 내가 이 일에 안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늘도 난 꿈을 품는다. 누군가는 차를 타고 10분 만에 간 길을 터벅터벅 걸은 탓에 들풀도 돌아보며 갈 수 있지 않았느냐고. 덕분에 더 잘 듣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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