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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또 한 명의 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학교폭력은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해법들을 제시하였다.

문제는 이 문제의 해결 당사자인 정부의 해법이 일관되게 CCTV 증설이나 경찰력 배치, 학교폭력 이력 생활기록부 기재와 같이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위주의 수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어린 학생들이 여전히 절망의 끝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최근 경산에서 목숨을 끊은 최아무개군이 유서에 CCTV의 성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적은 것으로 알려지자, 이것이 마치 더 성능 좋은 CCTV를, 더 촘촘하게 달면 된다는 해답을 제시해 준 것인양 그에 맞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즉자적이고 기계적인 총리실장 주재의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는 과연 우리나라 국가 최고기관의 회의인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CCTV 확대 설치 및 성능 개선, 경비실 확대운영, 폭력서클 집중 단속,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면실시, 스포츠클럽, 전문상담교사 및 학교전담경찰관 확대 등"을 학교폭력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방향이라고 제시한 이 관계 부처 대책회의는 이미 그동안 지겹도록 누차 반복해 왔던 지나간 유행가를 다시 틀고 있는 꼴이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아, 또 아이들은 계속 죽어 나갈 것이고 CCTV 업자들만 좋아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제시된 정부의 대책은 앓고 있는 병은 암인데 소화제와 진통제만 계속 처방하면서 그 복용량을 늘리라는 것과 같다. 그럴수록 약에 대한 내성은 강해지고 암세포는 더욱 크게 자라 전신으로 퍼질 뿐이다. 그러니 학교폭력은 해결되지 않고 죽어가는 아이들은 늘어갈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고 그것을 진심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대증 요법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온 사회가 함께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머리를 맞대고 찾아내 원인해결에 나서야 한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학교 안에도 있고, 학교 밖에도 있다. 1%에 들지 못하는 99%의 삶은 절망과 불행으로 가득찼고,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백수와 비정규직, 약자의 이야기에 귀 막고 오로지 힘 있는 자들 편에만 서는 사법부 ,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모든 것들이 학교폭력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알고 있다.

전인교육과 창의 인성 교육, 행복 교육 같은 것은 교육법전이나 교과부 문서에만 존재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학력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학교, 대학진학률이 성공한 교육의 지표로 평가받는 교육현실,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에 SKY 대학 진학을 자신의 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비정한 경쟁을 강요하는 입시제도, 인권존중을 가르치자는 학생인권조례를 대법원에 제소하면서 학교폭력 대책을 찾겠다는 교과부가 존재하는 교육현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교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학교마저 줄 세우는 교육 현실, 수업이나 생활 지도보다는 행정업무 능력으로 승진하는 교사 문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학교… 이 모든 것들 역시 학교폭력의 원인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 어디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관계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3월 15일 일선 학교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 현장 교사들의 애정과 관심',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발전시키는 창의 교육'을 학교 폭력의 해결책으로 이야기 했다고 한다. CCTV 를 이야기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한 것 같아 조금은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이 립서비스가 아니라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 교사들의 애정과 관심이 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지,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발전시키는 창의 교육이 왜 제대로 안 되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한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방문한 학교의 소위 창의 인성 프로그램을 극찬했다는 것에서 이런 불안감과 우려가 가시질 않는다. 왜냐하면 학교폭력은 어떤 특정 프로그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문화와 학교 내 인간관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내일부터 당장 각 학교마다 특색 있는 창의 인성 프로그램을 하나씩 계획해서 실시하고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올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체육활동을 강화하라는 교과부의 지시가 내려와 아이들은 일주일에 3일 이상 7교시를 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스포츠를 하면 정신이 건강해져 더 창의적으로 된다'며 체육담당교사를 배치하겠다는 박 대통령 말이 또 어떻게 학교 현실을 더 비틀어 놓을지도 우려된다.

제발 정부당국은 대통령이나 교과부 장관 말 한 마디에 춤추면서 학교폭력 대책을 마련했다고 요란을 떨지 말았으면 한다. 그 대신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는데 몰두했으면 좋겠다.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과 동시대에 사는 어른으로서 정부 당국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0년 경기도에서 혁신학교가 시작된 이래 현재 서울, 경기, 전북, 전남, 광주, 강원도에서 456개의 혁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전국 1만 여 개 학교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이긴 하다. 그러나 이 혁신학교들에서는 새로운 교육적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소통과 배려, 민주적인 학교 문화, 한 명의 학생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수업 만들기, 실적이나 보고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된 행사나 체험교육활동, 학부모 지역과 함께 하는 교육 등을 학교 안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사들이 서로의 수업을 공개하고 참관하며 수업 속에서의 아이들을 관찰하여 아이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학교, 토론과 모둠 수업을 통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것을 배우는 학교,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3주체 생활협약을 만들어 학교규정을 스스로 만들면서 지키는 학교, 지역의 생태 전문가들이나 지역 일터가 교사와 협력하여 생태교육이나 진로교육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학교, 학생자치가 살아 있는 학교, 교장과 교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학교 운영과 학교 교육을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학교, 다양한 문화 체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문화지수와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 담임들이 행정업무로부터 벗어나 학생상담과 생활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 여건을 만들어 운영하는 학교가 혁신학교다.

이렇게 운영되는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에 소통과 배려, 존중과 협력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고 왕따와 폭력이 자리 잡을 틈이 점점 좁아져 간다. 민주주의가 책 속에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학습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도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라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런 혁신학교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 주변의 집값이 오른다는 기사는 비록 혁신학교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학부모들의 요구로 혁신학교 지정이 된 학교들까지 생겨났다.

경쟁과 서열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학교에서 자존감을 상실한 아이들이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거나 혹은 절망의 나락에서 고립된 채 고통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서 왕따나 학교폭력, 자살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 활동을 늘려주거나 상담사를 배치하는 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학교의 문화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혁신학교는 아이들 모두를 잠재적인 가해자로 규정하고 처벌과 통제 위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대책이나 몇 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부분적 혹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는 시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학교폭력의 원인을 제거하고 있다. 수업을 비롯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교육활동과 학교에서 형성되는 모든 인간관계를 상호 존중과 소통의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학교 전체의 문화를 민주적인 것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신학교의 이와 같은 실험과 노력 속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학교폭력의 해법의 단초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현재 몇 개 지역에서 발효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교과부가 나서서 국가적인 차원의 법으로 제정하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싶다. 자신이 존중받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길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획일적이고 관료적인 우리 사회의 풍토를 감안하여 몇 가지 우려를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혁신학교는 이제 갓 2~3년의 역사만을 가진 초기 단계의 학교다. 따라서 학교폭력과 관련된 직접적인 계량화된 성과를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학교폭력대책위 건수 등과 같은 것을 학교폭력 해결지표로 삼아 그 결과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미 여러 언론매체에서 지적된 것처럼 현재의 학교폭력대책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실제보다 축소되거나 지나치게 원칙적으로 소집되어 부풀려지거나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둘째, 혁신학교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유의미하다고 하여 정부 차원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계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화 하라는 식의 정책이 생길까도 우려되는 점이다. 혁신학교는 철저하게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기초해서 만들어지고 운영될 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이름만의 혁신학교 확대가 아니라 혁신학교에서 구현되고 있는 민주적 문화를 어떻게 일반학교에 적용할 것인가를 정책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셋째, 안타깝게도 서울에서는 현재 문용린 교육감 당선 이후 누가 봐도 혁신학교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들이 진행되고 있다. 혁신학교 표적감사나 혁신학교 평가 등이 그것이다. 정부는 학교폭력 대책의 차원에서라도 현재 서울교육청에서 주도하고 있는 혁신학교 죽이기 정책을 중단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서로를 상처내고 그 상처가 깊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의 책무이고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을 막지 못하는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정책들을 나열하지 말고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길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길임을 인정하자. 한 발 앞서 이 일에 나선 혁신학교에서의 경험을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데 충분히 활용하기를 바란다.


태그:#학교폭력,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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