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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주민복지과장인 안규자씨 수필집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털던 세상>
 장흥군 주민복지과장인 안규자씨 수필집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털던 세상>
ⓒ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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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가 장흥댐 물에 투영된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잠겨 있는 누군가가 말을 건네는 성 싶다. 청산은 변함없이 오늘도 나를 찾아왔지만 정든 집과 전답을 물속에 남겨 둔 채 떠나 버린 옛 주인은 돌아올 줄 모른다고 말하는 듯하다. 눈을 들어 안개에 젖은 쓸쓸한 호반을 바라본다. 그들의 목소리를 남겨두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다섯 마리의 용이 하나의 구슬을 향해 둘러싸인 듯한 늑룡 1구는 마을 이름조차 늑룡(勒龍)이다. 16세기말 문위세(文緯世)공이 이 마을에 터를 잡은 후 400년 동안 남평 문씨가 성촌(成村)했던 마을이다. 정월 대 보름이면 수령이 400년 된 노거수인 당산나무에 나와 그해 마을에서 가장 사주팔자가 좋은 사람이 제관이 되어 동제를 지냈다.

6.25한국전쟁 전에 좌우익의 심각한 대립으로 동네사람 103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사립문밖에 낯선 인기척이라도 있으면 덜컥 문을 열어주지 않고 봉창 문으로 살그머니 내다 본 후에야 손님을 안으로 들이는 습성이 어느 결에 생겨나기도 했다." - 돌아올 수 없는 고향 (본문 124페이지)

35년간 전남 장흥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안규자씨가 수필집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털던 세상>을 냈다.

그가 장흥군 유치면사무소에서 면장으로 재임할 때 쓴 "돌아올 수 없는 고향"은 고향을 떠난 수몰민의 애환을 담은 글이다.

장흥군 유치면에 들어선 장흥댐은 지난 2006년 6월에 준공하면서 2200여 명의 마을주민들이 고향을 떠났다. 안씨는 유치면장으로 재임하면서 물속으로 사라진 유치면 마을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안씨는 35년 공직생활동안 틈틈이 쓴 글을 수필과 비평, 글의 세계, 대한문학, 자유문학, 에세이 포레, 좋은 생각 등에 기고하였고 그 글들을 모아 이번에 큰 아들 결혼을 앞두고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안씨는 2010년도에 <수필과 비평>에서 수필가로 등단을 하였다.

안씨는 수필집을 출간한 배경을 책 머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형적인 시골에서 태어나 여고를 졸업하기까지 지독하게도 숫자에 흥미가 없었던 저는
여중고 시절 국어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공무원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제 인생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도움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직장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자 했던 강박관념은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남아, 몇 줄의 글로써 저의 괴로웠던 심정을 토로하게 만들었습니다.

20일도 채 못 된 출산휴가를 마친 시점에서 핏덩이 아들을 시댁에 떼어놓고 돌아서며 뿌렸던 눈물이며, 주말이면 농사일까지 거들어야 했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몇 자 글자놀음을 하게 되어 수필가로 등단을 하고 책까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공직에 있다 보니 화장기 없는 얼굴로 외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꼭 외출해야 할 때면 마스크를 쓰거나 모자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인생의 초가을에 수필의 속성이 늘 그렇듯이 아무런 꾸밈없이 속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선 심정입니다. 주말을 보내고 헤어질 때쯤이면 엄마 목을 더욱 세차게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 때를 썼던 아들애가 어느덧 장성하여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습니다. 하늘에서 좁쌀 하나를 떨어뜨릴 때 땅에 꼿아 둔 바늘위로 떨어질 인연에 비유되는 것이 인간사 혼인이라고들 하는데 그 인연이 되어준 며늘아이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됨으로써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발표했던 글들을 함께 묶어 부끄러운 제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2013년 이른 봄 날 안규자

안씨는 현재 장흥군청 주민복지과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이다. 그는 수필집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며 겪은 업무와 주민들의 민원을 푸는 이야기와 세 아이를 키우며 겪은 집안에서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엮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장흥군청 공무원이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2살 시절 이었다.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1년간의 단기 군복무인 방위병생활을 하기위해 고향인
장흥군 안양면으로 돌아와 단기병으로 근무를 할 때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내 고향인 안양면사무소에서 공무원을 시작하여 대부분을 안양면사무소에서 보냈다. 안양면에서 호적계를 오랫동안 보고 있었던 그는 안양면 호적을 빠짐없이 외우고 있어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관한 민원이 들어오면 재빠르게 처리를 하여 주민들에게 칭송이 자자했다.

수필집 평설을 써주신 한승원님의 글이다.

"안규자의 문장은 다소곳한 고운 한복차림이기보다는, 구색을 제대로 갖춘 반듯한 양복 정장 차림이다. 그렇지만 근엄하지 않고 사근사근하고 상냥하다. 마음 올곧은 여인이 자기의 운신을 수줍어하고 어색하는 듯싶지만 다정다감하고 애옥하고 정확하다. 앞을 내다볼 때는 지금의 자리를 확인한 다음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다시 앞을 내다보는 정직한 예리함을 가지고 있다. <억불산은 말한다.>는 잔잔하고 차분하고 조리 있다. 안규자는 억불산과 한학자이신 할아버지로부터 음덕을 받아 바른 입지를 세우고 살아오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스스로 말하기를, "정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한다. 올곧게 공직생활을 이어오면서도 안규자는 부지런히 책 읽고 사유하고 글을 써서 수줍게 발표하고,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오기를 늘 게으리지 않게 실천궁행하였다. 자기의 삶의 의미를, 세상의 모든 워킹 맘들과, 자기의 사위와 새로 얻게 될 며느리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한다. 평생 삶의 궤적이자 화려한 일탈일 수 있는, 이 책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붓을 놓는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내가 짚어낸 것 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덕목을 발견하고 놀라고 기뻐할 것이다." - 한승원 소설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수필집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털던 세상은> 은 현직 공무원의 신분으로 수필집을 출간한 안씨만의 이야기라기보다 이 땅의 워킹 맘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직장과 가정 두 곳에서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는 워킹 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태그:#안규자, #장흥군청, #장흥군,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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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장흥군 마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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