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끔 내 근황을 묻는 이들이 있다. 지면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내 살아가는 모습을 훤히 알고 있다는 이들도 있지만, '깜깜 절벽'인 친구들도 있다. 어느덧 노인 연령으로 접어든 시절의 별 볼일 없는 내 근황을 소개하면서 으레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가고..."라는 말을 한다. 2010년 가을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요즘도 변함없이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에 가서 '대한문미사'에 참례한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1월까지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4대강 파괴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했고, 7개월을 쉰 다음 2012년 7월부터는 대한문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저녁의 '대한문미사'에는 최근 출소한 '용산참사' 유족과 관련자들이 미사에 함께 하며 인사를 했다.
▲ 용산참사 유족들 지난 2월 4일 저녁의 '대한문미사'에는 최근 출소한 '용산참사' 유족과 관련자들이 미사에 함께 하며 인사를 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대한문미사를 처음 주최한 쪽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었다.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하여'라는 지향으로 '용산참사·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4대강·제주 구럼비, 그리고 오늘을 생각하는 월요미사'라는 표어를 내걸고 2012년 7월 2일부터 시작된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한문미사는 지난해 11월 27일로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가 끝나고 새로 한 해가 시작되는 '대림절'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림절은 '판공(辦功)' 시기이기 때문에 특히 본당을 맡고 있는 교구 사제들의 성무가 한결 바빠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문미사는 계속 유지됐다. 제주 강정마을에 상주하시던 문정현 신부가 당분간 대한문 '농성천막'에 머물며 12월 19일 대선 때까지 미사를 지내기로 한 덕분이었다. 이 미사에는 서울 대교구 소속 사제들과 각 수도회 사제들이 함께했다.

대선이 끝나면 함께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대한문미사는 대선 후에도 계속됐다. 선거 결과는 대한문미사의 마침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주최자로 나섰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하 천정련)은 천주교 각 교구와 수도회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와 여러 인권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전국적인 조직체다.

천정련은 대한문미사에 '함께 살자!'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서울의 재능교육·인천의 콜트콜텍·대전의 유성기업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의 눈물겨운 농성투쟁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대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뜻이었다. 이 연대에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강원도 삼척의 핵발전소 건설과 경남 밀양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함께 하게 됐다.

또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국민은행 앞에서 '대학강사 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를 요구하며 수년째 농성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도 연대에 합류했다.  

'함께 살자!'라는 표어는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절한 느낌을 안겨주면서 '연대'의 의미와 실체를 좀 더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음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약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연대'뿐이다. 부자들만 사는 세상이 아닌, 가난한 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대, 또 그것을 지향하는 '함께 살자!'라는 표어는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이며 외침일 수밖에 없다.

'함께 살자!'라는 호소

2월 4일의 '대한문미사'에는 서울대교구 원로 사제 함세웅 신부가 참례하며 인사말을 했다. 올해 '은퇴사제'가 된 함 신부는 은퇴 후 매번 '대한문미사'에 함께 하고 있다.
▲ 함세웅 신부 2월 4일의 '대한문미사'에는 서울대교구 원로 사제 함세웅 신부가 참례하며 인사말을 했다. 올해 '은퇴사제'가 된 함 신부는 은퇴 후 매번 '대한문미사'에 함께 하고 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천정련은 "함께 살자"라는 지향의 미사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때까지만 지내기로 계획했다. 비록 대선 결과가 '대한문미사'의 종결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뭔가를 기대해보려는 뜻이었다. '경제민주화' 공약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상생'의 정치가 펼쳐지기를 소망하는 뜻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이상한 출발과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종이 가시화되면서 천정련은 그 희망을 접게 됐다. 대한문미사의 마침표는 이미 천정련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인식도 폭넓게 자리하게 됐다.

거기다가 지난 3일 새벽에 발생한 대한문 옆 '함께 살자 농성촌' 화재사건과, 농성천막을 새로 짓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어렵게 복구한 23명 희생자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드는 서울시 중구청의 태도는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 의지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천정련은 지난 4일 저녁 미사 후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여러 사제들과 수도자들, 다수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문미사'의 지속 여부를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이어 천정련이 대한문미사의 주최자로 나섰지만, 천정련 임의로 미사 종결을 결정할 수 없다는 뜻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회의는 '대한문미사 지속'이라는 결정을 낳았다. 용산참사 유족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23명 희생자 유족들도 함께 하는 미사,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연대'의 힘과 결실을 소망케 하는 미사를 계속 유지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본 뒤 오늘(11일) 오후 6시 30분, 다시 '대한문미사'가 거행된다. '함께 살자!'라는 절절하면서도 절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표어가 하느님께 예를 올리는 제단에 지속적으로 있으며 이 세상에 복음의 실체와 실증으로 현현하게 된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거리의 기도'

지난 4일 저녁의 '대한문미사'는 전날 새벽 방화로 전소된 '함께 살자 농성촌' 화재 현장에서 찾아낸 불에 탄 제구들을 놓고 미사를 지냈다.
▲ 불탄 제구들을 놓고 지난 4일 저녁의 '대한문미사'는 전날 새벽 방화로 전소된 '함께 살자 농성촌' 화재 현장에서 찾아낸 불에 탄 제구들을 놓고 미사를 지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오늘도 나는 오후에 서울 대한문으로 향한다. 지난해 7월 2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행진이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 '대한문미사'에 가지 못했다. 지난 2월 11일, 설 명절 다음날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한 집안의 장자로서 명절을 집에서 지내야 할 사정도 있었지만, 설 다음날의 주차장을 방불케 할 고속도로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서울에 갈 수 없었다.

매월 11일은 초등학교 동창들의 친목회가 월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또 나는 고장 성당의 성가단원인데, 부활대축일을 코앞에 둔 사순시기라서 오늘부터는 월요일 저녁에도 성가연습을 하기로 했다. 나는 미리 동창 친목회장과 성가단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가는 사정,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를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빼앗기고 내몰리고 억눌리며 사는 사람들, 이 시대의 예수님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길은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는 길뿐이다. 나이 먹어가고 있고, 건강도 온전치 않고,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홀아비동생 집에도 부단히 신경을 써야 하는 내가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세상의 공동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은 대한문미사 참례뿐이다.          

글쟁이 명색으로 이런저런 형태의 글을 쓰기도 하지만 나는 '행동 없는 글'을 경멸한다. '행동하는 양심'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행동부터 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실제적인 연대,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 밖 거리에서도 뜨겁게 기도하는 것, 내 생각과 행동을 일체화시키는 글을 지향하는 의지와 노력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울에 간다. 서울의 한복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뜨겁게 기도하기 위해. 혹한 속에서 두 손 호호 불며 미사를 지내는 고통 가운데서도, 또 차가운 겨울비를 맞는 가운데서도 진심으로 기도했던 기억을 소중히 안고 말이다.

지난 3일 새벽의 방화로 전소된 대한문 옆 '함께 살자 농성촌' 화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봉사자들이 뭔가를 찾고 있다.
▲ 화재 현장 지난 3일 새벽의 방화로 전소된 대한문 옆 '함께 살자 농성촌' 화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봉사자들이 뭔가를 찾고 있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태그:#대한문미사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함께 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