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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상생마을공동체 아름다운마을(서울 인수동·강원 홍천 효제곡 소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사귄 동생들에게 지난해 11월 '혼례를 준비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내가 직접 예식을 준비해본 경험이 있긴 하다. 그건 바로 7년 전 내 결혼식이었다. 그때는 전문업체에 돈 들여 맡기지 않고 우리 뜻대로 하고 싶어서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한 것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후 마을공동체에서 함께 하면서, 친구들과 더불어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의 과정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결혼 기획자가 되보기로 했다. 마을에서 혼인잔치를 치른 이들이 앞서 고민했던 가치와 지혜롭게 통과했던 경험을 듣고 당시의 자료들도 살펴봤다. 즐거웠던 기억과 감동스러운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각 잔치마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 쓰며 준비했던 친구들의 손길이 있었다. 결혼 당사자들 의사도 중요했지만, 같이 준비하는 이들이 모든 과정과 결정을 함께해야 '우리의 잔치'가 돼 풍성해질 수 있었다. 나 또한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친구들을 만나 의논하고 준비했다.

떠들썩 하지 않은 피로연.. 산책하듯 참석하는 결혼식

신랑신부도 하객들과 어울려 활짝 웃고 있다.
▲ 활짝 웃는 신랑신부 신랑신부도 하객들과 어울려 활짝 웃고 있다.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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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있던 지난 1월 19일, 인수동 아름다운마을 근처 호텔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당일 아침, 일찍부터 준비 주체들과 바쁘게 움직였다. 앞을 보고 길게 정렬돼 있는 좌석 배치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가운데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길을 남기고 반원을 그리듯 둥그렇게 의자를 놓으니 무대를 향한 집중이 훨씬 잘 될 것 같았다. 좌석 뒤에 선 하객들도 자연스럽게 둘러친 병풍처럼 어우러졌다. 신랑 신부도 하객석을 향해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잔치에 온 이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저 멀리 반대편의 환한 웃음과 기운까지도 느낄 수 있게 준비했다.

피로연은 가까운 나물밥집을 예약했다. 영양 풍부한 나물비빔밥과 된장찌개로 나도 아이 데리고 가서 맛있게 먹었던 곳이었다. 물론 이곳은 피로연 식당이 아니기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먹기엔 좁을 수 있어서 전체 규모를 파악해서 밥집과 상의하고, 시간대별로 인원을 적절히 분산시켜 식사할 수 있게 했다. 초대글에 식사 시각을 적어놓는 일은 필수였다. 덕분에 많은 인원이 차분히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듯 예식장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흥겨운 장구 가락을 시작으로 잔치가 열리고 신랑신부가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 들어왔다. 성혼 선포 대신 한몸 됨을 이루는 두 사람이 서로의 다짐을 담은 글을 읽었다. 신부는 "돌아보면 함께 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잠시 목을 메는 것 같기도 했다. 이어 부모님 덕담을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바라던 안락한 삶은 아니지만, 본인이 배우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모습을 존중하고 응원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결혼식, 사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의 것 아닙니다

친구들이 출퇴근길에 떠오른 음으로 곡을 만들고 한달이나 골몰해 가사를 붙여, 축하곡을 만들었다.
▲ 공연 선물 친구들이 출퇴근길에 떠오른 음으로 곡을 만들고 한달이나 골몰해 가사를 붙여, 축하곡을 만들었다.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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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경쾌한 창작곡으로 축가를 불러줬는데, 노래 짓기를 좋아하는 이가 출퇴근길에 떠오른 음으로 곡을 만들었고, 다른 친구들이 한 달이나 골몰해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공들여 연습한 결과, 떨지 않고 밝은 표정에 힘찬 목소리로 손발이 척척 맞는 공연을 선사했다. 신부와 한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언니가 사회를 맡았고, 식장 내부를 장식하고, 사진을 찍고, 추가 조명을 설치하고, 예식서를 만드는 일 등 수많은 참여가 어우러졌다.

본업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들이 이렇게 각자 재능과 품을 모으니 제법 멋진 잔치가 됐다. 역할을 분담하고 맡은 이들이 모둠을 지어서 하니, 부담스럽기보다 잔치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과정에 더 창의적인 생각과 최선의 선택들이 나왔다. 모두의 잔치로 여기면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평소 신랑신부와 지내던 일상처럼 표현하고 흥겹게 놀고 어울릴 수 있었다.

관행적인 모습과 달리 검소하고 신명나게 치른 혼인 잔치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식의 대안은 새로운 관계 맺음에서 나온다. 한마을에 살면서 두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준비했기에 어느 웨딩플래너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예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결혼은 '사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 됐다. 때문에 삶을 함께하던 친구들은 물론 신랑신부마저도 소외되고 외부업체에 의존하게 됐다. 혼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자본화된 이 시대에 마을에서 펼쳐지는 혼인 잔치는 '새로운 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은 어떤 정점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항해의 시작이다. 마을에서 함께 열어준 축복의 길 속에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의 삶을 계속 지켜봐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신랑이 된 친구는 잔치 전날 밤 "잘 살겠습니다, 아니 잘 싸우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잘 싸우고 잘 풀고 그 과정을 통해 잘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두 사람을 집들이 초대로 만나는 게 아니라 다음날부터 마을 일상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 앞에 선 두 사람의 씩씩한 걸음에 부모님도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 한 몸 됨의 길 새로운 삶 앞에 선 두 사람의 씩씩한 걸음에 부모님도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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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과 강원도 홍천 효제곡마을에서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이야기 <아름다운마을> 35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아름다운마을, #마을공동체, #혼인잔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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