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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개정 시행되고 있는 현행 입양법에 대해 재개정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조항은, 입양을 위해서는 아동의 친생모를 명기한 아동 가족관계등록부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입양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혼모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산 사실이 남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입양대기 아동 중 입양을 못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지난 1월 백재현 의원을 대표로 입양법 재개정안(일명 '코제트법')이 발의되었다. 유기된 아이 뿐 아니라, 미혼모가 원할 경우 독립된 아동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할 수 있도록 입양법을 재개정하자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한국에서 미혼모 당사자와 그 자녀의 삶 자체이다. 과거의 경험, 추상적 논란과 이론, 국제적 협약과 권고, 선진국의 사례... 이런 것들은 사실 그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따라서 꽁꽁 숨겨진 그들의 삶 자체를 어떻게든 논의의 표면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혼모 단체 인터뷰를 계획했으나, 미혼모들은 외부 노출, 특히 언론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부득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오랜 기간 미혼모 단체와 인연을 맺으면서 자원 봉사자, 멘토 역할을 해온 유지숙씨를 만났다. 그녀는 두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서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과, '동방 한마음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대부분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청춘인 미혼모들을 대신해 적어도 그 연령대의 여성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얘기해줄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구행동네트워크 사무국 활동가이며 10대 섹슈얼리티 인권센터에서도 속해 있는 10대 여성 쥬리님과도 함께 했다.

"입양법, 미혼모들에게는 폭력적으로 실현될 수 있어"

'두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서, 자녀의 생모와 같은 미혼모들을 위해 자원봉사와 멘토역할을 해온 유지숙씨.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과, ‘동방 한마음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미혼모 시설과 관계를 맺어 온 유지숙씨 '두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서, 자녀의 생모와 같은 미혼모들을 위해 자원봉사와 멘토역할을 해온 유지숙씨.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과, ‘동방 한마음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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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숙씨는 그동안 미혼모 단체와 관계를 맺으신 걸로 아는데요.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와 해 오신 일들을 간략하게 얘기해 주세요.

유지숙(이하 유):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서, 당연히 아이의 생모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첫 아이 엄마를 찾아 만나고자 시도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엄마는 만날 수 없지만, 우리 아이 엄마와 같은 처지에 있는 미혼모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멘토 같은 존재가 되어 주고 싶었어요.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힘내라는 말 정도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알게 된 한 미혼모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어요.

- 이 인터뷰를 계획하면서 미혼모 협회장 목경화씨에 대한 기사를 검토했어요. 목경화씨는 되도록 양육하는 미혼모들이 많아져야 미혼모에 대한 편견도 없애고, 국가의 지원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생명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고, 죄책감을 벗는 길이기도 하다고요. 이런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 미혼모 단체와 인연을 맺은 게 5~6년 쯤 되는데요. 2008년 미혼모들과 했던 대화를 잊을 수 없어요. 하루는 제가 준비해 간 식사를 마치고 나서, 미혼모들이 저에게 물었어요. 아이 양육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미혼모들에게 최선인지 말해 달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엄마가 낳았으니까 일차적으로는 엄마가 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요. 나중에 '언니 말대로 우리가 다 기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잠을 못 잤어요.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사회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책임인가를 잘 알잖아요. 그 미혼모들은 19살, 20살, 21살이었어요. 어쨌든 세 명 중에 한 명은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포기를 했고요. 그 중에 한 명은 뜻있는 연예인이 후원을 해줬어요. 살 곳을 마련해 주고, 한 달에 30~40만 원씩 지원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연락도 다 끊고 사라졌어요.

또 한 명은 그 아이를 다른 쉼터로 데려갔어요. 그런데 아직 아기 보기에는 엄마가 성숙하지 못해서, 아기가 울고 잠도 안 잔다고 너무 많이 때렸대요. 수녀원에서 길렀는데, 수녀님이 '너 매일 담배피우고 애한테 화풀이하니까 나가라'고 해서 친정집으로 돌아갔대요. 수녀님만 계신 외진 쉼터에서 아기를 기르자니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거죠. 제 얘기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양육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무조건 네가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라, 너는 엄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혼모에게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고 일차적인 양육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일리 있는 얘기죠. 그렇지만, 미혼모가 양육을 많이 하면 경제적 지원도 많아지고, 사회적 편견도 사라진다는 것은 결과주의적인 생각이고요. 미혼모가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사회적 가치관이나, 시선, 협조, 시스템이라는 과정이 더 우선 되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많이 기르면 좋아질 거란 건 앞뒤가 뒤바뀐 얘기죠.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과 경제적 지원 시스템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양육 미혼모들이 많아지는 거죠. 그리고 이것을 왜 자꾸 미혼모에게 다 감당하라고 해요. 그 아빠(미혼부)들은 죄다 어디 가고요.

- 그리고 보니 미혼모 문제와 입양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미혼부의 책임에 대한 논란은 거의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행법상 입양 보내기 위해서는 생부의 입양 동의서도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호주제라는 오랜 법 전통이 있었으니, 미혼모보다는 오히려 미혼부의 가족관계 등록부에 올리는 게 사회적 정서에 맞지 않나요?

유: 현행 입양법의 출생신고는 미혼모 앞으로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미혼부를 찾아내어 입양동의서를 받는 것까지 미혼모가 해야 해요.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 미혼모는 입양숙려기간 동안 몸조리도 못하고, 생부를 찾으러 다니죠. 많은 경우 생부는 안 만나주고 피하거나, 만났다 하더라도 입양동의서를 써주지 않기도 해요. 게다가 미혼모가 미성년자일 때는 생부뿐만 아니라, 미혼모의 양친 동의서까지 받아야 하죠. 동의서를 받지 못하면, 그에 대한 사유서를 써서 정상참작을 바라기도 하는데, 받아들여지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해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경우에도 대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요. 이렇게 입양이 어려우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양육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사회의 특수성, 미혼모에 대한 의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입양법이 현실의 미혼모들에게는 매우 폭력적인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미혼부, 미혼모 중 누가 더 책임이 있느냐를 따지기 전에, 대부분의 미혼부모들은 아직 사회적으로 어떠한 기득권도 갖지 못한 10대, 20대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책임 없는 행동을 해서 아이를 낳았기에,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걸까?

모든 출생은 사회적으로 환영받아 마땅하며, 국가의 존속을 위해 국민의 재생산은 필수적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강조하면서도, '양육과 교육'이라는 국가의 책임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돌려 버리기 때문이다. 쥬리님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쥬리(이하 리): 한국사회에서는 양육의 문제를 '정상 가정'을 전제로 한, 굉장히 사적인 문제로 취급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남들처럼 자식 가르치고 기르기 위해' 과다노동도 하는 거죠.

혈연으로 맺어진 엄마 아빠의 '정상 가정'만이 아이를 책임지고 양육해야 하며, 그에 못 미쳤을 때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죠. 이런 현실 속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것인지, 입양 보낼 것인지 하는 결정은 당연히 자신의 자유 의사에 따라야 겠죠.

만약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극복되고,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굳이 누가 누구의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생물학적 엄마도 있고 키워준 엄마도 있고, 아이가 자기 생물학적 엄마를 가끔씩 만나서 놀기도 하고, 그게 어떤 충격이나 상처 없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 입양 법 개정 후 가까이서 바라본 미혼모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유: 입양법이 개정되면서 입양이 많이 줄어서 대기 아동 가운데 20% 정도만 입양되고 있어요. 미혼모 시설에는 입양을 보내는 미혼모들이 줄고 있고요. 사실 우리나라에는 미혼모 보호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인연을 맺은 미혼모의 집도 언제나 대기 인원이 밀려 있어요. 그래서 미혼모 시설에서의 양육모 비율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게 양육모가 늘었다는 증거라고만 보기는 힘들어요. 출산 전 미혼모가 전화로 상담을 할 때,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기 이름을 올려야 입양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냥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리고 나서 더 이상 연락이 없으면, 상담하신 분은 전화했던 미혼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러다 보니 쉼터에는 대부분 양육하는 사람들만 들어오게 되는 거죠. 또 입양보내기로 하고 들어왔어도, 양육모들을 보면서 마음을 바꿔 양육하겠다고 결정하기도 해요. 그렇게 데리고 갔다가 중간에 다시 데려다 놓고, 또 다시 데려가고 하는 경우도 많이 봐요. 애기한테는 치명적이죠. 계속 버림을 받는 경험을 하는 거니까요.

- 그렇다면 되도록 미혼모가 양육을 많이 하도록 하고, 적어도 성장한 입양인이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현행 입양법의 정신에 반대하시는 건가요?

유: 제가 만나본 미혼모들 중에는 경제적 지원이 없어서 양육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30%밖에 안돼요. 그게 양육을 하는 데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거죠. 70% 정도는 그게 아니라 "내 인생이 너무 길다. 아직 10대인데..." 라는 이유가 더 커요. 쉽게 말하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없는 거죠. 내가 10대인데 이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부모로서 뒷받침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인 거예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한데, 아기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자신 없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은 사회적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양육을 해라, 혹은 출산 기록을 남겨라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미혼모 역시 양육에 필요한 지원 받아야"

- 미혼모들이 양육하기로 결정했을 때 겪는 구체적 어려움이 무엇이며, 그를 위해 어떤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얘기해주세요.

유: 엄마가 공부하러 가는 시간에 애기를 봐주는 봉사를 한 적도 있는데요. 알다시피 미혼모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자퇴했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데, 모유 수유하는 경우는 굉장히 힘들고요. 엄마가 가서 하루 여덟 시간 공부하고 오는 동안 아기를 봐줄 수 있는 자원봉사 시스템도 잘 안되어 있어요. 미혼모들이 사회에 나가서 아기를 양육하면서 직장과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죠. 직업을 구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다 신뢰의 문제인데요.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으로 모든 신뢰가 깨지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요. 이들이 아이를 양육하려면 당연히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까지 갖추어져야 해요.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양법을 개정하고, 양육하는 것이 옳다고 부추기면 미혼모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빠집니다.

- 국가가 '정상 가정'의 아이들도 있고, 미혼모의 아이들도 있는데, 특히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각에서는 '왜 우리 세금으로 미혼모들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식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문제 있는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꽤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식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리: 사실 부자한테 세금을 많이 물리고 복지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열심히 돈 벌었는데 왜 게으른 자들을 도와야 하느냐'는 식의 반응과 그건 맥락이 같은 거잖아요. 예를 들어 노숙인들을 보면서도 우리가 왜 세금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냐는 얘기를 하잖아요.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건 매우 원론적인 얘기죠.

유: 필요와 상황에 맞게 지원을 해주는 게 공평한 거죠. 결혼한 부모가 양육을 잘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이나 보육을 지원해야 하는 것처럼 미혼모는 그 처지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학생 인권조례의 항목에 대해서 이런 항목을 넣으면 '임신과 출산'이 장려될 거라는 반대가 꽤 큰 목소리를 내는 게 한국사회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원까지 하게 되면, 미혼모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리: 사실 모든 사회에서 섹스는 좋고 황홀하다고 하잖아요. 또 성은 소비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청소년들에게는 엄격히 금하고, 섹스를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죠. 지금과 같이 가족이 양육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서는 미혼모뿐만 아니라 정상가족도 굉장히 힘들죠. 우리는 사회구성원들의 긴밀한 협력 없이는 삶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잖아요. 따라서 누구나 가족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도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모든 책임을 '가족'의 울타리로 돌려 버려요. 그래서 질병이나 사고, 불화 등의 이유로 가정이 흔들리면, 개인의 삶이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죠. 그러니까 미혼모든 정상가정이든 보육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지우는 불합리함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우리 사회에서는 미혼, 특히 청소년의 섹스나 출산의 문제를 없는 듯이 치부하고 직시하지 않으려 하죠. 이렇게 백안시하는 분위기 속에, 미혼모 문제는 바깥으로 밀려나고 제도적 지원도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는 같아요.

리: 부모가 '자식이 성적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려면, 자식을 인간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아이가 주체적 인간이고, 개별적 욕구가 있는 하나의 주체로 보지 않고, 그냥 자기 아이로 보기 때문에 무성적이어야 하는 거죠. 10대의 성관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자기 아이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로부터 독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모든 인간이 하나의 주체고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죠.

유: 우리나라는 부모자식은 소유개념이잖아요. 끝까지 놓지 못하니까 고부 간의 갈등도 생기는 거죠. 미혼의 출산 경험 자체도 큰 어려움이지만, 아이를 기르기로 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 특히 새로운 결혼의 가능성은 닫혀버려요. '네가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시각은 아이를 부속물로 보는 거예요. 우리는 각자가 가족에 대한 책임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있는 거지요. 이렇게 개인에게 양육의 문제를 전적으로 돌리면, 그 짐과 억압 때문에 미혼모들이 아이를 버리거나 낙태하는 일이 생기는 거죠.

- 그래도 입양인이 성년이 되었을 때, 자기를 낳아준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 권리도 기본권에 속하는 게 아닐까요?

유: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죠. 20세가 된 아이가 생모를 찾아온다고 가정해 보면, 대체로 미혼모 연령에 비추어 볼 때 생모 나이는 40세 전후겠죠. 그때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경우가 많을 텐데 만날 수 있을까요? 제 딸의 생모는 아이를 만나는 것을 거절했어요. 아이의 인권을 얘기하지만, 인권은 쌍방향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리: 미혼모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 힘든 현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 입양을 통해 미혼모들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그들의 딱한 처지에 공명하며 함께 했던 유지숙씨는 인터뷰 내내 현행 입양법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10대이면서 10대의 성과 인권에 대해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생각을 풀어가는 쥬리님의 한마디 한마디는 놀라웠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미혼모 협회장 목경화씨의 기사(지난 1월 30일자 이투데이)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는 어디에서도 팻말을 찾아볼 수 없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양육 미혼모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지만 이 협회는 팻말조차 내걸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사실이, 왜 미혼모들이 출산사실의 공식적 기록을 꺼리는지, 따라서 왜 입양법이 재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물론 양육을 결정한 미혼모들의 용기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고귀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지금 어둠 속에 떨고 있을 미혼모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지난해 8월 현행 입양법이 시행된 뒤로, 서울 난곡동의 베이비박스에는 아기를 맡기는 사례가 한 달에 한두 건에서 10건 이상으로 늘었다. 미혼모들이 남긴 편지에는 '현행 입양법 때문에 아기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사연들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베이비 박스에 2012년 12월 25일 도착한 아기의 사연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새벽 5시, 베이비박스에 탯줄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혹한에 보랏빛이 된 아기가 유기됐다. 아기는 얇은 내의 하나에 기저귀 대신 여성용 생리대를 차고 있었다. 새벽 1시에 아기를 출산하고, 피도 닦지 못한 신생아를 여덟 줄 편지와 함께 베이비박스에 남긴 것이다. 엄마는 모텔에서 아기를 낳은 뒤, 몸도 추스르기 전에 혹한의 밤길을 걸어 아기를 두고 갔다. 이것이 그 실태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한국 미혼모들의 현실이다.

홀로 해산한 여성이 두려움 속에서 걸어갔을 혹한의 밤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장 위기에 처한 한국의 미혼모들에게 긴급구호의 손길을 내밀 것인가, 재난이 제거되고 사회체제가 정비될 때까지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하라고 할 것인가? 입양법 재개정은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태그:#입양특례법, #미혼모, #입양법 재개정, #베이비박스, #코제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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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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