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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철폐가 적힌 주황색 손수건을 두르고있네요.
▲ 수술후 깊은 잠에 빠진 모습 비정규직 철폐가 적힌 주황색 손수건을 두르고있네요.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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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눈이 침침하고 사물이 흐리게 보여서 안과에서 눈에 주사까지 맞는 등 치료를 받았습니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차츰 시력을 잃어간다는 의사의 말에 남편에게 하지 말아야할 말을 저도 모르게 해버렸습니다.

"나, 그만 살고 싶다."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새벽이 무서웠습니다.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을 많이 하니까요. 그래도 호전되지 않아 큰 안과에 가서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며 혹시 모르니 뇌 MRI를 찍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아픈 모습이나 힘든 사연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공황발작을 하는 저는 가끔 응급실을 갑니다. 그래서 안정제를 맞고 MRI 검사를 했습니다.

"뇌종양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는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군요. 눈앞이 막막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오래 못 살면 어떡하지.' 1년만 더 살고 싶었습니다. 아니, 6개월, 3개월만 더 살고 싶었습니다. 40년 넘도록 마음 편히, 정말 행복하게 산 적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내겐 이래저래 고통만 따르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도 거스름돈 받을 생각도 못하고, 4+3이 뭔지 계산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집에서는 차근차근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남에게 얻은 옷이나 낡아도 아까워 못 버렸던 제 옷가지 등을 하나 둘씩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메모지에 아이의 돌반지와 보험증권 등을 어디에 놔뒀는지 적었습니다. 제가 게으르게 사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소하게 챙겨야할 게 많았습니다.

고통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뇌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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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이 들고, 피눈물까지 흘리던 모습 .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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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뇌종양은 10여년 전에 생겼을 거라고했습니다. 아, 그때라면 남편이 삼성에 맞서 투쟁하다 두 번째 구속되던 해였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를 데리고 삼성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생계와 육아, 옥바라지까지 날마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쥐나듯 아프고 뒷골이 댕기곤 했었는데 결국 이런 병이 생긴 것입니다. 제 인생 중 가장 힘들 때, 머릿속에 종양이 생긴 것도 모른 채 10년 넘게 살아온 것이지요.

괜찮아, 좋아질 거야, 다 잘 될 거야!

수술을 앞두고 제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가끔 헛소리할 때도 있고, 기억력도 없어졌습니다. 글을 쓰면 문장이 이상할 때도 있고요. 수술 후, 이상증세가 생길 수 있다고 했는데 수술 전부터 혼이 빠진 탓인지 어리바리해졌습니다.

제가 불안증세도 심해서 의사는 수술 전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무슨 충격을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마음 편히 가져야 한다고요. 별의별 생각이 나고 많이 두려웠지만 이상하게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더군요.

'괜찮아, 좋아질 거야. 지금의 이 고통도 지나간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불안했던 마음이 금세 편해졌습니다. 수술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니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집도의를 믿고, 나 자신을 믿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취 직전까지 농담하는 여유를...

낯선 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 실밥 풀기 직전 낯선 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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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젊은 의사는 수차례 겁나는 말을 했습니다. 

"수술하면 헛소리할 수 있고, 실명될 수도 있고, 잘 안 들릴 수도 있어요."
"(웃으며) 네? 지금도 헛소리하는데요?"

의사가 바리캉으로 제 머리카락을 박박 밀 때도 농담을 건넸습니다.

"수술 부위만 밀까요, 아니면 전체 다 밀까요?"
"어차피 머리 감지도 못할 텐데 시원하게 다 밀어버리세요. 하하"

"선생님, 제 머릿결 자연갈색이고 좋은데 버리지 말고 팔아서 용돈하시죠?"
"그럴까요?"

한쪽 눈엔 검은자, 한쪽 눈엔 흰자

멀리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미경아, 괜찮나?" 수술이 끝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답도 못하고, 눈을 슬며시 떴는데 남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수술시간이 회복까지 걸쳐 9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게 백 명 중 한 명 정도 생긴다는 뇌경련이 약간 생겨서 한쪽 눈엔 검은자만 또 한쪽 눈엔 흰자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면회 왔다가 급히 나갔던 것입니다. 갑자기 코에 뭔가가 씌워지고 기도 속으로 호스가 들어가는 걸 느끼는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뒤에도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잠이 쏟아졌습니다. 약, 항생제, 수액 등 맞는 게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기운도 없고 죽 먹을 때도 자꾸 졸고, 밥 때가 돼도 모르고 하루 중 거의 20시간을 잤을 겁니다.

침상 위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싸버리다

하루는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자다 깨어 침상 위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싸버렸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하고 실수를 한거죠. '어,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이 든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무 말 않고 환자복과 이불을 교체해주더군요. 미안해할 새도 없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나중에 같은 병실의 환자에게 웃으면서 실수한 얘기를 했더니 자신도 옷에 소변봤다며 웃더군요. 뇌수술이 정말 큰 수술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이후에도 약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머리를 만져보면 느낌이 수박 통통 두드리는 듯 이상하고 욱신거렸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신경이 예민해져서인지 TV소리도 듣기 싫고, 만사 귀찮아졌습니다. 건강하게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란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남편 손을 잡고 투표하러 갔어요.
▲ 살살 걸으며 투표하러 남편 손을 잡고 투표하러 갔어요.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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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기억을 못하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오래된 건 기억하는데 최근 알게 된 사람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5년간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까지 몰라봐서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수술 후 얼마간 기억을 상실하는 걸 '섬망'이라고 하는데 차츰 회복이 되어서 지금은 예전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서서 첫 걸음을 떼려다 중심을 못 잡고 엎어진 적도 있습니다. 병원 계단에서 넘어지기도 하고요. 기력이 너무 없어서 밥숟가락도 못 들고 누워버린 적도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너무 큰 나머지 정신과 육체가 병들어서 중증환자가 되어버린 지금 조금은 힘들지만 기운을 내려고 합니다.

3월이면 수술한 지 1년이 됩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봄바람 맞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날들입니다. 살아가면서 슬픈 일과 아픔,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날들의 너무 힘겨웠던 일들은 잊고 앞으로는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채 수술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제가 수술한 걸 알고 병원에 오셨더군요. 어떻게 알았냐고 여쭈니 꿈에 우리집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걸 엄마가 얼른 손으로 떠 받치며 다듬었답니다. 무너지면 또 다듬고를 여러번 반복해서 수술사실을 아셨다더군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부모님께 불효를 끼치지 않기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습니다.



태그:#뇌종양수술, #중증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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