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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매년 펼쳐지는 '병영삼일만세운동' 재현 행사. 1919년 4월 4일 이곳에서는 축구를 하던 지역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울산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매년 펼쳐지는 '병영삼일만세운동' 재현 행사. 1919년 4월 4일 이곳에서는 축구를 하던 지역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 울산병영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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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4일 오전 9시, 울산 중구 병영초등학교 운동장. 이 지역 청년들이 축구시합을 하기 위해 집결했다. 두 팀으로 나뉜 청년들은 심판의 호각소리가 나자 공을 찼다. 공을 차는 것이 신호였다. 축구 선수로 알았던 청년들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주민들에게 배포하면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앞장선 청년 20여 명이 어느새 1000여 명으로 늘었다. 울산병영삼일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해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된 삼일만세운동은 한 달이 지난 4월 4일 한반도 동쪽 끝에 있는 울산 병영까지 번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제는 총칼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애국 청년들을 진압했다. 당시 4명이 숨지고 22명이 일제의 손에 끌려가 투옥됐다.

병영주민들 '대한독립만세' 외치고 독립선언서 배포

1962년 공업특정지구 지정 이후 노동자의 도시로만 알려진 울산. 하지만 울산의 중심에 있는 중구 병영지역은 예로부터 애국심이 강한 독립만세운동의 발생지였다. 병영은 본래 '경상도 좌 병마절도 영이 설치되어 있는 곳'의 준말로 군사 주둔지를 뜻한다. 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종 19년(1437년) 붙은 지명으로, 지금도 병영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유달리 호국정신이 강했다. 1919년 4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병영삼일독립만세운동도 그 중 하나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촉발되자 그 당시 서울에 유학하던 이 지역 청년인 한명조, 이영호 등이 병영지역 청년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당시는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이 발전하지 않아 다소 지연됐으나 병영 청년들은 "우리도 만세운동을 해야한다"고 결의했다.

병영의 청년들은 미리 주민들에게 거사 사실을 알리고 독립선언서도 준비했다. 4월 4일 오전 9시를 거사일시로 잡은 이들은 당시 사립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자고 결의했다.

4월 4일 오전, 울산 중구 병영지역에 메아리친 '대한독립만세'에는 앞장 선 청년들을 비롯해 일신학교 학생들, 지역 주민들이 너나 할 것없이 합세했다.

일제는 당시 경찰서인 병영주재소를 운영했다. 대한독립만세 소리에 놀란 일제 경찰관은 급히 일본군 수비대에 연락했고, 경찰과 일본군 50여 명은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만세운동 기세에 놀란 그들은 그날 오전 10시경 병영주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에 4명이 숨지고 22명이 끌려갔다.

이후 살아남은 청년들은 일제 총탄에 숨진 열사들을 뒷산 중구 서동 황방산에 모셨고, '기미계'를 조직, 일제에 숨지고 투옥된 열사들의 패를 제작해 그 뜻을 기렸다. 지금도 황방산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위패를 모신 삼일당에서는 그 정신을 기린다.

병영삼일만세운동 재현행사, 병영초 일대서  매년 열려

 울산병영삼일운동 때 일제의 총탄에 숨진 열사들의 위패를 모신 삼일사 마당에 있는 충혼비. 이곳 출신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추모시를 썼다
 울산병영삼일운동 때 일제의 총탄에 숨진 열사들의 위패를 모신 삼일사 마당에 있는 충혼비. 이곳 출신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추모시를 썼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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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면서 이 지역 청년들을 주축으로 '울산병영삼일사봉제회'가 꾸려졌고, 봉제회는 병영초등학교 인근에 열사들의 위패를 모시는 삼일사 사당을 마련했다. 특히 지역 주민들은 지난 2000년부터 4월 4일이 되면 황방산에서 위령제를, 병영초등학교 교정과 병영사거리 등 당시 현장에서 일경과 대치하다 총칼에 순국하는 선조들의 만세운동 장면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면서 후대에 이를 알리고 있다.

울산병영삼일사봉제회 김기환 회장은 "병영주민들은 조상들로부터 병영삼일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커 왔다"며 "이 때문에 병영주민들의 충절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국의 삼일만세운동 사례를 파악해보니 병영의 피해자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했다"며 "그동안 당시 해당지역인 병영1동, 병영2동, 약사동에 국한되어 진행하던 병영삼일만세운동 제현 행사를 올해부터는 중구 13개동 전 주민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병영초등학교는 지난 1906년 사립 일신학교로 개교, 1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김기환 회장 등 병영삼일사봉제회 회원들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며 외솔 최현배 선생 등 1만9000여 명의 동문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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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사관과 같은 역사의 기록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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