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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을 키운다는 건
 아이 셋을 키운다는 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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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를 낳은 아내는 이번에도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대신 산후도우미를 불렀다. 이전에는 신생아가 엄마와 분리되어 백열전구 밑에 놓이는 게 싫다며 산후조리원을 거부했었는데, 이제는 신생아 말고도 아이가 둘이나 더 있는지라 이 녀석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는 이상 산후조리원은 불가능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산후도우미의 정치적 성향까지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는 터. 셋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퇴근한 내게 아내는 산후도우미가 참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노라며 그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애엄마는 좋겠어. 박근혜가 대통령이잖아."

산후도우미의 이야기인즉슨,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으로서 이번 대선에서 양육비와 관계된 공약이 많았으니 꼭 지키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양육비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도 많았다는 그녀의 주장. 과연 박근혜 정부는 그와 같은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

복댕이의 출생을 신고합니다

출생신고의 주인공 복댕이
 출생신고의 주인공 복댕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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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연휴가 끝나고 셋째 복댕이의 출생을 신고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 오전이어서 그런지 동사무소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그 중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양육수당이 적혀있는 창구에서 동사무소 직원들과 씨름 중이었다. 보육비와 관련된 새 정부의 공약이 3월부터 적용되니 최소한 2월 안에 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출생신고를 끝낸 뒤 세 아이와 관련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함은 물론이었다.

2년 만에 하는 출생신고.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째와 둘째의 주민번호는 아직 외우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내의 한자명 역시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출생신고서에 표기되어 있는 단어들은 왜 이리도 낯선지. 예컨대 등록기준지라 함은 예전의 본적지를 뜻하는 건가? 안 그래도 본적지는 항상 헷갈리는 상황인데, 왜 등록기준지까지 써서 내라고 하는지 원.

이런 불만을 가진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내 뒤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출생신고서 등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 같이 전화하랴,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랴 바쁜 모양새들이었다. 비록 국가는 모든 정보들이 전산화되었다고 선전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간소화는 아직까지 요원한 형국이었다.

묻고 또 묻고
▲ 보육비 관련 서류들 묻고 또 묻고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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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발빠른 움직임
▲ 가정양육수당 지원 박근혜 정부의 발빠른 움직임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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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출생신고를 끝내고 나니 동사무소 직원은 내게 보육비를 신청해야 하지 않겠냐며 친절하게 필요한 서류들을 건넸다. 셋째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정도 받는 줄 알았건만, 직원이 준 서류는 한 무더기였다. 정부가 이만큼 지원을 많이 해준다는 것인가? 아니면 행정적 편의주의에 길들어진 관료주의의 유물일까?

문서를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어쨌든 양육비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을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설문조사다 뭐다 해서 같은 사항을 너무 반복해서 묻고 있었다. 그냥 정부가 알아서 줄 수는 없는 걸까? 세금은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도 잘만 걷어가면서, 복지와 관련된 비용은 왜 이렇게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걸까?

난감한 얼굴로 문서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사무소 직원이 나를 부르더니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내게 나오는 비용인 즉, 구로구에서 셋째 출산 축하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60만 원과 서울시에서 다자녀 양육수당으로 지급하는 10만 원을 합쳐 도합 7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서류가 많은 건 3월부터 바뀌는 정책에 따라 다시 서명을 받기 때문이라나.

누구 닮았는가 보자
 누구 닮았는가 보자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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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가가 생겼어요
 우리에게 아가가 생겼어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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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음이었다. 3월부터는 새 정부의 정책이 적용되어 우리처럼 아이들을 보육기관에 맡기지 않는 가정에는 아이 연령에 따라 양육비가 지원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서울시에서 셋째 이상 다자녀 가구에게 지급되던 양육수당 10만 원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서울특별시 다자녀 가족의 영유아 양육지원에 관한 조례'에 의거하여 2008년부터 지급되던 비용이 중복지원 배제(제4조3항) 및 국고지원 우선 원칙(제10조)에 따라 중단된다는 사실.

기분이 영 떨떠름했다. 비록 새 정부의 공약 덕분에 국가로부터 그만큼의 육아비를 지원받지만, 어쨌든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혜택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지만, 정작 육아비용에 관해서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마는 정부. 물론 국가가 육아에 드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 예산을 4대강 같은 말도 안 되는 사업에 쏟아 붓느라 양육비 지원을 줄인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미래를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저당 잡힌 꼴이기 때문이다.

변질된 다자녀 가구 혜택들

그림의 떡
▲ 도우미 서비스 정책 그림의 떡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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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양육지원 중단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작년에 겪었던 산후도우미와 관련된 일화 등이 떠오르며 이와 같은 일이 계속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컨대 산후도우미와 관련된 사례를 보자.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아내는 작년 여름쯤 그래도 셋째는 구에서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해준다며 경제적으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었다. 비록 지원 대상이 전국가구 월평균 소득 50%이하로(242만2000원 이하, 5인 가구 기준) 규정되어 있었지만, 각 지자체의 예산 및 정책에 따라 그 지원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는 바, 우리가 살고 있는 구로구는 셋째 아이의 경우 월평균 소득 70% 이하까지 지원해 준다고 하니 우리도 그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신청하면 2주에 최소 80만 원 정도 하는 산후 도우미를 9만2000원에 쓸 수 있다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수밖에.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보건소에 전화해 본 결과 아내의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작년까지는 그렇게 지원되었지만,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다시 규정대로만 지원해준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 총선 전 정부는 갑자기 보육비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총선이 끝난 후 입을 싹 씻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정부가 말도 안 되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니,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이 없을 수밖에.

말도 하지 않고 생긴 한도 금액
▲ 정부의 전기료 감액 말도 하지 않고 생긴 한도 금액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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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또 하나의 사건은 다자녀 혜택 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3자녀 이상 가구 전기료 감액'의 변질이었다. 정부는 2009년부터 다자녀 가구에게 전기료 금액의 20% 할인을 적용시켜주었는데, 2011년 9월부터 은근슬쩍 가타부타 말도 없이 1만2000원을 그 한도액으로 설정시켜 놓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보건부 홈페이지에 한도액을 파란색으로 표시해 놓은 그들의 뻔뻔스러움이란.

결국 이와 같은 제도들의 변질은 다자녀 가구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나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말로는 언제나 출산율 증가를 외치지만 정치적, 사회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관련 정책에 메스를 대는 정부. 과연 박근혜 정부는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해 정부가 약속했던 2013년 상반기 내 다자녀 가구 도시가스 요금 5% 할인은 또 어떤 조건을 걸고 시행될까?

박근혜의 약속을 지켜본다

삼부자의 모습
 삼부자의 모습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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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3차 대선 토론 때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아이 기르는 비용을 국가에서 적극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0세부터 5세의 보육은 국가가 책임질 것이며, 다자녀 가구의 혜택으로 셋째 아이의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방안 역시 밝혔다. 그리고 워낙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걸 인식했는지 보육비와 관련된 공약은 다른 것들과 달리 비교적 신속하게 적용시켜 많은 부모들의 불안감을 불식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 스스로 증세는 없다고 한 만큼 복지예산 감축은 언제나 거론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보수 세력들은 국방세 증가가 그 어느 예산보다 중요하다며 복선을 깔고 있지 않은가.

인구는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아무리 강력한 국방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그것은 현재의 문제일 뿐, 그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출생률이 매우 낮았던 시대에 태어난 셋째 아이의 대학등록금 지원 같은 꼼수 말고, 지금 당장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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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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