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주민 변호사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주민 변호사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21일 오후 4시 40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현장. 청문회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며 증인 및 참고인 심문이 시작됐다. 참고인으로 박주민 변호사가 호명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인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누리집 '오늘의 유머'에 글을 남긴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에게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오유' 운영자의 변호인이다.

그를 처음 불러낸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박 변호사는 "대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정홍원 청문회'가 '국정원 국정조사'로 급변한 순간이다. 한동안 '국정원 댓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정 후보자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심문이 막을 내릴 찰나,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박 변호사를 다시 호출했다.

이완영(이하 이) : "인사청문회에 나올 때 어떤 질의응답이 있을 거라 예측 했습니까?"
박주민(이하 박) : "제가 예상한 것과 다른 질의들이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이 : "어느 의원실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달라고 했습니까?"

1,2,3... 약 3초간 정적이 흘렀다.

박 : "어디지. 민…병두 의원실 쪽에서 연락 줬다고…."

그는 자신이 어느 의원의 요청에 따라 참고인으로 청문회 자리에 섰는지조차 가물한 듯했다. 이 의원은 질의를 이어갔다.

: "놀랍습니다. 수사 중인 사건인데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나요? 왜 오늘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이것과 관련해 답변을 하는 거죠?"
박 : "저는 질문하신 것에 제 생각을 말씀 드린 거고, 제 생각을 말하라고 하셔서 한 것입니다. 왜 말했냐고 하시면…."

순간, <대장금>에서 음식에서 왜 홍시 맛이 났다고 말했냐 묻자 장금이가 "제 입에서는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스쳐 니자갔다. 박 변호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 의원을 바라봤다. 이 의원은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 : 아까 제가 듣기로는 참고인이 '국정원 직원 댓글 중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판하는 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 :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되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다"는 댓글을 달았고요, 이정희 후보가 TV토론 중에 '남쪽정부'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보다 더 강한 법이 있어야 한다"는 글을 썼습니다."
이 : "그 정도 글을 가지고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박 : "국정원은 지난 1월 31일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김아무개씨의 행위는 우리가 업무로 했다', 국정원에서 했다는 뜻입니다. 국정원이 업무 차원에서 '특정 후보의 대선 공약이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 것이 됩니다. 또한 '이 후보가 한 말이 터무니없다'고 했습니다. 국정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홍원 청문회', '국정원 국정조사'로 급변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인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김태정 전 검찰총장, 이준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재무회계 팀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인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김태정 전 검찰총장, 이준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재무회계 팀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 정도로 국정원법 위반'이냐고 따져 묻던 이 의원은 급히 주제를 바꿨다. 이번에는 명예훼손이다.

: "잘못하면 오늘 참고인의 발언을 국정원에서 명예훼손으로 걸 수 있어요!"
박 : "국정원이 대북심리전이라 인정했습니다. 즉, 국정원 차원에서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 지지 혹은 반대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이 : "국정원이 인정한 건 대북 (작전) 일환입니다. 참고인은 대선 개입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했어요!"
박 : "국정원법을 보면, 특정 정당에 관련해 국정원은 이야기를 해선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정희 후보에 대해서 입장을 썼습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 반대 의견을 조성한 겁니다. 국정원이 이를 업무 차원에서 한 거라 말했고요."

말문이 막힌 이 의원은 박 변호사의 말을 끊었다.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도리어 그는 박 변호사에게 "내 말을 끊지 말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 "제 질문은, 본 위원이 볼 때는 국정원 댓글은 정치개입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대북 작전을 위해서라고 보는 사람이에요, 저는. 이런 청문회 자리에서 지금 뭡니까! 모범적인 청문회가 정쟁이 되도록 발언하고 있잖아요. 수사 중인 사건을 단정적으로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말했어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참고인을 상대로 '협박성 질문'까지 등장했다.

박 : "저도 법조인이고, 제 양심과 법률지식에 의하면, 국정원법 조항에 위배됐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제 생각입니다. 제 생각과 판단이 틀렸다면 다른 문제제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제 생각을 말하는 것조차 문제라고 하면, 왜 제가 이 자리에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분한 어조로 답변을 이어가던 박 변호사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큰 한숨과 함께였다. 그러자 맹공을 이어가던 이 의원이 잠시 주춤했다. 그의 고조됐던 목소리도 다소 가라앉았다.

이 : "아니, 개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그러면…국정원 직원으로서 보면 명예훼손 감입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한 차례 끝난 후 이춘석 민주통합당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이 의원은 "출석한 분들의 답변 중 마음에 안 드는 증언이 있을 수 있지만 다 들어야 한다"며 "인사청문회 증언 및 감정 법률 9조를 보면 증인 보호 규정이 있어, 증인과 참고인으로 조사 받으면 그 진술로 인해 어떤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쏘아 붙였다. 이완영 의원의 '명예훼손'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춘석 의원은 "본인 의견을 발표한 것을 두고 나중에 처벌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누가 국회에 나와서 의견을 개진하겠냐"며 재차 문제제기했다.

'법률'이 등장하자, 방금 전까지 언성을 높였던 이완영 의원은 한 발 물러섰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을 해서 그런게 아니 의견으로서 질의한 것"이라며 "저 분에게 강요한 것도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마무리 지었다.

2차전은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이 이어받았다. 그는 '공직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견해'와 '대통령 후보가 우리 정부를 남쪽 정부라고 한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사상 검증'을 하려는 듯했다. 정점은 '정당 가입 여부'를 물었을 때 찍혔다. 박 변호사가 "진보신당에 가입했었다"고 답하자, 이 의원은 "시민단체가 정당에 가입하는 편향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지향성을 갖고 있는 게 원칙적인 모습이다, 무조건적인 중립보다는 정치적 방향성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박 변호사의 답변에, 또 주제가 변경됐다. 다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 직원의) 차를 들이 받아 주소를 알아낸 건 어떻게 생각하냐, 어떤 범죄가 성립하냐"고 물었다. '형법적 범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낸 이 의원은 "흉악범들이 쓰는 수법이 아니냐"며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에도 정홍원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과는 무관한 질의응답들이 계속됐다. 누구를, 어떤 사건을 따져 묻기 위한 청문회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이 이어졌다. 총리 후보자 청문회와 관련이 적은 참고인을 요청한 민주당, 참고인을 향해 '명예훼손'을 운운한 새누리당. 청문위원의 청문위원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청문회는 22일에도 계속된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 답변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 답변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태그:#정홍원, #국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