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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거목 최민식 사진작가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거목 최민식 사진작가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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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를 대표하는 사진가 중 한 명인 최민식 작가가 향년 85세를 끝으로 지난 12일 별세했다. 이 땅의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을 누구보다 연민하고 사랑했던 사진계의 거목 최민식 선생님, 그를 존경했던 독자이자 사진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애달픈 심정으로 삼가 조의를 표한다(빈소는 부산 용호동 성모병원. 발인은 2월 15일).

고인은 1928년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 소작농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자랐다.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는 가톨릭 성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초등학교 때 그림을 그리곤 하던 그에게 "밀레처럼 농민을 그려라", "돈 벌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고 하셨단다. 후일 그의 사진들은 아마 이런 좋은 말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

1960년 부산.
 1960년 부산.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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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나자 고인은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경중앙미술학원에 들어가 2년 동안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동네 헌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의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 사진책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며 사람들을 소재로 혹은 주제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시각적으로 예쁘기만 한 '살롱사진'을 멀리하고 주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찍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거지나 가난에 찌든 사진만 찍어 외국에 전시하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박정희 정부 당국의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로인해 후일 하마터면 삼청교육대에도 들어갈 뻔했다고 한다. 

1973년 부산.
 1973년 부산.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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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사진 창작은 민중의 삶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 민중의 참상을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인권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현실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알리기 위해서는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사랑이 먼저 사진 속에 녹아 들어야 한다."

그의 사진을 보고 왜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만 찍느냐는 어떤 이의 질문에 답한 최민식 사진가의 말이다. 내가 그를, 그의 사진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풍경 사진, 예술 사진만이 제일인 줄 알던 내게 사진이 지닌 호소력과 또 다른 매력을 알게 해준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집은 그래서 소중할 수밖에 없다.

1968년 부산.
 1968년 부산.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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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아이들 사진,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와 할머니의 시선, 뒷골목을 주름잡으며 짓는 골목대장들의 익살, 우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린 누이의 손길, 집 없는 가장의 옆에 망연히 서있는 아이의 눈빛까지….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존중하고 약자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그의 흑백 사진들처럼 진하게 와 닿는다.

궁핍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휴머니즘은 그가 추구하는 바이며 그만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그의 사진집을 보다 보면 최민식 선생의 작가 정신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건 바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 도와 주고픈 마음, 나누고 싶은 배려다. 그는 단지 "내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찍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 오르는 인간애와 희망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1963년 부산.
 1963년 부산.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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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부산.
 1965년 부산.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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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은 1968년 사진집 <인간(휴먼)> 제1집을 낸 이후 2010년 제14집까지 출간하는 등 지난해까지 한눈 팔지 않고 왕성하게 사진 작업을 해왔다. 1970년부터 미국· 일본·독일·프랑스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으며 영국·독일 등의 '국제사진연감'에 작품이 수록되기도 했다. 2007년에 사진 70점을 부산미술관에 기증했고 2008년에는 10만장에 달하는 필름과 사진작품, 사진집, 카메라 등 모든 비품을 국가기록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고인은 최근까지 우리나라 사진계에서 제대로 된 평가나 대접을 못 받았다. 이유는 그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고, 가난이라는 '끝나버린 주제'에 매달리며, 수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내내 활동하는 작가라서 였단다. 이런 세상을 향해 여든이 넘은 베테랑 사진가는 이렇게 일갈했다.

"사진이, 사진가가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태그:#최민식, #다큐멘터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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