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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사생활> 표지
 <10대들의 사생활> 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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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2는 막강하다. 오죽하면 북한이 남한의 중2 때문에 남침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그들의 '무개념'과 '허풍'은 가히 세계 최고라 할 만하다. 작년에 중2 담임을 맡았던 한 후배 교사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반 아이들 중 '정상'은 20%도 되지 않아요. 80%는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내가 보기에 후배는 아이들에게 조금 엄한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잘 받아주고, 몸과 마음으로 잘 소통한다. 반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면서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도 많이 한다. 그런 그조차 혀 풀린 소리로 '정상'과 '비정상'을 운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지금 대한민국 중학교의 현실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10대들은 왜 그렇게 충동적인가

10대들은 왜 그렇게 충동적인가. 주변에 있는 10대 동생이나 조카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수시로 바뀌는 말과 행동이 낯설 때가 많을 것이다. 듬직한 신사이자 요조숙녀인 동생이나 조카가 예측할 수 없는 '괴물'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도대체 그들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길래 수많은 부모와 어른이 10대들에게 이렇게 쩔쩔매는가.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교육부 교수인 데이비드 월시는 <10대들의 사생활>에서 이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책 제목에 '사생활'이 있다고 해서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이 책에는 10대 문제아들의 음험한 비행이나 그들만의 은밀한 개인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가 10대들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동원한 수단은 첨단 뇌 과학이다. 이를 옮긴이의 말을 통해 살펴보자.

10대 자녀의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행동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뇌의 지배와 발달적 특성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점을 알게 된 부모는 10대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변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내가 이 책에 기대를 거는 부분이다. (11~12쪽)

내 동생과 조카의 행동이 녀석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뇌가 명령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럼 뇌를 야단쳐야 해? 이것은 일종의 뇌 결정론이다. 첨단 뇌 과학이 유례없이 잘 나가는 때이긴 하지만 뇌에 관해 밝혀진 것은 아직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 않는가. 그래도 어쨌든 10대들의 행동을 뇌와의 관련성 측면에서 살핀 점만은 나름대로 신선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다정다감했던 게이지, 다이너마이트 사고 후 폭력적으로 변해

당신은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1860)라는 사람을 들어보았는가. 이 책의 제3장('10대들의 충동적인 생활')에는 그에 관한 일화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철도 노동자 주임이었다. 1848년 여름, 미국 버몬트 외곽의 철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그는 급작스러운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치명상을 입는다. 땅에 묻어놓았던 1.4미터짜리 5.9킬로그램 무게의 선로 쇳덩어리가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그의 왼쪽 뺨을 뚫고 머리 위쪽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죽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그 경악한 사고 속에서도 전혀 정신을 잃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모든 과정을 두 눈을 뜬 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고 직후 곧장 병원으로 옮겨진 게이지는 몇 주간의 치료 덕분에 건강을 되찾아 두 달 후쯤에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다정다감했던 그들의 주임이 잔인하고 모질며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1867년, 게이지를 치료했던 의사 마틴 할로(Martyn Harlow)는 게이지의 그런 변화가 뇌 전두엽의 광범위한 손상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이성적인 능력과 동물적인 성향 간의 균형이 파괴된다는 게 할로의 주장이었다.

뇌의 CEO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신체와 뇌 영역의 다양한 기능을 조절한다. 전전두엽 피질은 의사결정자이며 뇌의 다른 영역들이 제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사항의 비중을 가늠하는 계획자이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전전두엽 피질은 10대 청소년의 뇌 영역 중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85쪽)

저자는, 청소년기에는 전전두엽 피질이 피니어스 게이지와 같이 손상을 입지 않더라도 지속해서 변화한다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성격의 극적인 변화, 이를테면 충동적인 면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피니어스 게이지 증후군'으로 부른다.

10대들의 수면 패턴 알고 나면...

어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10대들의 행동 중에서 수면만큼 불가해한 것이 있을까. 잠을 사랑하는(?) 필자는, 교실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보면 오죽 피곤하면 저럴까 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하지만 동료 교사나 대다수의 어른들은 잠자는 아이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도대체 녀석들은 잠을 자고 또 자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잠이 모자란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10대들의 수면 패턴을 알고 나면 이들의 말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10대들의 수면 패턴이 바뀐다. 변화 중 하나는 뇌의 수면 조절 방식과 적절한 수면의 양이 변하는 것이고 또 다른 변화는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바뀌어 10대들이 졸음을 느끼는 시간과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대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280쪽)

저자에 따르면, 사춘기에는 멜라토닌(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점점 더 늦은 시간에 방출되고 멜라토닌의 수준이 떨어지는 시간도 점점 늦춰진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하는 밤 11시나 12시에 10대들은 말똥말똥해지고, 반대로 일반인들이 힘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오전 8시에 10대들은 녹초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교시 시간을 바꾼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1교시 조정은커녕 진작에 없앴던 0교시가 부활한 학교가 많다. 학교를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일제고사 때문에 말이다. 잠은 의지 부족 탓이라는 무식한 말로 아이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모는 어른들 또한 부지기수다. 세상 살 만큼 살아본 내(어른)가 잘 아니 너희는 내 말만 들으라고 을러메는 부모나 교사는 또 얼마나 쌔고 쌨는가.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10대는 10대다워야 한다. 그들이 못 말리는 변덕을 부리고, 때로는 종잡을 수 없고 듣기 거북한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순수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 '미래의 희망'인 대한민국 10대들에게 조그마한 애정이 있다면, 동시에 당신이 무식한 어른으로 계속 살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데이비드 월시 지음, 곽윤정 옮김(2011), 10대들의 사생활, 시공사. 378쪽. 값 16,800원.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사생활 - 부모가 놓치고 있는 사춘기 자녀의 비밀

데이비드 월시 지음, 곽윤정 옮김, 시공사(2011)


태그:#데이비드 월시, #<10대들의 사생활>, #뇌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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