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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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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전격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조계에서 평판이 좋았다는 김용준 후보자의 속살이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여러 의혹이 불거지자 우리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인 1970년대 초반에 김용준 후보자는 전국을 누비며 어떻게 알았는지 개발될 곳만을 골라 이곳저곳에 땅 투기를 했다. 김용준 후보자가 전국을 누비며 땅 투기를 했던 바로 그때 조세희는 철거민을 취재하다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이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명작을 고통 속에서 세상에 내놨다.

<난쏘공>은 그 당시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학생운동과 빈민·주거운동,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읽어봐야 하는 고전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땅과 집, 일자리가 없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난장이' 가족이 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마지막 식사를 꿋꿋이 하는 장면은 당시 우리사회의 폭력적인 산업화와 개발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철거반이 해머로 벽을 부수고 시멘트 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데도 한쪽 구석에선 난장이 가족이 조용히 밥을 먹는다. 이 장면에서는 해머와 밥상, 즉 개발과 생존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치가 대립되고 오버랩 된다. 해머로 상징되는 개발의 권리는 더없이 강력해보이지만 밥상으로 상징되는 생존의 권리는 한없이 무력해 보인다.

이내 밥상은 뒤엎어지고 난장이는 철거반에게 짓밟혀 가족이 보는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다. 소설 속 이 장면은 당시 우리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슬픈 그림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난쏘공>, 40년간 변함없는 '슬픈' 스테디셀러

40년이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지난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와 지금도 여전히 곳곳에서 벌어지는 야만적인 철거와 개발이 보여주듯이,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개발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1970년대에 멈춰 있다.

우리 사회가 그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서인지 <난쏘공>은 지금도 여전히 많이 사람이 찾는 슬픈 스테디셀러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땅과 집, 일자리가 없는 수많은 난장이들이 공장 굴뚝 꼭대기와 골리앗 망루에 올라가 생존권을 외치며 달을 향해 공을 쏘아올리고 있다.

김용준 후보자가 땅 투기를 한 그곳에서 살던 수많은 난장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난장이의 자식들은 난장이의 운명을 벗어나 거인이 되었을까? 지금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난쏘공>이 보여주는 비정하고 슬픈 세상과는 다른 아름다운 문명사회일까?

용산참사 4주기 참배 행사가 열린 20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희생사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왼쪽)가 남편 묘소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유씨는 이날 두 아이가 이곳에 오기 싫다고 해 참석하지 않았다며 더 안타까워했다.
 용산참사 4주기 참배 행사가 열린 20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희생사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왼쪽)가 남편 묘소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유씨는 이날 두 아이가 이곳에 오기 싫다고 해 참석하지 않았다며 더 안타까워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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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난장이의 자식은 난장이가 되고, 거인의 자식은 거인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희망마저도 점점 사라지는 신분사회, 계급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김용준 후보자가 땅 투기를 한 그곳에서 살다가 밀려난 이름 모를 난장이의 자식들은 또 다시 난장이가 되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난장이 가족을 희생시켜서 얻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자식에게 신분과 계급을 대물림하는 비정한 사회는 이제 끝내야 한다. 또 고위공직자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사회적 수치를 없애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와 위법, 탈법, 탈세 등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나 고위공직자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풍경이라 이제는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하다. 지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는 웬만한 부패는 시시해 보일 정도로 우리의 도덕성이 무감각해지고 퇴화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일상화된 부패의 최면과 마취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깨어나 민감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병든 사회를 다시 살려야 한다. 더 이상 난장이의 자식을 난장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난장이의 자식들을 다시 난장이로 만들어서야...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자식에게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신분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토지가치를 환수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토지가치세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고위공직자 취임 시 실수요 목적을 증명하지 못한 부동산을 백지신탁하고 퇴직 후 부동산의 시세 또는 최초 매입가의 원리금 중 적은 금액을 돌려받도록 하는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는 과거에 이미 입법안까지 만들어졌고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도 이를 보완하여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여야가 받아서 얼마든지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할 수 있다.

사회가 만들어낸 토지가치를 환수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거나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를 도입하면 김용준 후보자처럼 공직자가 쓸데없이 땅투기를 하러 다니는 일은 사라진다. 또 고위 공직을 이용해 얻은 개발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하여 일확천금하는 일도 없어진다. 게다가 고위공직자가 사리사욕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공정하게 국정을 펼칠 수 있다.

앞으로 김용준 후보자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고통 받는 수많은 난장이와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하루 빨리 토지가치세와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난장이 가족이 철거반의 해머 걱정 없이 밥상에 둘러앉아 마음 놓고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고영근 기자는 희년함께(www.landliberty.org)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고,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운영위원입니다.



태그:#김용준, #부동산투기,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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