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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크 없는 벤츠>의 저자 김용원 변호사.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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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1987년은 '두 개의 사건'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이었다. 1987년 새해 벽두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들은 '야만적인 5공 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은 세상에 드러난 지 26년 만에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귀환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다가 국회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사퇴한 김용준 후보자가 대법관 시절 '부산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법전에는 이런 시설을 인정하는 법률이 없다"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전 검사의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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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형제복지원사건은 우연한 기회에 '첩보'를 얻은 한 검사의 집념으로 일구어낸 대형사건이었다. 당시 울산지청 소속 검사로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변호사(현 법무법인 한별 대표·59)는 지난 1993년 펴낸 저서 <브레이크없는 벤츠>에 당시 수사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김 변호사는 1986년 12월 울산에서 알게 된 한 사냥꾼으로부터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산 속에 이상한 작업장이 있다. 인부들이 산을 깎는 작업을 하는데 경비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킨다. 경비원들이 인부들을 개 패듯이 패는 것을 몇번 보았다. 커다란 개 여러 마리가 인부들을 지킨다."(13쪽)

'대한민국에는 그런 작업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 변호사는 바로 그 작업장(울주)으로 달려가 현장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관들을 시켜 망원렌즈로 인부들이 작업하는 장면, 몽둥이를 든 경비원들의 모습, 쇠창살이 쳐진 인부들의 숙소 등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곳이 부랑인 3000여 명을 수용한 부산형제복지원의 원장(박인근)이 벌이고 있는 작업장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확인들을 통해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원장이 수용중인 부랑인들을 끌고와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형제복지원 원장을 조사하자 그가 "엄청난 거물"임이 드러났다.

"그는 1981년 4월 국민포장을, 1985년 5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통 상임위원에도 임명되어 있을 정도로 중앙정부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형제복지원 등의 운영자금 명목으로 1985년 18억 원 가량을, 그리고 1986년에는 21억 원 남짓 되는 돈을 국가 및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았다."(15쪽)

김 변호사는 부산형제복지원을 직접 찾아갔다. 복지원은 "교도소를 뺨치는 어머어마한 철문과 성곽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아는 법전에는 이런 시설을 인정하는 법률이 없다"고 기록했다.

경찰이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받다가 자기압박에 의해 충격사했다"고 발표한 다음날인 1987년 1월 16일, 김 변호사는 울주작업장과 부산형제복지원을 덮쳤다. 김 변호사가 압수수색을 위해 덮친 부산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 아니고 완벽한 감금시설"이었다. 원장실의 대형금고에서는 20억 원이 넘는 각종 예금증서뿐만 아니라 달러화와 엔화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복지원 핵심간부와 경비원, 수용자 등 100여 명을 조사한 끝에 "복지원 수용자들은 대부분 멀쩡한 사람들인데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감금되어 있으면서 노임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의 신체적 자유란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장기간 감금당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린다면 그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감방 아닌 감방에 감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18쪽)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
ⓒ 문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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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원은 하나의 왕국... 인민재판에서 공개적으로 구타 당해"

검찰수사를 통해 "작업에 동원된 수용자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구타해서 죽여버린" 사건과 박인근 원장이 "국고보조금 중 주식비, 부식비, 피복비 등을 마구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복지원이 설립된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복지원에서 사망한 수용자수는 513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확인된 부산형제복지원의 실체는 놀라웠다.

"형제복지원은 군대식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고, 원장은 왕이었다. 수용자들은 군번 비슷한 수용번호를 부여받아 내무반 생활을 하였으며 소속 소대장과 중대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했다. 수용자들은 주로 시래기국이나 해장국을 먹으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각자 봉제공장, 목공소, 철공소 등의 작업장에 배치되어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19쪽)

"도망치려 했거나 명령에 반항한 수용자들에게는 엄청난 형벌이 가해졌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이른바 인민재판에서 공개적으로 구타를 당한 뒤, 아오지탄광이라 불리는 7소대 또는 13소대에 배치되어 혹독한 시련을 받아야 했고, 독방에 감금되어 하루종일 꿇어앉아 있다가 잠도 꿇어앉아서 자야 하기도 했다."(20쪽)

"수용자들은 툭하면 얻어맞아 죽어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사들은 얻어맞아 죽은 수용자들이 자연사했다고 진단서를 끊어주었다. 그들의 시체는 의과대학에 실습으로 팔려갔다고들 했다."(20쪽)

반면 박인근 원장은 2년간의 국고보조금 39억 원 가운데 11억여 원을 횡령했고, 3000여 명의 수용자들을 봉제공장과 목공소, 철공소 등에 무보수로 투입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의 고혈을 빨아 고급 아파트, 골프 회원권, 콘도미니엄 등을 소유하고 단자회사 등에 수십억 원의 예금을 가진 재벌 아닌 재벌"이 되었다.  

박 원장이 '어느 정도'의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도 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1987년 5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이 소년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왔다. 부산시장이 "복지원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하자, 전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전 대통령이 박 원장을 이렇게 치하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981년 4월 10일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이 늘어나고 있다는 바, 실태파악을 하여 관계부처 협조하에 일절 단속 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주기 바랍니다"라는 지휘서신을 내렸다. 이후 부산형제복지원과 같은 부랑인 보호시설이 급증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해 인권침해도 크게 늘었다. 김 변호사가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박 원장의 개인비리'로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이 처절한 인간유린은 원장이 개인적으로 저지를 비리가 아니었다.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대통령의 정부 아래서만 저질러질 수 있는 비리였다. 복지원의 참상은 사회복지정책을 내실있게 추진할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복지선진국인 양 행세하려고 한 전시행정이 빚어낸 것이었다."(30쪽)

 김용원 전 검사는 "대법원이 엉터리 전제 아래서 원장의 행위를 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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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15년 구형했지만 '10년→4년→3년→2년 6월'

김 변호사는 원래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그에게 요구했다. 박인근 원장의 횡령액수도 11억여 원에서 6억여 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대검으로부터 "횡령액수를 7억 원 이하로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원장이 10억 원 이상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무기징역을 구형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1987년 6월, 김 변호사는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여 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여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박 원장의 형량은 점점 낮아졌다.

"원장은 1987년 11월 12일 1차 항소심에서 벌금형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더니 1988년 7월 7일의 2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1989년 3월 15일의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한 사건이 일곱 번의 재판을 거치는 사이 원장에 대한 형량은 당초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35쪽)

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사법부의 정의는 이렇게 허약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지난 1988년 11월 8일 특수감금죄에 무죄를 확정해버렸다. 당시 재판장이 김용준 대법관이다. 김용준 대법관은 부산형제복지원이 부랑인들을 울주작업장에 수용한 것과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중 출입문을 잠근 것 등이 '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울주작업장이 부랑인 선도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형제복지원의 적법한 복지시설의 일부라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피해자들을 울주사업장에 수용한 조치는 법령에 근거한 정당한 직무수행행위라 할 것이고, 피고인들이 이들을 야간에 울주작업장의 숙박시설인 기숙사에 취침토록 조치한 후 취침 중 그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출입문을 시정조치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상의 감금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판결문 중)

"부랑인들을 야간에 철장시설이 되어 있는 숙소에 가두어 취침하도록 하고 취침시간인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출입문을 밖에서 시정한 행위는 그것이 비록 수용자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한 조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용행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특수감금죄'를 인정한 원심의 판결조차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김용준 대법관은 울주작업장이 부산시의 승인과 지원 아래 추진됐고, 국고와 지방비 예산까지 책정되었다는 점을 들어 "적법한 수용시설의 일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피고인들이 수용중인 피해자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취침시간 중 위와 같은 방법으로 조처한 것은 그 행위에 이른 과정과 목적, 수단 및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는 행위라고 못볼 바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구금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는 행위"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엉터리 전제 아래 원장의 감금행위를 적법하다고 판단"

김용준 대법관은 유신정권 시절인 지난 1975년 12월 15일에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에 무죄를 확정했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가리킨다. 김 변호사는 이 훈령을 "걸인과 껌팔이 등 부랑인은 연고자가 나타날 때까지 복지원 같은 시설에 무기한 감금해둔다는 것"이라고 요약하면서 "부랑인이 아닌데도 부랑인 취급을 당해 감금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준 대법관은 인권침해가 충분한 훈령을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김 변호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대법원은 원장이 오로지 순수부랑인들만 데려다 내무부훈령이 정한 넉넉한 대우를 다 해주었다는 엉터리 전제 아래서 원장의 행위를 내무부훈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법관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수없이 잡아가두더라도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35쪽)

한편 김용원 변호사는 지난 1983년부터 1992년부터 서울·울산·부산·수원지검 등에서 수사검사로 활동했다. 부산형제복지원 비리사건, 부산지하철본부 비리사건, 울산공단 공해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 검사'로 불렸다.

8년 6개월의 검사생활을 마친 직후 펴낸 <브레이크 없는 벤츠>(1993년)는 20만 부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지난 2011년 3월에는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를 출간했다. 특히 그는 현행 명예훼손죄, 모욕죄, 허위사실 유포죄, 후보자 비방죄 등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제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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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대곡초교-강진중-조선대부속고-고려대 국문과 졸업.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 기자. 2001년 12월 <오마이뉴스> 입사. 한국인터넷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 수상. 저서 : <한국의 보수와 대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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