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둘째 날은 일찍 깬다. 호텔 레스토랑의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테라스 앞에는 마당과 해변이 펼쳐지고, 마당에는 새총으로 까마귀를 쫓는 아저씨가 보인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한국에도 저런 게 있었다고 이야기해준다.

우리의 가이드 역할을 하기로 한 다미카씨가 시간 맞춰서 도착한다. 우리에게 지도로 기후변화 피해지역 방문을 할 여정을 보여준다. 전 날 탔던 이차선 도로를 타고 해안을 따라서 간다. 가는 길에 곳곳에 멈춰서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지어진 방파제를 구경시켜준다. 도시의 건물과 도로가 갑자기 끊기고 바위를 쌓아놓은 방파제로 이어진다. 마치 도시가 바다로 곧 떨어져 내릴 것 같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따라서 머리땋고 흰 교복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한 줄로 지나가고, 기차가 힘겹게 철로를 따라간다.

해변 도로에 걸어가는 초등학생들. 배경에는 국회의사당과 오토릭샤가 보인다.
▲ 콜롬보의 교복입은 초등학생들 해변 도로에 걸어가는 초등학생들. 배경에는 국회의사당과 오토릭샤가 보인다.
ⓒ 윤소현

관련사진보기


기차와 아이들, 그리고 바다가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가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르른다. 기찻길이 마을을 반으로 가로지르고 마을의 귀퉁이에는 수호신 같은 동상이 있다. 지나온 모든 마을에 한 개씩  있었다. 유리상자 안에 성인, 성녀나 동물의 모습을 한 동상이 있고 앞에는 향불이 피워져 있다.
마을에는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있다. 집들은 기찻길을 뒤로 하고 바닷가를 마주본다. 집 몇 채를 지나가자 거친 모래의 백사장이 펼쳐지고 바다와 백사장이 만나는 곳에는 작은 방파제가 여러 개 있다.  다미카씨는 바다를 마주보며 집 마당에 앉아있는 마을 아저씨들을 접근해서 인사한다. 우리가 하는 일을 소개하고 서로 인사한다.

기찻길과 바닷가 사이에 집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수호신이 있다.
▲ 해변 마을 입구 기찻길과 바닷가 사이에 집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수호신이 있다.
ⓒ 윤소현

관련사진보기


그곳은 어촌이다. 해변에는 카누 모양의 작은 배가 엎어져 있고 오래 방치된 것처럼 그 위로 먼지와 모래와 해초가 쌓여있다. 그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로 나가야 하는데, 기상 상황의 변화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어한기가 길어져서 당분간 어업을 못한다고 한다. 대신 아저씨들은, 마치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주민회관 앞 마루에서 화투를 치듯 해변에 모여 생선과 코코넛주를 먹고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페인트통 같은 흰 양동이에 이물질이 둥둥 떠있는 코코넛주를 누런 컵에 채워서 건넨다.

다미카씨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서 많지 않아도 나눌 줄 안다며, 우리에게 받으라고 권유한다. 나는 미성년자라서 마시지 못한다고 하고, 아빠는 하는 수 없이 쭉 들이킨다. 비린내와 신내가 가득하다.

환영식을 치루면서 코코넛주와 생코코넛을 대접받았다. 사진 아래쪽 양동이는 문제의 코코넛주.
▲ 우리를 대접하는 마을주민들 환영식을 치루면서 코코넛주와 생코코넛을 대접받았다. 사진 아래쪽 양동이는 문제의 코코넛주.
ⓒ 윤소현

관련사진보기


코코넛도 먹어봐야 한다면서 마을 청년은 야자수를 탄다. 꼭대기에서 코코넛 몇 개를 잘라서 바닥으로 던진다. 밑으로 다시 내려와서 능숙하게 칼로 야자수의 꼭지를 잘라서 우리에게 준다. 구멍에 입을 대고 마시면 된다고 시범을 보인다. 익숙치 않은 맛이라 힘겹게 마시는데 , 옆에서 다미카씨는 코코넛의 효능을 열거한다. 내려놓으려는 참에 코코넛은 속살까지 먹어야 된단다. 청년이 다시 코코넛을 집어서 깨더니 껍질 안쪽의 과육을 잘라내서 준다.

나름의 마을 환영식이 끝난 후에 질문을 시작한다. 모여있는 아저씨들에게 환경 변화에 대해서 물어보니,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아저씨들은 영어를 모르고, 우리는 신할라어를 몰라서 다미카씨가 통역한다.

"원래 해안선이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저 뒤쪽, 그러니까 한 15미터 뒤쪽에 있었대요."

마을 주민들이 쓰러진 집 몇 채를 가리킨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폐가들이 많고 벽의 일부만 앙상하게 남은 집도 있다. 높아지는 파도와 점점 들어오는 해안선이 집을 휩쓸어 갔다고 한다.
불규칙해진 파도 때문에 어업도 할 수 없고, 해안선이 점점 안으로 들어와 집에 물이 찬다고 한다. 원인이 무엇일 것 같냐고 물어보니 2004년에 일어난 쓰나미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열의 불균형과 모래 굴착으로 인한 침식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과학적인 정답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삶 앞에서는 의미없고 무색해진 정답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부의 그 어떤 노력도 그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집을 다시 짓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삶의 터전인 바다를 떠날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바닷물이 집에 들어오는데도 별 수 없다. 해안선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두르는 벽을 정부에서 추진했지만, 어업에 지장이 있어서 무산됐다고 한다.

심해지는 폭풍해일과 연안침식 때문에 마을의 일부가 씻겨나간 모습이다. 아침마다 바닥에 물이 새는 집에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다.
▲ 황폐화된 해안 마을 심해지는 폭풍해일과 연안침식 때문에 마을의 일부가 씻겨나간 모습이다. 아침마다 바닥에 물이 새는 집에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다.
ⓒ 윤소현

관련사진보기


"그게 왜 지장이 있는 건지 물어봐주세요." 바로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다미카씨에게 부탁한다.
다미카씨는 아저씨들과 한참 신할라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요 그게, 어선들이 전통식이라서 모래사장에서 한참 끌어야지 바다에 뜬대요. 그래서 모래사장과 바다가 이어지지 않으면 작은 어선들이 안 뜬다구요. 이렇게 대대로 해온거라네요."

"그러면...물고기 잡으러 나가기 힘들어지고 나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물어봐주세요."
"돈벌이가 안 돼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힘들어졌대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래서 저쪽에서 코코넛주 만드는 작은 공장도 세웠대요, 어한기에 만들어서 팔게."

"그럼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는 건가요?"
"그건 절대 아니래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는 보내겠대요. 그런데 이 분은 이미 대출도 받았다네요. 학비 때문에."

이야기를 하다가 마을 아저씨들이 보여줄 게 있다면서, 어느 집 뒷마당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마당에는 거북이가 헤엄치는 큼직한 수조가 몇 개 있고 거북이에 대해 쓰여있는 영어 판넬이 몇 개 있다. 아저씨들은 그곳에 모여서 거북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생선을 정성들여 칼질하고, 바닥에 누워있는 큰 거북이에게 한 조각씩 준다.

처음에는 거북이 양식업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어물에 걸려서 다치는 거북이들을 치료하는 시설이란다. 일 년에 몇 천 마리의 거북이를 살린단다. 러시아에 있는 자선가로부터 후원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곳이다. 후원자의 이름이 써있는 포스터가 걸려있다. Russia라는 영어 철자도 틀려서 "Rusia"라고 써져있다.

다친 거북이를 치료하는 일이라도, 일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시설에 대해서 몇 가지 묻고, 사진도 찍는다.

옆의 탱크 한 개 당 거북이 한 마리씩이 있었다. 거북이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생선 조각을 자르고 있었다.
▲ 거북이 치료 시설에서 거북이 먹이를 준비하는 아저씨 옆의 탱크 한 개 당 거북이 한 마리씩이 있었다. 거북이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생선 조각을 자르고 있었다.
ⓒ 윤소현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를 마치고 차에 탄다. 가는 길에 다미카씨가 어디선가 차를 멈춰서, 길 옆에 있는 상인에게 열대 과일 한 봉지를 사서 뒷좌석에 앉은 우리에게 건넨다. 리치를 까다가 자세히 보니 작은 개미들이 껍질에 붙어있다. 하나하나 떼어내면서 곤란해하고 있는데 다미카씨는 계속 이야기한다.

"스리랑카는 자원이 풍부합니다. 이런 과일이 일 년 내내 나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시 보니 과일 상인은 길 옆에 정말 많다. 리치와 파인애플, 그리고 코코넛 같은 과일들을 수레에 주렁주렁 매달아서 팔고 있다. 해변 마을에서 우리에게 직접 따서 대접한 과일과 다르지 않다.

점심에는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 온통 바캉스를 즐기러 온 유럽인들이다. 뷔페에 길가에서 파는 그런 리치나 코코넛은 없다. 식사하는 곳 앞에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뒤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 앞에 역시 방파제가 있다.

그곳은 분명히 풍요의 땅이다. 나무만 탈 줄 안다면 코코넛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나고 땅에서는 쌀이 나고 시야 끝까지 녹차밭인 곳도 있다. 동네 마트에만 가도 녹차, 홍차는 전부 스리랑카 산일 정도로. 또 땅에서는 루비와 같은 보석들도 나고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 덕분에 뭐든 잘 자란다. 어쩌면 그들이 지하자원도 없는 한국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역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 발전할 기회도 주어지기 전에 환경이 파괴되어 생계 유지의 위기에 처한 어부들이 있음을 직접 본 것이다.

거북이는 사람 손에 죽어가고, 사람 손에 다시 살았다. 자연 역시 사람 손에 죽어가고, 사람도 자연 손에 죽어갔다. 이 문제들이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여름에 기후변화, 환경과 그 영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서 취약지역인 스리랑카, 몰디브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공무원과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겪은 일들을 담을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본 현상들을 통해, 환경문제에 봉착한 개발도상국들이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태그:#스리랑카, #기후변화, #환경, #여행, #어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