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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갈 페이스 호텔. 사진은 아침에 찍은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갈 페이스 호텔. 사진은 아침에 찍은 것이다.
ⓒ 윤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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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내리자 습한 바람이 불어닥친다. 이미 해는 지고 하늘은 어둡다. 아버지와 입국장에 나오기로 했던 현지 공무원을 찾았다. 한국에도, 미국에도 있는 호텔 이름이 써져있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호텔 직원들이 공항 입구에 일렬로 서 있다. 한참 지나오자 끝에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을 찾는다. 제법 체격이 큰 중년의 아저씨, 다미카씨다.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면서 주차장으로 나간다. 그는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운전석이 오른쪽인 소형 일제차들이 즐비하다. 기사까지 대령한 렌터카를 타면서 이야기한다.

"스리랑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차에 타서 출발하자마자 그는 우리에게 "스리랑카는 가난한 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부자"란다. 스리랑카인들는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을 부러워한단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를 위태롭게 질주하면서 스리랑카에는 한국과 같은 고속도로가 없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곧 완공되는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서 만들어져서 우리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만큼 나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그는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온갖 과일과 채소가 나고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나라 중앙에는 산과 고지대가 있어서 선선하다"며 "해안 쪽은 따뜻해서 다양한 기후가 공존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두워서 밖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도로 옆에 있는 낮은 건물과 광고판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동통신사 광고가 10미터마다 하나씩 있다는 것. 스마트폰과 휴대전화의 발달로 오히려 지상 통신선이 덜 갖춰진 개발도상국에 인터넷과 전화 보급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 역시 저렴한 요금과 '잘 터지는' 3G로 소비자를 사로잡으려는 광고판들이 곳곳에 있다. 스리랑카에 지냈던 사흘동안 다른 그 어떤 광고보다도 이동통신사 광고를 많이 본 듯했을 정도다.

1시간 정도를 가니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에 접어든다. 구부러지는 시내 길가에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들과 자정이 넘도록 영업하는 삼륜 오토릭샤들이 있다. 얼마 가지 않아서 호텔에 도착한다. 우리가 묵었던 갈 페이스 호텔는 아시아에 있는 가장 오래된 호텔로, 1864년에 영국인 사업가들이 지은 곳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매우 유명한 호텔이고, 유리 가가린·J.D.록펠러·닉슨 전 대통령과 덴마크·영국과 일본의 왕가 등 많은 사람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간 곳이다. 아름다운 내부와 전경으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0곳'에 선정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인도양의 비린내와 식민지 시대의 향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갈 페이스 호텔에는 100여 년 전 사용하던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갈 페이스 호텔에는 100여 년 전 사용하던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 윤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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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호텔 방에 바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호텔 직원들과 우리를 안내하던 공무원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호텔 바로 뒷편에 있는 바닷가로 안내한다. 바닷바람에 야자수가 흔들거려서 천둥 소리가 나고 하늘이 깜깜해서 바닷물은 현기증 날 정도로 어둡다. 파도를 격하게 뱉어내는 바다를 어지러워서 더이상 볼 수 없다. 바다구경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인데도 몇 초 못 있다가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나선형 계단과 수동식 엘리베이터와 내 키의 세 배가 되는 유리 문이 있다. 길쭉한 나무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바다와 야자수가 보이고  마치 어린 시절 읽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나 <비밀의 화원>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다. 아름다운 남쪽 나라에서 대영 제국의 임무를 완수하는 고위 관료의 딸이 된 상상을 한다. 그러나 나는 메리의 투정을 매일같이 받아주다가 콜레라 걸려서 죽은 인도 하인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 강자인 영국인의 입장에서 과거를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아이러니함을 곧 깨닫고 반성했다. 드라마나 영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굶주리고 병든 농민보다는 귀족과 공주와 여장군과 먼저 공감을 하는 나의 모습도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의 강자와 공감을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리랑카도 '역사 속의 강자'에게 상처를 받은 땅이었을 것이다. 그런만큼 나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4일동안 할 수 없었을 일이다. 놀랐던 것은 몇 백 년에 걸쳐 포르투갈·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은 곳이지만, 너무나 담담하고 당연하게 이런 사실들을 말했다.

최근까지 내전에 시달린 나라였고,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나라였으며 이제는 (우리의 일차적인 방문 목적이었던) 여러 가지 환경 문제에 봉착한 곳이다. 제국주의의 아픔과 20세기의 혼란에 이어서 오늘날 겪는 환경 문제들을 그 누구보다 체감했고 체감하고 있을 나라인데, 만난 인간 한 명 한 명마다 이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고 동시에 그 상황 속에서 나아가는 각자의 방식이 있었다. 그들의 자부심과 행복은 남부럽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여름에 기후변화, 환경과 그 영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서 취약지역인 스리랑카, 몰디브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공무원과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겪은 일들을 담을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본 현상들을 통해, 환경문제에 봉착한 개발도상국들이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태그:#스리랑카, #콜롬보, #여행,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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