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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막말 달인'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집권당 원내대표쯤 되면 적어도 '고상한 척'은 하지만 그는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다. '비리 백화점'으로 불리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구하기 위한 모습에서도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2일 "공직 후보자를 마치 무슨 범죄 피의자처럼까지 다루는 것 아니냐"며 "너무 심하게 다루다 보니 인격살인이 예사로 벌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슨 도살장 비슷한 인상을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야당 의원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21일에도 "인사청문회를 사법부나 정부의 발목잡기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며 "인사청문회를 '루머폭탄작전'으로 악용하면 이제는 실패할 것"이라고 야당을 경고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이동흡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루머폭탄'이 아니라 사실로 밝혀졌다. 심지어 보수언론 조차 '의문'을 표시할 정도다.

이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 목표는 무조건 낙마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이제 야당 역할은 국회 발목잡기가 아니다. 국회 발목잡기는 구태정치"라며 '비리백화점' 이동흡 후보자를 감쌌다. 인사청문회 목표는 무조건 낙마시키는 것 아니라고 했는데 새누리당이 한나라당 시절인 지난 2006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를 끝내 낙마시킨 것을 잊었는가?

지난 2006년 8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전효숙(당시 55·사법시험 17회) 헌법재판관을 내정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가 노 대통령과 같은 사시 17회 출신이고, 2004년 신행정수도 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에서 9명의 재판관 중 유일하게 합헌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코드인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가 '코드인사'라는 이유로 전 후보자를 낙마시키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조선일보>마저 전 후보자에 대한 우호적이 사설까지 실었기 때문이다.

"신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서울고법 전효숙 부장판사는 이념적으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법정에서 당사자들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과 신망을 갖춘 판사라는 평가를 받는 점도 마음 든든하다"02003.08. 21 '여성헌법재판관 등장을 환영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군이 있었다. 9월 6일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헌법 제111조 제4항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재판관직 사임으로 민간인이 된 전효숙 전 재판관의 헌법재판소장 임명 절차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몰랐는지, 그냥 가볍게 넘어가려고 했는지 몰라도, 조 의원이 질의하기까지는 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뒤늦게 이를 문제 삼았다. 2006년 9월 8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 발언 모음이다.

헌법재판소장은 첫째도 둘째도 정치적 중립 지켜야 한다. 헌재의 독립성 지키려는 확신 가져야 하는데 이틀간의 청문회에서 그런 모습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 오전 청문회 통해 마지막 심판 날 것으로 보지만, 국민적 심판은 이미 끝났다 - 김형오 원내대표

전효숙 후보자는 헌법재판소장으로서 부적격하다. 그동안의 판결 성향 보면 법 가치보다는 노 대통령 복심판결이 많아 중립성 지킬 수 없다.청와대 수석 말 한마디에 헌법재판관 권한을 헌신짝처럼 버린 사람이 어떻게 중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본인이 양심 있다면 자진 사퇴할 것이다. - 전재희 정책위의장

그리고 한나라당 청문회를 보이콧하고, 참여하기를 반복하면서 딴죽걸기에 나섰다. 이는 11월까지 이어진다. 헌재소장 공백이 약 석 달 가량 이어진 것이다. 한나라당은 급기야 당신 열린우리당은 표결로 강행 처리를 하려고 하자 본회의장을 점거까지 한다.

지난 2006년 11울 16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오는 30일 이후로 미루는 데 합의함에 따라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플래카드를 떼어내며 농성을 풀고 있다
 지난 2006년 11울 16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오는 30일 이후로 미루는 데 합의함에 따라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플래카드를 떼어내며 농성을 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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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은 2006년 11월 14일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뒤 '헌법파괴 전효숙 헌재소장 원천무효'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14일에 이어 다음 날인 15일에는 80여명이 의장석을 둘러싼 채 점거농성을 하고 보좌관과 당직자 100여명은 본회의장 을 밖에서 봉쇄까지 한다. 김형오 당시 원내대표는 물리적 충돌에 대비, 보좌관들과 당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며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은 밤을 새워 눈이 충혈되었다. 오늘 밤도 아마 새울 것이고 내일, 내일 모레도 밤 새우는데 여러분이 함께 하리라 생각한다. 10년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집권하려는데 용기없는 정파는 집권 못한다. 이런 부당한 헌법파괴를 막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사그라진다. 여러분과 국회의원은 운명 공동체다." - 2006.11.18 <오마이뉴스> '전효숙 저지 농성' 승자와 패자는 누구?

한나라당 점거 농성은 44시간 동안 이어진다.<오마이뉴스> 같은 기사는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김형오 원내대표는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들이 똘똘 뭉쳐 밤을 새며 지켜낸 건 한나라당의 미래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치하했다고 전하고 있다.

결국 11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임명철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헌재 출범 이래 첫 여성이자 최연소 소장을 꿈꿨던 전 후보자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낙마시킨 것이다. 그럼 전효숙 후보자에게 결정적 흠결이 있었을까? 조순형 의원 지적처럼 임명절차 문제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동흡 후보자가 '비리 백화점'이지만, 전 후보자의 개인 비리 의혹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전효숙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6월 민주통합당 몫으로 추천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사상검증'해 낙마시켰다. 지난 2011년 6월 28일 청문회 때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조 후보자가 "정부 발표를 신뢰하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헌재재판관을 '사상검증'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유일한 흠결이었던 '위장전입'을 끝까지지 물고 늘어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2월 9일 무려 여덟 달 가까이를 끌다가 전체 투표 의원 252명 중 찬성 115명, 반대 129명, 기권 8명으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여덟 달을 질질 끈 결과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조 후보자의 전임인 조대현 헌법재판관의 지난 2011년 7월 8일 퇴임 이후 217일 이상을 헌법재판관 공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직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해 낙마시켰다. 그런데 이동흡 후보자 같은 이를 감싸고 있다. 감싸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태그:#새누리당, #이동흡, #이한구, #전효숙, #조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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