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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5에 맞서 지난 9월 말 국내 출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들.
 애플 아이폰5에 맞서 지난 9월 말 국내 출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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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옵쇼~ 호갱님."

인터넷에서는 값싸게 살 수 있는 상품을 제값에 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호갱'이란 '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로,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딱 좋은 손님을 말한다. 특히 발품 팔기에 따라 보조금 규모가 천차만별인 휴대폰 유통시장에서 이런 '호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엄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 초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했다.

"전화기가 오래돼서 잘 안 들리고 막 끊기잖아. 짜증 나서 '바꿔야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게 있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네, 네' 몇 번 했더니, 글쎄, 하루 만에 왔지 뭐냐? 요금은 4~5만 원 정도 내면 된대."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엄마는 해맑게 웃었다. 엄마의 새 휴대폰은 할부원금 83만 원에 할부이자까지 포함하면 단말기값만 90만 원에 육박했다. 출고가 89만9천 원인 제품을 '제값' 주고 산 셈이다. 얼마나 좋은 폰을 샀느냐고? 통신사 텔레마케터와 통화한 뒤 하루 만에 도착한 엄마의 휴대폰은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LG 프라다폰이었다. 이미 '버스폰'으로 전락한 지 오래된 제품이지만 배송상자 속엔 그 흔한 사은품 하나 없었다고 한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호갱계의 호랑이', 왕중왕이었다. 언니가 말했다.

"친구한테 엄마 프라다폰 샀다고 말했더니 TV도 왔느냐고 묻더라? 요즘 홈쇼핑에서 프라다폰 사면 42인치 TV 준대!"

지난해 11월 한 별정통신업체는 TV홈쇼핑을 통해 프라다폰을 개통하면 42인치 TV를 사은품으로 주는 판촉 행사를 벌였다. 언니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한텐 말하지 마. 홈쇼핑도 못 보게 해."

크리스마스 할인, 연말 할인, 새해 할인... 일찍 사면 손해?

엄마에게 스마트폰이 생기고 한 달 뒤, 나도 새 휴대폰을 장만했다. 인기가수 보아가 광고하는 베가 R3로, 출시된 지 석 달밖에 안 된 '최신폰'이지만 기기 값은 단돈 10만 원도 안됐다. 휴대폰을 고치는 것보다 사는 게 싼 가격이었다.

나름 발품을 팔았다. 지난 12월 말 서울 동작구 흑석동 주변 대리점 시세는 갤럭시S3, 아이폰5는 할부원금 기준 약 60만 원, 베가 R3는 약 50만 원선이었다. '62요금제'에 부가세, 가입비, 유심비, 부가서비스를 합하면 한 달 통신비가 10만 원에 육박했다. 대리점 직원은 말했다.

"크리스마스 할인가라 언제 오를지 몰라요."

온라인은 가격은 훨씬 쌌다. 값싼 휴대폰이 올라온다고 소문난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 사이트에서 당시 갤럭시S3의 할부원금은 35만 원, 베가 R3는 25만 원, LG 옵티머스 뷰2는 28만 원으로 오프라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기다릴수록 가격은 더 떨어졌다. 12월 31일, 2012년 마지막 세일이었다. 기기 값은 더 내려갔다. 베가 R3는 16만 원, LG 뷰2는 22만 원, 갤럭시S3가 30만 원이 안 됐다. 1월 1일, '연말 마지막 세일!'이라던 홍보 문구는 '새해 첫 세일!'로 바뀌어 있었다. 새해이니만큼 할인율은 전날 대비 30% 이상이었다.

1월 2일, 난 출고가 99만9900원짜리 베가 R3를 9만 5천 원(할부원금)에 샀다. 불과 한 달 전 엄마는 '구형' 3G폰을 거의 90만 원에 샀는데 나는 '최신' LTE폰을 1/10 가격에 산 것이다. 더군다나 엄마가 산 폰은 말이 '구형'이지 LGU+에서는 이미 단종되었고 SKT와 KT에서도 사실상 단종 수순을 밟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과연 엄마만 '호갱님'이고 나는 현명한 소비자였을까?

지금처럼 왜곡된 휴대폰 유통 구조에선 크든 작든 모든 고객들이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내가 신청서를 접수한 뒤 베가 R3 값은 4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90만 원짜리 '단종폰', 10만 원짜리 '최신폰'... 왜?

지난해 9월 '17만 원 갤럭시S3' 논란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업체의 갤럭시S3 요금제별 할인내역 설명. 할부원금이 17만 원이지만 이를 2년동안 유지할 경우 이동통신사 요금 할인이 붙어 실제 부담금은 오히려 기본 요금보다 더 낮다.
 지난해 9월 '17만 원 갤럭시S3' 논란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업체의 갤럭시S3 요금제별 할인내역 설명. 할부원금이 17만 원이지만 이를 2년동안 유지할 경우 이동통신사 요금 할인이 붙어 실제 부담금은 오히려 기본 요금보다 더 낮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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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LTE 스마트폰을 둘러싼 이통사 보조금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른바 '17만 원 갤럭시S3'까지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통3사는 지난달 말 과징금에 영업 정지 처분까지 받았지만 보조금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통신업계에선 지난 7일부터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막고 적정수준의 보조금을 유지하겠다"며 온라인 휴대폰 불법 판매 신고 제도인 '폰파라치 제도'까지 시행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14일 인터넷에는 할부원금 19만 원짜리 아이폰5가 등장했다. 그나마 국내 제품에 비해 가격 방어력이 강했던 애플 아이폰마저 국내 출시 한 달 만에 60만 원 넘게 떨어진 것이다.

이날은 LGU+ 영업 정지 처분이 시행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보조금을 앞세운 단말기값 거품과 사후약방문식 보조금 규제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휴대폰 단말기 대금의 과도한 불평등 문제는 보조금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적정한' 단말기 보조금 액수는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 반문했다.

이주홍 국장은 오히려 "(현 휴대폰 유통 구조에서) 보조금은 소비자가 누려야 할 혜택"이라며 "다만 정보 격차에 따라 보조금 양극화가 나타나고 노인이나 다문화 집단처럼 정보취약계층에 피해가 몰려 있는 만큼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모든 기기의 보조금 지원 정보를 소비자에게 고지하고 이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말기 대금보다 전체 통신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웅래 의원실 서정민 보좌관은 "근본적인 문제는 통신3사 중심의 유통구조와 제조사-통신사 간 유착관계"라 지적했다. 서 보좌관은 "제조사는 통신사와 협의하고, 보조금 수준까지 고려해 휴대폰 출고가를 정한다"며 "휴대폰 가격표시제나 블랙리스트제도가 실패한 이유도 이 구조에 있다"고 진단했다. 현 구조에서도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제조사가 굳이 유통사에 밉보여가며 유통망을 확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 보좌관은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에 보조금을 많이 받은 사람도 통신비 부담이 줄지 않는다"며 "현 상황에선 통신비 인하로 서민들의 가계 부담부터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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