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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대선 결과는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멘붕(멘탈붕괴)'를 호소하는 목소리 또한 여전하다. 박근혜 시대 5년, 이 사회에서 진보를 고민하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오마이뉴스>는 정치, 사회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을 수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말]
대선 이후 '멘붕(멘탈붕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주로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단지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주를 이룬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큰 활약이 기대되었던 진보정당은 소위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런 저런 추상적 가능성만으로는 허탈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도무지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다.

기자는 진보진영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를 만나 '박근혜 시대' 진보의 성찰과 과제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그 첫 순서로 진보정의당 정책위원회 노항래 부의장을 지난 10일 참여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노항래 부의장은 스스로를 "뼈속까지 친노"라고 규정하는 국민참여당 계열 인사다. 2002년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노동계 인사로는 드물게 공개적으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징계위에 회부되기도 했다. 결국 징계는 부결됐지만, 이 일을 계기로 스스로 민주노총을 떠났다. 이후 그는 국민참여당 정책위의장과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 겸 부설연구소 원장을 거쳐 진보정의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정책통이 됐다. 통합진보당 시절에는 비례후보 경선에 나서 8번을 배정 받았지만,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민주노총 출신 후보에게 양보하고 10번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후 이 문제는 통합진보당 내에서 부정선거 논란의 한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진보인사 사이에서는 정파에 상관없이 '합리적 중도파'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치열했던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양 진영 모두의 혁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진보정의당 정책위의장직을 정진후 의원에게 넘겨주고 부의장으로 옮기면서 상근직을 내놨다. 지금은 국민참여당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참여네트워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분당은 잘못된 일", "종북주의를 거론하는 사람은 진보가 아니다", "노동중심성 회복은 철지난 주장"이라고 강조하면서 논쟁적인 내용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른 진보세력은 물론 그가 몸담고 있는 진보정의당 내에서도 격렬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논쟁적 주장을 쏟아내는 이유에 대해 노항래 부의장은 "지금은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말로 답했다.

다음은 노항래 부의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진보정의당, 지난 대선후보 등록 안 한 건 잘한 일"

구 국민참여당계 인사들의 모임인 참여네트워크 사무실 앞에 선 노항래 진보정의당 부의장
 구 국민참여당계 인사들의 모임인 참여네트워크 사무실 앞에 선 노항래 진보정의당 부의장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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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당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부의장으로 물러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통합진보당에서 분당된 이후 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출마여부와 관련해 다른 분들과 입장이 달랐던 것이 계기였다. (통합진보당) 분당에 대한 책임 49%가 탈당파에게 있다고 보는데, 책임이 있는 분들이 대선후보를 내는 것은 성찰 부족이라고 봤다. 또한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이 정권교체인데, 후보출마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 결국 진보정의당은 출마를 포기하지 않았나?
"사실 지도부 회의에서 불출마를 주장했지만, 다수가 출마하자고 주장해 출마 방침이 정해졌었다. 심상정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난 반대했지만 당의 방침을 존중했다. 그래서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예비후보는 그렇다 해도 실제 등록할 때는 결사반대했다. 심 의원이 본선후보로 등록할 경우 탈당하겠다고 생각했다.

11월 25일 등록 직전 전국위원회에서는 등록하겠다고 결정이 났다. 사직하겠다고 밝혔고 짐도 쌌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안철수 후보가 사퇴해 바로 비상회의를 가졌고 회의 결과를 심 후보가 받아들여 등록하지 않았다. 정권교체 운동본부에서 정책본부장으로 12월 19일까지 같이 했다.

그때 등록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희 후보와 같이 출마했다면 조중동, 종편에서 먹튀 논쟁을 더 큰 이슈로 잡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당 지도부의 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을 계속 내면서 내가 이 당의 정책담당자로 계속 일하는 게 맞을까 돌아보게 됐다. 고민도 정리하고 진보의 성찰과 전망에 대한 모색도 할 겸 이곳(참여네트워크)으로 옮겼다."

- 참여네트워크는 어떤 곳인가?
"통합진보당으로 통합할 때 국민참여당 계열은 통합찬성파, 반대파로 나뉘었다. 반대파는 혁신과 통합을 거쳐 민주당으로 간 사람도 있고, 찬성파는 대부분 통합진보당으로 들어왔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지면서 탈당한 사람들 중 일부는 진보정의당으로 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의 시민캠프에 참여했다. 참여네트워크는 지금은 다양한 곳에 있지만 예전에 국민참여당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후 진로를 함께 고민하는 공간이다. 아직은 구심력이 잘 생기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시점이라고 보면 된다."

- 회원수가 많나?
"처음 만들 때는 한 2~3천 명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웃음), 회비 내는 사람만 5~6백 명 수준이다."

- 이제 대선 평가를 들어보자.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한국 정치는 5년마다 정치무대가 다시 세팅된다. 대선이 열리는 시점의 시대적인 과제, 민심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독특하게 투표율이 충분히 기대한 만큼 높았고, 젊은 층도 많이 투표했다. 1469만표의 야권 지지표를 생각해보면, 진보개혁 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지지층을 거의 결속시켜낸 선거다.

반면, 보수층 유권자층 역시도 강력하게 결집했다. 진보개혁세력보다 더 큰 결집이다. 그 동력이 뭘까? 결국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진보개혁세력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보수층의 강력한 결집으로 나타났다. 부분적으로는 박근혜 후보의 독특한 흡입력도 한 몫 한 것 같다. 이런 것이 결합된 선거결과가 나왔다."

- 박근혜 정부, 잘 할 것 같나?
"무조건 잘 못할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그렇게 평가할 필요도 없다. 잘 해야 한다. 남북관계, 고령화 사회 대책만큼은 반드시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분야도 더 진보적으로 해주길 바라지만, 그것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말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 국민들의 민도나 정보공유력을 보았을 때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인 나라다. 그런데 (박 당선자는) 이런 나라를 이끌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진보언론의 폄훼에 다 동의하지 않지만,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이 여전하지 않은가? 인수위 활동에서도 보인다. 국민을 설득할 내용이 없는 신비주의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오랫동안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40세대를 포함해서 새로운 주력세대를 이끌 리더십 부재가 안타깝다.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 놓은 재정 문제도 발목 잡을 수 있다."

"안철수 현상 자체가 진보의 요구"

- 진보정의당 이야기를 좀 해보자. 박근혜 시대, 진보정의당은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민주당이나 안철수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예측부터 독자행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다양한데?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말할 처지가 아니라 개인적인 의견일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독자다 아니다를 답할 수 없다. 진보정의당 내부와 민주당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한 민주당 왼쪽 방, 국민연대를 기반으로 한 정당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가지는 특유한 폐쇄성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게 가능하다면, 지난 대선을 그렇게 치렀겠나.

진보정의당은 새로운 진보, 시민과 친화하는 진보, 시민 속에서 호흡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보세력의 과제다. 물론 새로운 세력과 합쳐야 한다. 진보정의당이 안철수 현상과 힘을 합쳐 민주당보다 더 혁신적인 정치세력으로, 한국정치를 바꾸는 제3세력으로 성장하면 의미 있다고 본다. 이런 전망이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데는 물론 안철수 진영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다."

- 안철수 현상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난 뼈속까지 친노인 사람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국민참여당 창당 자체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없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참여계 출신들은 대부분이 문재인 후보에 대해 친화적이었다. 나 역시 그렇고. 그런데 지난 대선기간 내내 안철수를 옹호하고 변호했다. 친노면서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를 옹호했던 것은 어쩌면 분열적인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에 대한 시민의 요구를 담지 못하고는 수구세력을 이길 수 없다. 후보도 그래야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1987년에 양김 중 누가 더 민주주의에 투철하냐를 후보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 분열을 만들었던 것처럼 둘(문재인과 안철수) 중에 누가 더 진보적이냐는 논쟁은 분열만 가져왔을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보여준 새로운 정치의 요구, 국민과 소통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를 대변해야 했다고 본다."

- 안철수 현상과 결합하는 것이 새로운 진보의 가치라는 것인가? 
"그렇다. 기존의 진보운동권 논리는 전통적인 진영논리, 진보의 범위가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어떻게 한국정치에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만 진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합리와 상식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진보다. 전통적인 진보세력이 그런 시민들의 요구와 자신을 구별짓는 순간 사멸할 수밖에 없다."

"성급한 통합·리더십 붕괴가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

통합진보당 분당 전인 2012년 3월 11일 서기호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사법인권 총선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심상정 공동대표, 서기호 위원장, 노항래 정책위의장.
 통합진보당 분당 전인 2012년 3월 11일 서기호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사법인권 총선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심상정 공동대표, 서기호 위원장, 노항래 정책위의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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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이 향후 어떻게 재편되어야 할 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려면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진영도 사분오열되어서 대선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개인적으로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 가장 소극적이었던 사람 중 하나다. 물론 통합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서둘러 통합할 경우 민주노동당의 '운동권 문화'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을 넘어설 수 없다고 봤다. 난 총선과 대선이 끝난 후에 (통합)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총선을 서로 분리된 채로 치르게 되면 선거 결과가 비관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의미 있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통합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통합이 서둘러 추진되면서 우려했던 문제들이 터졌다는 것인가?
"충분히 공감된 인식은 아니지만, 진보 통합은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 진보적 민족주의 간의 결합이었다. 이 가치를 결합하는 과정이 통합 과정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 부족으로 인해 유시민, 심상정, 이정희의 리더십으로 대체했다. 당원, 국민과 공유하지 못한 것을 리더십으로 대체했던 건데, 리더십이 붕괴하니까 풍비박산 난 거다.

- 리더십이 붕괴하지 않았다면 통합진보당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나?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1차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는 무책임했다. 5월 2일 조준호 위원장의 진상조사 결과발표가 있었다. 조사위원장이 발표권한을 갖고 있으니 절차적으로는 정당한 것이지만, 당 대표단이 합의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발표를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황당한 용기였다. 4월 29일에 이정희, 조준호, 유시민, 심상정 대표가 참여한 전략위원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 결과를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를 만들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4월 29일을 전후한 시기에 지도부 내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대책 논의가 진행되었어야 했다. 사실 누구에게 국회의원 당선자 배지를 내놓으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부실했다. 더 진솔하고 날카로운 조사가 필요했다. 지도부가 비상한 각오로 수습책을 만들어야 했는데 못했다. 당이 어찌되든 당파적 이익을 지키겠다고 버틴 것이다. 이런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정치적 자살 사건으로 나타났다."

- 일각에서는 당의 주도권을 둘러싼 음모라는 주장도 제기하는데?
"과도한 해석이다. 비례투표 문제가 터지기 전에도 당이 상당히 혼돈스러웠다. 당내 의사결정과정이 특정 정파에게 독점되었고, 3월 당내 후보 결정 과정에서도 특정 정파의 의도가 작용했다. 여러 부정행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부정행위들이 거론되었을 때, '우리가 아니고 사실은 제주도야(참여계 출신 여자 비례후보를 겨냥한 발언)' 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얘기다. 그럼에도 이런 일에 검찰까지 끌어들였어야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종북주의 거론은 범죄행위,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와 당직자들이 2012년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제19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발표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와 당직자들이 2012년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제19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발표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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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내 리더십 문제나 정파의 패권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만든 배경이 되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최근 나온 검찰 조사 결과는 참여계 쪽에서 당황스러워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진보정의당 역시 어떤 성찰이나 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 아닌가? 
"통합진보당 사태의 책임 중 49%는 소위 혁신파, 탈당한 세력, 그리고 그 중 일부인 진보정의당 창당세력에게 있다. 통합진보당에 있는 분들이 완고함, 정파적인 패권에 집착했던 문제가 있었다면 진보정의당을 만든 분들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열과 동일한 행태를 한 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분당에 반대했다. 비례경선 때 부정행위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특히 혁신파(진보정의당을 만든 신당권파)의 문제 중에 종북주의 운운한 언론의 여론공세에 편승한 행위는 유감스럽다. 북의 지령을 받아 범법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면 법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특정 정치세력, 정치인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종북' 운운하는 건 사회적 범죄행위다. 극심한 이념갈등,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종북주의를 운운하는 사람은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지금 말한 내용들은 진보정의당에 계신 분들과 입장이 다를 수도 있겠다. 내부에서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정권교체의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던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배우고 대한민국을 조금 더 진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진보세력이 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 우리가 얼마나 우둔하고 무책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 재미있는 것이 통합진보당으로 합당을 추진할 때 가장 반대했던 쪽은 사실상 진보신당계였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쪽은 지금 통합진보당 잔류파들이었다.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신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하면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비판적으로 보던 그룹도 진보정의당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조합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나? 진보정의당 내부에 갈등은 없나?
"갈등은 권력이 있을 때, 자원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진보정의당은 그런 자원이 없다. 당내에 이견이 있더라도 자원이 없어서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서로 어려운 시절을 몸 비비고 함께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다. 내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소수 의견에 다른 분들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조직분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진보세력, 시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노항래 부의장은 "안철수 현상과 결합하는 것이 진보의 새로운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항래 부의장은 "안철수 현상과 결합하는 것이 진보의 새로운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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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전망 이야기를 해보자.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진영이 거의 붕괴된 느낌이다. 노동계도 각자 알아서 각 캠프로 흩어졌다. 진보세력이 향후 재기할 가능성이 있나? 노동중심성 회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처럼 조직률이 낮고 노동권리가 존중되지 못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노동시장의 분절화 경향을 완화시키는 것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적 과제 중 하나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시 우리를 추스르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 끊임없이 모색되었던 방식, 즉 민주당 포함한 보수세력과 대립하는 진보노선, 노동자·농민과 결합한 진보정치세력의 비전은 종말을 고했다. 노동운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민주노총이라든가 조직노동자와 결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제기되는 노동중심성 강화 주장이라면 철지난 대안일 수밖에 없다. 진보의 변화는 1987년 이후의 흐름과는 다른 노선으로 우리를 혁신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정당을 운동의 전술단위로 생각한다면 국민이 보기에 웃기는 이야기다. 이런 시각과 결별해야 한다.

진보정당운동이 잘 안 되어서 노동운동이 엉터리가 되었다는 진단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운동이 안 됐기 때문에 정당운동이 안 된 거다. 대중운동의 실패 위에 진보정당의 실패가 있다. '노동중심성 강화', '현장으로부터' 이런 주장 역시 낡은 이야기다."

- 노동중심성 강화는 진보정의당에서도 하고 있는 주장 아닌가?
"스스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노동중심성 강화가 '어떻게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보탬이 될 것인가'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노동자들과의 결합, 노조의 배타적 지지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 마지막으로 이제 진보가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에 도전해야 하는지 들려 달라. 연이은 자살과 농성도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이념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사회가 아니라 삶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존중하고 정의롭게 살아갈까,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거대담론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한다. 시민들의 소망이 보수적인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1987년 이후 지난 25년은 사실 시민혁명 과정이었다. 차별, 반민주, 권위주의, 노동멸시, 이념대결 같은 낡은 구시대의 악폐를 걷어내고, 시민 개개인을 존중하고, 평등하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겠다는 꿈을 키우고 실현해가는 과정이었다. 48% 득표를 좋게 해석하면, 지금 시민혁명의 98%까지 왔다. 민주주의를 학습 중이라 생각하자."

- 오랜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노항래 부의장의 주장은 짧은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듯이 전형적인 '진보'의 입장과는 약간 다르다. 그런 차이 때문에 그는 항상 어디에서든 '소수 의견'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전형적인 진보의 생각과는 다를지 몰라도 상식적인 보통 시민들의 인식과는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그의 논쟁적인 주장과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태그:#노항래,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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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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