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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 코와 바콩은 앙코르 유적군에서 최고(最古)층에 속하는 것이며 앙코르 신전 최초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두 유적군은 앙코르 왕국의 초기에 해당하는 9세기 후반에 인드라바르만1세가 세운 것으로 모두 힌두사원에 해당한다(프레아 코는 인드라바르만 1세의 조상 묘역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외조부를 비롯한 선대가 모셔진 사원이고, 바콩은 인드라바르만 1세 자신의 영묘이다).

프레아 코의 전체적 모습.
 프레아 코의 전체적 모습.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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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 코는 황폐도가 심해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앙코르 와트에는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니만 내가 이곳에 와보니 일본 관광객 몇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용옥 선생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앙코르 와트는 프레아 코에서 끝난다. 그 장대한 아름다움의 모든 가능성이 이미 프레아 코에서 압축되어 있다. 프레아 코는 나의 앙코르 답사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약간의 과장도 섞여 있겠지만 그는 이곳에서 앙코르 유적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신화적 요소를 발견하였기에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 두 곳의 관람은 위치상 프레아 코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바콩이다(양 유적 간의 거리는 약 400미터). 그럼 먼저 프레아 코에서는 무엇에 중점을 두고 관람을 해야 할까.

프레아 코에서 눈여겨봐야 할 세 가지

바콩 사원의 전체적인 모습, 많이 훼손되었지만 원 모습을 짐작은 할 수 있다. 신도에 깔린 것은 돌이 아닌 라테라이트지만 중앙 신전은 프레아 코와 달리 사암으로 되어 있다.
 바콩 사원의 전체적인 모습, 많이 훼손되었지만 원 모습을 짐작은 할 수 있다. 신도에 깔린 것은 돌이 아닌 라테라이트지만 중앙 신전은 프레아 코와 달리 사암으로 되어 있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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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입구에 있는 원통 모양의 돌창살이다. 이 돌창살은 이후 보게 되는 후기의 유적인 앙코르 와트나 프레아 칸에서도 보게 된다. 이들 유적과는 약 300년의 시간차가 나는 데 이것들을 비교하면 어떤 차가 있는지 흥미로울 것이다. 앙코르 와트와 프레아 칸의 돌창살은 사원의 회랑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프레아 코의 이 돌창살이 있는 곳도 과거에는 분명 회랑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번째는 이 사원을 이루고 있는 건축 재료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 좋다. 원래 앙코르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많은 재료는 사암이다. 앙코르 와트는 전체가 이 사암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코르 왕국은 사암이 고갈되어 결국 멸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초기 유적지인 프레아 코에는 이 사암이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세 개의 재료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홍토라고 하는 라테라이트와 구운 벽돌 그리고 스터코라고 불리는 소석회 등을 반죽한 재료이다.

라테라이트는 철분 함량이 많은 진흙인데 이를 거대한 메주 벽돌처럼 찍어 내 그늘과 햇빛에 번갈아 양생한 것으로 마치 제주도의 현무암과 같이 생겼다. 이 재료는 프레아 코의 신도 바닥 면에 깔려 있다.

구운 벽돌은 신전 벽면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바로 옆의 바콩과도 다르다. 그러나 이 재료는 앙코르 초기 건축물에 속하는 뒤에서 보게 되는 프레 룹에서 발견된다. 스터코는 프레아 코의 신전의 입구 상단부(문설주에 해당하는 부분, 이를 린텔이라 부름)를 장식한다.

프레아 코의 린텔, 칼라가 나가를 입으로 삼키고 있다.
 프레아 코의 린텔, 칼라가 나가를 입으로 삼키고 있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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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포인트는 바로 린텔의 구조를 보는 것이다. 김용옥 선생은 이 프레아 코의 린텔이야말로 크메르 문명의 독창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격찬한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린텔의 정형이며 완성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프레아 코라는 것이다.

이곳의 린텔을 예의 주시한 다음 후에 보게 되는 반테이 스레이(10세기 후반)-앙코르 와트(12세기 중반)-앙코르 톰(13세기 초) 등에서 보는 각각의 린텔을 비교해 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연 이 린텔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정형이 되는지. 이곳 린텔의 대부분은 힌두신화의 신인 시바의 또 다른 모습인 칼라가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며 뱀 형상의 또 다른 괴물인 나가를 잡아먹고 있는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

바콩 신전의 신도 옆의 거대한 나가, 7개의 머리 달린 코프라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다.  땅에 배를 깔고 있는 것이 난간을 설치하여 그 위를 앉아 있는 앙코르 와트 등의 나가와 다르다.
 바콩 신전의 신도 옆의 거대한 나가, 7개의 머리 달린 코프라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다. 땅에 배를 깔고 있는 것이 난간을 설치하여 그 위를 앉아 있는 앙코르 와트 등의 나가와 다르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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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린텔을 보다 보면 사원의 문 근처에 이런 귀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시아 문화권의 한 패턴이었음을 직감한다. 불교의 절에는 사천왕사가 있어 문 앞에서 악귀를 내쫓는다. 힌두에서는 칼라가 사원의 문을 지키고 있으니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힌두가 불교보다는 시대적으로는 앞서니 불교의 가람 배치에서 힌두의 이러한 문화의 원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튼 나는 더 이상 린텔에 담겨 있는 신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의 능력의 범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앙코르 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힌두의 신에 관한 이야기, 설화적 이야기인 라마야나나 마하바르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온다면 앙코르 기행은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바콩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들

바콩의 중앙신전,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불꽃이 타는 것 같다.
 바콩의 중앙신전,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불꽃이 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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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콩으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무엇에 주의하면서 관람을 해야 할까. 우선 사원의 구조를 보자. 김용옥 선생은 말하기를 바콩은 앙코르 지역의 모든 거대한 신전의 모델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찬찬히 이 구조를 앙코르 와트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해자를 감싸는 최외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해자를 넘어가면 중간벽이 있고, 그것을 지나 신도(神道)를 걷다 보면 신전의 내벽을 만난다.

이러한 구조는 두 곳의 신전이 규모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하다. 다만 바콩의 신도는 동쪽을 향해 난 반면, 앙코르 와트는 서쪽을 향해 난 것이 차이가 있다. 원래 동쪽은 생명의 탄생을, 서쪽은 죽음을 뜻함으로 통상의 신전은 동쪽으로 신도를 낸다. 이런 이유로 앙코르 와트는 그 신전의 주인이었던 수리야바르만 2세의 사후 신전으로 처음부터 설계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다음으로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양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뱀상, 나가를 보자. 7개의 머리를 넘실거리면서 대지를 노려보고 있는 거대한 나가, 김용옥 선생은 그의 특유한 과장 어법으로 "그것은 내가 앙코르에서 경험한 최초의 경악이자 최대치의 숭고미였다. 임마누엘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숭고를 뛰어넘는 숭고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말이 없어도 이 나가를 보는 순간 우리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거대하고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세밀한 표현 방식을 표현할 말이 없다. 앙코르 지역의 사원에서 나가는 주로 신도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아마도 불사의 사천왕과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다만 바콩의 나가는 땅바닥에 배를 깔고 있다는 사실이 다르다. 앙코르 와트의 나가는 난간 위에서 사원을 지키고 있다.

이어서 바콩의 중심인 시카라의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다섯 단의 기단 위에 다시 다섯 단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불꽃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의 모습은 후에 앙코르 와트에서 변형되고 규모에서 확장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도 기본적으로는 최정상의 마지막 수미산을 향해 기단이 모아지고 좁아지면서 위로 올라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는데 그 원시적 원형을 300년 전의 이 바콩 신전에서 볼 수 있다.

린텔의 전체적인 모습은 프레아 코아 유사하지만 그 상단의 프론톤이 특이하다.
 린텔의 전체적인 모습은 프레아 코아 유사하지만 그 상단의 프론톤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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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시카라의 신전을 훑어보자. 이 신전에도 좀 전 프레아 코에서 본 린텔이 있는데, 다만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그곳에서 볼 수 없었던 그 위의 삼각형 모양의 프론톤이라는 새로운 양식이라는 점이다. 이 양식은 앙코르 초기의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신전 반테이 스레이에 가면 비약적인 발전을 목격할 수 있다.

바콩 중앙 신전 탑문 왼쪽 벽면의 여신과 압사라 부조, 치마의 모양이나 다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앙코르 와트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바콩 중앙 신전 탑문 왼쪽 벽면의 여신과 압사라 부조, 치마의 모양이나 다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앙코르 와트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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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문과 문 사이의 벽에 조각되어 있는 여신들을 볼 차례이다. 앙코르 유적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풍만한 여인의 가슴은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앙코르 와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여신의 모습과 이곳 여신의 의상은 조금 다르다.

앙코르 와트에서 보는 여신의 옷은 속이 비쳐 아리따운 여인의 다리를 짐작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쉽게도(?) 그것을 볼 수 없다. 300년이 지나면서 옷감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조각술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상상에 맡길 일이다.

머리에 갈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 수사자이기는 하지만 앉아 있는 모습은 영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위쪽은 남성스럽고 아래쪽은 여성스럽다.
 머리에 갈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 수사자이기는 하지만 앉아 있는 모습은 영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위쪽은 남성스럽고 아래쪽은 여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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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나의 독창적인 안목에서 발견한 것이지만 그곳의 사자상도 주목해 보자. 사자는 앙코르 유적의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데 신전의 입구를 보통 두 마리가 지킨다. 이러한 양식은 이미 이곳 바콩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앙코르 시대 전체에 걸쳐 뱀 신앙에서 나온 나가와 함께 매우 일반화된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바콩에서 본 사자는 십수 마리인데, 엉덩이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이 흥미로웠다. 중앙 신전으로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사자의 엉덩이와 중앙 신전 앞의 오른쪽에 있는 탑을 지키는 사자의 엉덩이는 분명 달랐다. 전자가 엉거주춤하게 여자들이 오줌 누는 것을 연상시키는 반면, 후자는 듬직하게 앞을 노려보면서 앉아 있어 훨씬 엉덩이의 균형미가 살아 있다. 아마도 시대에 따라 엉덩이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진 모양이다.

바콩에 비견되는 프레 룹

프레 룹의 전경, 라테라이트를 기초로 하고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프레 룹의 전경, 라테라이트를 기초로 하고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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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오스 유적군과는 거리가 있지만 바콩 사원과 비교를 해볼 만한 유적이 프레 룹이다. 이것은 반테이 스레이를 가는 길에 볼 수 있는데, 이스트 바라이의 남쪽 5백미터쯤에 있다. 라젠드라바르만 2세 때인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힌두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 특히 중앙사원의 모습은 대체로 100년 전에 만들어진 바콩 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린텔과 신전 문 주변의 여신상은 프레아 코 및 바콩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신전문 옆에 서 있는 여신의 부조가 보다 정교하다.
 린텔과 신전 문 주변의 여신상은 프레아 코 및 바콩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신전문 옆에 서 있는 여신의 부조가 보다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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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의 용도에 대해서 크메르인들은 장례식 사원으로 알고 있으나 아직껏 그 진정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사원의 건축 재료는 주로 라테라이트와 벽돌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초기 앙코르 유적에서 보는 특징 그대로이다.

신전 탑의 린텔을 보면 프레아 코나 바콩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주변의 벽면 부조(여신상)도 속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초기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태그:#세계문명기행, #앙코르 문명, #프레아 코, #바콩,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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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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