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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더 로드>.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더 로드>.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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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러한 소모 뒤에는 언제나 재충전의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음식을 먹고, 잠을 자거나 쉬는 등 우리가 매일 행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육체적 휴식 외에, 정신적 에너지에도 소모와 재충전의 과정이 일어난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기대감을 갖게 되었으나 이것이 전혀 충족되지 못하고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매우 허탈해하거나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런 정신의 소모상태를 요즘에는 멘탈의 붕괴, 흔히 '멘붕'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렇게 멘붕에 빠져들면, 만사 귀찮아지고 밥맛도 달아난다. 무엇보다도, 어떤 일에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체력이 바닥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듯 없듯이,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 역시도 같은 악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멘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적 에너지의 재충전이 필요한데,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최근까지 문화의 한 흐름으로 각광받아온 '힐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신적 치유에 가까운 힐링을 위해서는 허탈함을 딛고 다시 희망을 가질만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런 멘붕을 딛고 힐링을 하려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요소는 찾아보면 다양하다. 그 중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나 영화 혹은 서적일텐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코맥 맥카시의 소설 <더 로드>를 추천하고 싶다.

인류멸망 이후의 잿빛 세상, 길 위의 두 남자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옆에서 자다가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현재로부터 그리 멀지않은 미래, 세상은 온통 불에 타버리고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태다. 풀과 나무를 비롯한 식물은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거나 타 죽은 채로 앙상하게 서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동물들도 궤멸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결국, 인류문명도 모두 무너졌고 황폐한 잿빛 사막이 되어버린 세상속에서 두 남자는 살아간다.

<더 로드>는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나게 된건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핵전쟁인지, 자연재해인지 독자들은 알 수 없다. 등장인물들도 원인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그저, 어느 사이엔가 손쓸 틈 없이 통째로 죽어버렸다. 이유를 모르니 해결책도, 앞으로 할 일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야만 한다. 이 소설은, 그런 끝없는 절망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제목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길' 위를 걸어간다. 먹을 것을 찾아,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싸우면서 남쪽으로 끊임없이 걸어간다. 길의 끝에는 무언가 탈출구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늘 굶주리고 피곤한 상태다. 동식물이 모두 멸종되었으니 음식은 늘 부족하다. 폐허가 된 마을의 집들을 뒤져서 통조림요리 등을 구해서 며칠을 버텨내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세상에서 그나마 손쉽게 배를 채우려 남은 인간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가는 약탈자들이 도사리고 있기에 늘 경계해야만 한다. 하루하루가 악몽같은 나날인 셈이다.

희뿌연 하늘처럼 보이지 않는 내일, 사라져버린 희망

험한 세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꼬마에 불과한 어린 아들 그리고 그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이야기는 두 남자의 시점을 불규칙하게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남자의 부인이자 아이의 어머니는 진작에 삶을 포기했다. 세상이 이런 지경이 되었으니, 다 같이 자살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남편이 끝내 묵살해버리자 혼자 집을 나간 뒤로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끝내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을지라도 말이다.

길을 걸어가는 그들이 가진건 쇼핑용 카트와 그 안에 담긴 소량의 음식, 그리고 권총 한 자루 뿐이다. 그나마도 리볼버 권총 안에는 단 두 발의 총알만 남아있다. 이 총은 약탈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자는 최후의 상황이 닥친다면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고통없이 보내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약탈자들은 식인을 저지르는 것은 물론,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강간까지 일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은 잿더미로 뒤덮여있고, 하늘마저도 늘 뿌옇게 흐리다. 떠다니는 먼지가 가려버렸기에 식물들은 새로이 자라날 수 없다. 늘 흐린 하늘처럼, 이들의 미래도 전혀 밝지가 않다. 절망적인 것은 물론이고, 희망을 가질만한 그 어떤 작은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런 확신도 없는데도, 두 사람은 지도를 보며 남쪽해안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간다. 신발이 닳아버릴 정도로 걷고, 어두워지면 추위를 피해 불을 피우고 잠이 든다.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런지 알 수 없기에, 항상 권총은 머리맡에 두어야만 한다.

끝없이 걷던 길의 끝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이야기의 대부분은 두 사람의 외롭고 힘든 여정으로 채워진다. 두 사람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름같은건 중요하지 않은건지도 모른다. 마치, <더 로드>에 등장하는 두 남자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당신이라면, 세상이 모두 회색의 황폐한 땅으로 변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더 로드>의 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혹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욕구와 생존만을 위해 사람을 잡아먹으며 연명한다.

하지만 남자와 아들은, '절대 사람은 잡아먹지 말자'거나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면 사람을 해치지 말자'고 서로와 약속한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자신들처럼 떠돌아다닐지 모를,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정처없이 길을 걷는다.

이들은 가슴이 찢어지게 슬프도록 절망적인 세상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직접 걸어가면서 보여주는 듯 하다. 산자가 죽은자를 부러워하는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 가슴안에 품고있던 불을 이어가듯이 살아가는 모습. 희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땅위에서 뚜렷하지 않은 불안한 내일을 앞두었을지라도,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더 로드>는 더할 나위없이 절망적인 멸망 이후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단어와 표현들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이 소설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작품이면서, 동시에 빈껍데기에 불과한 '위로'가 아닌 절망의 밑바닥에서 건져낸 진짜 '희망'을 보여준다.

선거결과, 혹은 개인적인 일로 '멘붕'을 겪고있는 사람이라면 두 남자가 걷는 길 위로 동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들이 걸어가는 길, 그 끝에서 보여주는 메시지가 당신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로드 | 코맥 매카시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문학동네 | 2008년 6월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08)


태그:#더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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