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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1일 지구 종말론이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다. 매년 12월 21일은 동지로 일년 중 제일 해가 짧은 날이기도 한데, 고대 마야 캘린더에 의하면 이날이 인류의 한 사이클을 마감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한 사이클 마감과 세계 종말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여기에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이 개입돼 있다.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에 부가라슈 (Bugarach)라는 마을이 있다. 부가라슈는 200명 인구가 사는 작은 마을로 지구 종말론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인류의 한 사이클을 마감하는 날을 세계의 종말로 해석한 일부가 피레네 지역의 불명치 않은 한 웹사이트에서 2년 전에 2012년 12월 21일 세계 멸망설을 떠들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종말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부가라슈라는 마을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가라슈 마을 뒤에는 해발 1231미터에 해당하는 산봉우리가 위치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이 산 어디엔가 UFO(미확인 비행물체) 착륙기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었다. 결국 외계인이 이 마을주민들을 구할 것이라는 황당한 설이 웹사이트에서 나돌게 되는데 2010년 말에 이 지역 신문인 <L'Independant (렝데팡당)>이 이 사실을 기사화 하면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른 신문들도 연이어 이 소식을 다루고 급기야는 미국 <뉴욕타임스>까지 합세하면서 부가라슈와 관련된 12월 21일 지구 종말론설이 세계로 확산됐다.

지구 종말론에 휩쓸린 마을

12월 20일자 <르피가로>에 실린 기사 '부가라슈, 지구멸망을 기다리며 운집한 언론'
 12월 20일자 <르피가로>에 실린 기사 '부가라슈, 지구멸망을 기다리며 운집한 언론'
ⓒ 르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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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 졸지에 지구 멸망설에 휩쓸린 부가라슈 마을은 주민들이 원치도 않는 상황에서 여러 종류의 소문에 휩싸이게 됐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거나, 전국 각지에서 혹은 해외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민박집의 자리가 남아나지 않는 등의 일이다.

세계 경제 위기로 인건비가 비싼 프랑스는 많은 기업들이 동유럽이나 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면서 실업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는데 지구 종말론이 하나의 위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서점가에서는 세계 종말에 관한 책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각 언론 매체에서도 여기에 질세라 세계 종말에 대한 방송을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2월 21일 당일 날에는 프랑스 TV 여러 채널에서 지구 종말 관련에 대한 특집 방송이 장시간 이어질 예정이다

올해 발간된 <아포칼립스(묵시) : 절박한 위협?>이라는 책에서 저자 페네슈(Fenech)는 "아포칼립스를 맞이하여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부가라슈를 집단 자살의 장소로 정할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그는 1995년에 한 사이비 종교단체가 지구 종말론을 믿고 알프스 지역에서 집단 자살을 벌인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부가라슈 마을은 12월 19일에서 23일까지 100명이 넘는 경찰이 24시간 주재하면서 마을의 진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할 계획이다. 또한 21일 당일에는 프랑스 전국에서 300여명의 기자들이 세계 종말을 취재하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

이제껏 아무 문제 없이 조용하게 살던 부가라슈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시끄러운 현상에 당연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이 지역에는 어떤 사이비 종교단체도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경운기 3대면 마을을 봉쇄할 수 있는 상황에서 100명이 넘는 경찰이 주둔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에게 새로운 사실은 기자들의 출입이 잦아졌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전문가들, 세계 종말설 믿지 않아

<그라지아> 여성잡지에 게재된 사진 '아포칼립스 전의 마지막 정차'
 <그라지아> 여성잡지에 게재된 사진 '아포칼립스 전의 마지막 정차'
ⓒ 그라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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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전문가들까지 가담하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과학 국내연구소(CNRS)에서도 지난 12월 12일 데일리모션(Dailymotion) 사이트에 15분 분량에 해당하는 영상을 발표해 지구 종말론을 언급하였다. 이 영상에서 한 마야 문명 전문 고고학자는 올12월 21일은 마야 캘린더에 의하면 인류의 한 사이클을 마감하는 날로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 종말론 대신 새로운 사이클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여러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인류 사회에 "신이 도래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종말이 아닌 새인류의 건설을 약속하는 날이라고 전망했다.

철학자 미카엘 포에셀 (Michael Foessel)도 여성잡지인 <Grazia (그라지아)> 11월 30일자 ' 아포칼립스 전의 마지막 정차'라는 기사에서 세계 종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아포칼립스의 어원은 초기기독교 신자에게는 '계시'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세계의 종말은 당연히 신에게로의 귀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의 가치가 떨어진 오늘날 아포칼립스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최근의 지구 종말론이 유럽에서 나오는 이유로 유럽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데서 원인을 찾는다. 이제까지 세계의 역사를 지배하던 유럽이 세계의 주도권에서 서서히 밀려나게 되면서 지구 종말론을 끌고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게 된 유럽인들에게 가능한 것은 세계의 종말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철학자 포에셀은 신이 돈으로 대체된 현 사회에서 아포칼립스를 파는 자들이 횡행하게 되는데 특히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서바이얼리스트(생존주의자)들을 위한 지하 벙커나 생존물품 세트, 무기 판매 등이 좋은 예라고 언급하고 있다.

수없이 반복되어온 지구 종말론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차례의 지구 종말론을 목격했다. 12월 20일 오후 5시 '프랑스 퀼튀르 (프랑스 문화)' 라디오 방송에서도 지구 멸망설을 다뤘는데 이 방송에 따르면 "로마 왕국 말기부터 지금까지 183개의 지구 종말론이 존재했는데 현대로 접어들면서 더 빈번해지면서 지난 20년 동안 34개의 종말론이 나돌았다"고 언급했다.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종말론을 비롯해 2000년 버그 현상이 거기에 속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다른 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기자들의 나태가 프랑스 작은 마을인 부가라슈 현상을 일으킨 셈이다.


태그:#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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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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