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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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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승리해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위 문재인 후보와의 표차는 득표율 기준으로 3.6%P였다.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일대일 구도로 치러진 건곤일척의 승부인 데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박빙의 결과를 예상한 만큼 3.6%P의 득표차는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안일한 선거전략

결과가 나온 뒤의 말이기는 하지만, 이번 대선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선거전략, 좁게는 득표 전략에 선거 기간 내내 의문이 남는 선거였다. 민주당은 부산-울산-경남에서 40%를 확보하고 충청-강원-제주에서 박빙 열세라면 수도권 우세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안일한 계산이었다.

우선 호남 유권자는 대구-경북과 유권자 수가 거의 같아 전체의 약 10%를 이룬다. 이 두 지역에서는 특정정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따라서 호남 전체가 대구 경북과 상쇄된다. 실제 개표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부산-울산-경남은 대략 전체 유권자의 15%를 차지한다. 이 지역에서 6:4의 게임, 즉 20%가 차이나면 전체적으로 3%P의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이 3%P를 수도권에서 극복하려면, 수도권에서 6%P의 득표율 차이를 내야 한다. 수도권 유권자가 전체의 약 50%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머지 15% 정도를 차지하는 충청-강원-제주권에서 5:5의 싸움을 한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현실을 보자면 수도권에서 6%P 이상의 득표차이를 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7%P 차이로 승리하긴 했지만, 인천이나 경기지역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어서 이만큼의 표차가 나기 어렵다. 실제 개표 결과는 인천과 경기에서 박근혜가 오히려 승리한 것으로 나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서울지역 유권자는 전체의 20%임에 반해 인천-경기는 30%에 달한다.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 득표율(정당지지율)을 보면 전국적으로는 진보진영이 46.8%로 46.0%를 얻은 보수에게 이기는 결과였지만 그 차이가 미미한데다 수도권의 차이도 4%P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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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야권의 승리 방정식은 수도권의 확실한 우위, 중부권 백중세, PK 40% 돌파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제주는 전체의 1%인데 전통적으로 대략 5:5이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야권은 수도권에서 안일했고 중부권을 백중세로 돌릴 전략이 없었다. 1997년 대선의 DJP 연합이나 2002년 수도이전 같은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중부권 백중세는 불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은 박빙으로 패한 대전을 제외한 중부권에서 참패했다(충남 13.4%P, 충북 12.9%P, 강원 24.5%P 차).

그렇다고 해서 수도권에서 이 모든 열세를 만회할 만큼의 압도적인 승세를 잡지도 못했다. 사실 인천과 경기의 경우 방송3사의 출구조사 예측 결과 문재인이 각각 1.6%P와 2.1%P 이기는 것으로 예측됐으나 개표결과 오히려 박근혜가 각각 3.6%P, 1.2%P 이겼다. 서울에서는 문재인이 겨우 3.2%P 이겼을 뿐이다. 타 지역의 출구조사 예측이 개표결과와 대동소이한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특히 경기-인천의 판세역전이 결정적으로 승부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외친 "잘 살아 보세"

득표결과가 이렇게 나오게 된 내면을 살펴보자면, 후보 개인의 경쟁력에서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문재인을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정권교체의 여론이 정권연장의 여론보다 높았음에도 이 흐름이 후보 지지율에 반영되지 않았고, 안철수의 사퇴로 인한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했던 중간층을 문재인이 흡수하는 데에 한계를 보였다. 전체 득표율 차이가 3.6%P이면, 결국 박근혜를 찍은 중간층 1.9%P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여겨졌던 2%P가 실제 투표에서도 발목을 잡은 셈이다.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 앞선다고 판단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아마도 무리한 정책경쟁으로 판세를 흔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가 물타기에 가까운 복지공약을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상대적으로 문재인은 박근혜와의 뚜렷한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이날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이날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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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언급한 후보의 경쟁력은 예컨대 TV 토론을 누가 잘했나 하는 식의 경쟁력이 아니다. 박정희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50-60대에게는 박정희-박근혜 자체가 말 그대로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정의였다. 배고픔은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가장 힘든 고통 가운데 하나이다. 박정희-박근혜 신화는 이렇게 몸으로 체득한 신화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가치로도 치환하기가 어렵다. 이는 그 후속세대가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신화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박근혜가 선거 막판에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외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는 노령화에 따른 세대별 유권자 분포의 변화와 맞물려 유효적절했다. 아마 앞으로도 높은 투표율이 진보에 유리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MB정권이 지난 5년 동안 공들인 노력이 이번 대선에서 큰 빛을 발휘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MB정권은 국세청 국정원 청와대를 동원해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일삼았고 집권당 인사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른바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도 못했다. 그 여파는 이번 대선에서 이른바 '십알단 사건'과 국정원 여직원 사건 의혹으로 연결되었다. 단죄되지 않는 범죄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MB 정부가 임기 내내 공을 들인 언론 장악은 이번 대선을 위한 신의 한 수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큰 선거마다 새로운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매체가 없었다. SNS는 이미 겪어 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나꼼수'는 총선 때 '김용민 막말 사건' 이후 그 위세가 많이 꺾였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공중파를 위시한 기존 매체가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들의 편파방송은 사실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MB 정부가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공중파를 점령한 결과는 이번 대선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무상급식 논란 때 이미 거론되었던, "무상급식 때문에 학생들이 멀쩡한 우유를 내버린다"는 보도가 선거 직전에 갑자기 다시 등장한 것은 그냥 웃고 지나갈 수준이라 하더라도, 선거와 직접 관련된 중대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대단히 편파적이었다. 예컨대 국정원 여직원 의혹 사건이나, 선관위가 직접 고발한 '십알단 사건'은 오히려 야당의 생떼쓰기로 윤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1992년 대선에서의 초원복집 사건처럼 보수층의 결집을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만약 정부부처, 수사기관, 언론이 제 역할을 수행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범국가적인 여론조작 의혹이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집권당이 치명상을 입어야 당연한 사건들이었다. 보수 전문가로 알려진 경찰대학의 표창원 교수 말처럼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을 탄핵시킨 워터게이트보다 더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단지 '김용민 막말' 하나가 선거판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에 비해 보면 국정원 의혹이나 십알단 사건이 이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된 것은 한국 사회의 대단히 불공정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2차 TV 토론이 끝난 뒤에 모든 언론에서 일제히 박근혜의 재산형성 의혹과 탈세를 보도하며 "세금 안 낸 대선 후보"라는 제목을 일주일 내내 뽑았더라면 박근혜가 이렇게 높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을까?

박근혜와 아베가 열어갈 동북아, 어떤 모습일까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한 박근혜 후보의 두번째 TV광고에 등장한 일본 아베 총리.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한 박근혜 후보의 두번째 TV광고에 등장한 일본 아베 총리.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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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점을 종합해 볼 때 18대 대선은 한국사회 보수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를 실감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이번 박근혜의 당선으로 일본과 한국 모두 만주 괴뢰국의 후예가 권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일본의 신임 아베 총리는 2차 대전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기시는 만주국 관료 출신이고 박정희는 만주군인 출신이다. 실제 박정희와 기시는 남다른 관계였다. 박정희가 기시에게 대한민국 외교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관련기사: 일본 극우파와 박근혜가 나란히? 그것만은...)

박근혜와 아베가 열어갈 새로운 동북아가 어떤 모습일지 섣불리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일본은 지금 유신회라는 극단적인 우파가 의회에 상당수 진입할만큼 전 사회적인 보수화로 치닫고 있는 상황임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 보수의 벽이 높다 한들 설마 막장에 가까운 일본에 비할까마는, 제3자가 보기에는 별 차이를 못 느낄지도 모른다. 아마도 외신들은 사상 첫 여성대통령보다 동북아의 두 경제대국이 비슷한 정치행로를 가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더 많을 것이다(일부 외신은 이미 "독재자의 딸이 인권변호사를 이겼다"는 제목을 뽑았다.).

그런 까닭에, 오늘 우리의 선택이 극단적인 우향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마 박근혜 5년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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