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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미나미지로 총독은 천황을 위해 멸사봉공하라고 강조했다.
▲ 멸사봉공 일제강점기 미나미지로 총독은 천황을 위해 멸사봉공하라고 강조했다.
ⓒ 이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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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소중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대다수 국군 장병을 믿는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그들의 명예가 도매금으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병들도 조국을 지키는 일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 군인들이 표상으로 모시는 충무공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 지향하는 목표요 방향이다."

최근 '노크귀순' 사건이 발생한 뒤에 <조선일보>에 실린 사외칼럼이다. 여기서 칼럼을 쓴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존경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멸사봉공'의 정신이 조국을 지킬 때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한다. 이순신 장군이 멸사봉공?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씀" 이라고 점잖게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사욕을 버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공익'이란 말은 좀 모호하다. 공익(公益)의 사전 풀이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란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사회 전체의 이익'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하는 점이다.

충무공의 “멸사봉공”을 강조한 칼럼
▲ 멸사봉공 칼럼 충무공의 “멸사봉공”을 강조한 칼럼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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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이던 미나미지로(南次郞)가 도지사들을 모아 놓고 행한 훈시 가운데 들어 있다. 1939년 4월 19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 미나미는 "국민정신 앙양" 을 위해 '충남 부여에 일본 신궁 창립, 지원병 강화, 황도정신 선양' 등을 내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모든 관공리(官公吏)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열(情熱)에 불타는 심경(心境)에 이르면, 관민(官民)의 간(間)에 드디어 원활(圓滑)을 가(加)할 것은 물론(勿論), 지성(至誠)의 영(映)하는 바 혹(或)은 지주(地主)와 소작인(小作人), 혹(或)은 기업자(企業者)와 노무자(勞務者)와 같은 사이에도 따뜻한 양해(諒解)를 증진(增進)하여 국가(國家)에의 봉사(奉仕)로써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소위(所謂) 총친화(總親和), 총노력(總努力)을 기(期)치 않고도 실리(實理)될 수 있을 것이다."

“멸사봉공”이 쓰인 동아일보 1940년 7월 7일 기사(왼쪽),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멸사봉공”의 헌신을 요구했다는 1972년 6월 6일 기사
▲ 멸사봉공 기사 “멸사봉공”이 쓰인 동아일보 1940년 7월 7일 기사(왼쪽),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멸사봉공”의 헌신을 요구했다는 1972년 6월 6일 기사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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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시 가운데 '멸사봉공의 정열에 불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때의 멸사봉공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는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멸사봉공 뜻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 마이너스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주인이나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여 봉사하는 정신. 1945년 이전 수신교육(修身教育)의 기본 사상 중 하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1945년이라면 패전 이전을 말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 극에 달할 때 일본의 교육 방침은 첫째도 둘째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 실현이었다.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아야 할 시절에 쓰던 말이 멸사봉공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멸사봉공 대신에 '극기봉공(克己奉公)'이란 말을 쓴다. 한국에서도 예전 문헌에는 '멸사봉공'이라 쓰지 않았다. 고려 말 학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의 시문집인 <양촌집(陽村集)> 33권에 '배사향공(背私嚮公)'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뛰어난 선비와 충성을 다하는 대신과 우뚝한 호걸과 위대한 영웅과 산림의 처사(處士)와 초야에 묻힌 인재들도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에 민첩하고 공을 세우며, 임기응변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간사한 자를 내쫓고 완만한 자를 물리치며, 아첨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고 질투하는 자가 용납되지 않아서 법령이 수행되고 도리가 융성해졌습니다.(卓犖之傑。瑰偉之雄。山林之逸。草野之窮。莫不躍鱗振羽。趨事儳功。迎機應變。背私嚮公。斥逐邪佞。拔去頑兇。讒謟不進。媦疾不容。令修弊革。理道惟豐。)"

또한 조선 중기의 문인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집인 <우계집(牛溪集)>에 나오는 '지봉공(只奉公)'을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을 해두었다.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집인 《우계집(牛溪集)》, 이 책에는 “멸사봉공”이 아니라 “지봉공(只奉公)”라 했다.
▲ 우계집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집인 《우계집(牛溪集)》, 이 책에는 “멸사봉공”이 아니라 “지봉공(只奉公)”라 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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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程子) 말씀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진다'고 하였으니, 신하가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나라를 걱정한다면 천 명 만 명이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스스로 사리사욕을 챙겨 자신만을 아낀다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질 것이니, 어찌 하나로 통일될 수 있겠습니까.(程子之言曰。公則一。私則萬殊。人臣不有其身。只奉公憂國。則千萬人可爲一心。若自私愛身。則人各爲心。安能合一乎。)"

700여 년 전인 권근 시대에도 멸사봉공의 뜻은 있었다. 다만 그를 표현하는 말이 '배사향공(背私嚮公)'이었으며 조선에 오면 '지봉공(只奉公)'으로 쓰였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멸사봉공이 일본 천황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면 모르겠으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처럼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한 뜻으로 출발한 말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제국주의를 충성스럽게 섬기라는 뜻으로 쓰였던 말이 그 본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일반 백성들도 마구잡이로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멸사봉공이란 말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나 안다면 차마 그 말을 쓸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대자보에도 보냄



태그:#멸사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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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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