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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화요일

West yellow stone, MT - Ennis, MT
71 mile = 113.6 km

밝게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어젯밤의 악몽도 점차 옅어져 간다. 헤브겐 호수(Hebgen lake)를 둘러지르는 페데럴 루트(Federal Route) 287번을 타고 상쾌한 라이딩을 시작한다. 도로 저 너머에 검은 형상 두 개가 넘실거린다. 10분 정도 달려 거리가 좁혀지면서 두 명의 라이더를 포착할 수 있었다.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호수의 물결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 여성이 조깅을 하고 있다.
▲ 헤브겐(Hebgen lake) 호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호수의 물결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 여성이 조깅을 하고 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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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맥다니엘(Kurt McDaniel)과 메리 맥다니엘(Mary McDaniel) 부부다. 조와 가이 일행과 헤어진 지 며칠 만에 다시 동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도 조와 가이를 잘 알고 있다. 며칠 동안 함께 라이딩을 했다. 어느 날 똑같은 져지를 입은 수십 명이 그들 옆을 우르르 지나갔다. 기금 마련 행사의 일환으로 미국을 달리는 이들에게는 지원 차량 2대가 붙었고 도착하는 곳마다 교회를 숙박지로 미리 잡아놓았다. 조와 가이는 이들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 그룹에 묻어가면 교회에서 손쉽게 묵으리라는 셈을 낸 것이다. 노익장들이 그들을 따라 나서면서 맥다니엘 부부와는 헤어졌다.

앞서 나가던 그들이 랜더(lander)에서 이틀 쉬고 잭슨(Jackson)으로 길을 틀면서 맥 다니엘 부부가 선두로 나섰다. 이렇게 만난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에니스(ennis)를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페달을 밟았다. 20마일 지점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로써 콜로라도, 와이오밍 뿐만 아니라 몬태나 또한 변덕쟁이임이 밝혀졌다. 한 치 앞도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

가랑비처럼 떨어지던 비는 어느덧 장대비로 변했고 도무지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다. 부부 라이더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를 잠시나마 피해볼까 비버 크리크 캠프그라운드(beaver creek campground)로 들어섰다.

국유림(National forest)에 위치한 캠핑장은 그야말로 적막했다. 세찬 빗줄기 사이로 간간이 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RV 차량은 물론 인적조차 없는 숲속. 첩첩 산중에 외로운 라이더 하나.

켄터키에서 사촌형 집에 들렀을 때 동료 신학생들이 들려주었던 일화가 뇌리에 스쳤다. 몇 년 전 발생했던 애즈베리 신학생 실종사건이었다. 그는 홀로 여행을 떠났다. 차를 몰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들어간 지 며칠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몇 달 후 경찰은 숲 속에서 주검을 발견했다. 동물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도로를 제외하고 천혜의 자연을 최대한 보존해 놓은 미국 산간지대에는 야생동물이 득시글하다. 캠핑장 곳곳마다 음식을 단단히 밀봉하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음식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그가 차 밖에서 서성이는 사이 커다란 동물이 그를 덮쳤을 것이다.

돌연 머리털이 곤두섰다. 짐받이에 그날 먹을 양식을 얹어 다니는 내게도 그런 일이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도 비를 뚫고 음식 냄새가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을 것이었다. 아름드리 나무에 몸을 기대고 주위를 살폈다. 괴괴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한다. 비가 약간 누그러진 틈을 타 서둘러 자전거를 끌고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아스팔트 길이 나오고 차 한 대가 빗물을 튀기며 저만치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시 달리는데 기괴한 장면을 목격했다. 산비탈이 깎여지고 돌과 나무들이 한데 뒤엉켜 쓰러져 있다. 여기가 그 유명한 퀘이크 호수(Quake lake)다. 1959년 8월 17일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이 몬태나 주 남서부를 강타하면서 8천만 톤에 달하는 산사태가 시속 160km로 쉬프 마운틴(sheep mountain)의 남쪽 산사면을 덮쳤다. 당시 헤브겐(hebgen) 호수 연안과 매디슨 강(madison river) 하류를 따라 캠핑을 하던 여행객 28명이 순식간에 매몰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 지진의 여파로 수심 58m에 길이만 장장 9.7km 에 달하는 호수가 만들어 졌다. 무서운 자연의 힘에 오금이 저린다.

비와 추위에 떨며 갖은 고생을 해서 6마일만 남겨둔 지점. 놀랍게도 서광이 비추며 따스한 햇볕이 온 몸을 휘감는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막판에서야 이렇게 날씨를 풀어주시니 대자연의 변덕이 얄궂기만 하다.

무수한 소떼의 무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산맥이 옹골찬 기운을 내뿜고 있다.
▲ 에니스(Ennis) 가는 길 무수한 소떼의 무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산맥이 옹골찬 기운을 내뿜고 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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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해 식사를 즐기던 맥 다니엘 부부와 함께 근처 캠핑장에 들렀다. 기본 2명이 머물 수 있는 캠핑 사이트가 20달러이고 1명 추가시 2달러를 내야 한다. 세 명이 분담하니 고작 7달러에 퉁친다. 혼자 보다 여럿이 낫다는 진리를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다.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에서 나는 커트 아저씨와 마주 앉았다. 이들 부부는 10년 이상 등산, 도보여행, 자전거 여행 등을 즐긴 베테랑들이다. 그 동안 몇 주 일정의 자전거 여행을 많이 해봐서인지 이번 여행에도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다.

이번 일정을 짜면서 이들은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 독자적인 코스 몇 가지를 집어넣었다. 자택이 위치한 오클라호마 시티(Oklahoma City)에서 출발해 텍사스를 지나쳐서 캔자스 주 허친슨에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과 만났다. 이후 몬태나 미술라(Missoula)까지는 나와 같은 노선이다. 몬태나에서 글라치어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으로 북진하여 캐나다로 넘어간 후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과 야스퍼 국립공원(Jasper National Park)을 둘러본다.

거기서 남서쪽에 위치한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에 도착한 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기찻길 루트를 따라 밴쿠버(Vancouver)까지 서진. 그리고 남쪽을 향해 시애틀을 거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간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다시 웨스턴 익스프레스(western express) 코스를 타고 네바다 주, 유타 주를 거쳐 뉴멕시코 주로 내려갔다가 오클라호마 시티로 복귀한다.

설명을 듣는 내내 거침없는 일정에 혀를 내둘렀다. 총 거리가 6500마일에서 7000마일이니 오죽이도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다. 상관에게 사정해서 6개월 휴가를 얻은 아내가 12월 초 직장에 복귀하기 전까지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한다. 갈 길이 바쁘다.

지금껏 길 위에서 수많은 라이더를 만나면서 그들의 열정에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노구를 이끌고 자전거에 몸을 싣는 라이더가 있는가 하면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무일푼으로 미 전역을 다니며 경험담을 책으로 펴낸 자린고비 라이더와 가족 모두를 이끌고 대륙을 횡단하는 멋진 아버지도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멀리 아시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명함을 내밀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공력이 한참 부족하다.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하루다.

7월 17일 화요일

Ennis, MT - Dillon, MT
71 mile = 113.6 km

물을 끓였다. 인스턴트 오트밀 두 봉지를 부었다. 여행자를 위한 간단한 아침식사다. 두 달 가까이 지난 여행에서 식단이 나름 정형화되었다. 빠른 칼로리 보충과 간단한 조리를 위해 아침에는 바나나와 오트밀을 먹는다. 길 위에서 해결해야 하는 점심은 최대한 간단해야 한다. 땅콩 버터 또는 잼을 바른 식빵. 특히 식빵은 포만감을 쉽게 느끼게 해 준다. 빵에 비해 잘 뭉개지지 않는 또띠야도 괜찮은 식재료다. 저녁에는 코펠과 버너를 이용해서 그럴듯하게 차려 먹는다. 냉동 식품이나 캠벨 깡통, 어쩌다가는 카레를 끓이기도 한다.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데 맥 다니엘 부부가 완전 군장을 한 채로 다가왔다.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물론 취사도구는 가지고 있지만 콜로라도 주 이후로 사용하지 않았다. 레스토랑 음식이 훨씬 영양가 있다는 커트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거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침, 저녁을 모두 사먹는다면 만만치 않은 부담일 터였다.

식사를 마치고 캠핑장을 벗어난다. 부부 라이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식사 중인지, 이미 앞서 나가는지는 모를 일이다.

버지니아 시티(virginia city)로 가기 전 초반 10마일이 난코스다. 한번에 2000피트를 올라가야 한다. 록키산맥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르막이다. 장시간의 여행에 적응이 되었는지 초창기만큼 힘들지는 않다. 미국행을 앞두고 한국에서 했던 라이딩 훈련이 떠올랐다. 순천 봉화산 정상까지의 산길을 자전거로 30분 정도 줄곧 올라갔었다. 숨을 헐떡이며 힘겨워했었는데. 여행을 마치면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 사람의 변화는 스스로 느낄 수 없다. 과거와 대면했을 때에야 그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미국 초창기 건축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 이제는 관광지로 변모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버지니아 시티(virginia city) 미국 초창기 건축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 이제는 관광지로 변모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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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시티 이후 쭈욱 내리막이다. 63세 자전거 라이더 랜스(Rance)를 만난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전거 용품을 차곡차곡 모아온 매니아다. 나에게 레인 기어(Rain gear)라는 것을 보여준다. 방수모자, 우비, 신발, 방수용품 등. 가벼운데다 부피도 작다. 기술 집약도가 높고 무게가 낮아질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장비빨로 따지면 나처럼 열악한 라이더도 없다. 한국에서 샀던 500원 짜리 일회용 우비는 워낙 자주 입어서 너덜너덜한데다 옆구리가 찢어졌다. 5년 된 장갑은 손바닥면이 찢어진데다 벨크로(velcro)가 더 이상 붙지 않는다. 나침반이 없어 조카에게 뺏었고, 클릿슈즈는 물론 킥스탠드도 없다. '슬램덩크'의 정대만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3점슛을 빼앗아 가면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 또한 열정을 빼앗아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17마일 남겨둔 지점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State Road 287번을 경계로 서쪽은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동쪽은 그야말로 봄 날씨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가 어느 순간 서쪽으로 굽이치자 강수지대로 들어섰다. 2마일 지나 길은 다시 동쪽으로 허리를 뒤틀고 햇살이 따사롭게 비춘다.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목적지 딜론(dillon)이 10마일 앞으로 다가왔다.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교각 오른편 풀밭에 사슴들의 사체가 보였다. 동물을 치어 죽인 운전자들이 그대로 내던진 모양이다. 일부는 썩어서 뼈가 드러나 있었다. 익숙해질 법도 됐건만 로드킬은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극락왕생 하소서!'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어주었다. 그 찰나 굉음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봤던 트럭 한 대가 나와 10센티미터의 간격만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한 방에 훅 간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그런 말을 썼던가? 지 죽을 줄 모르고 남 걱정한다고.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딜론에 도착하여 KOA 캠핑그라운드로 발길을 옮겼다. KOA는 캠핑 오브 아메리카(Kamping of America)의 약칭인데 미 전역에 475개가 넘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캠핑장이다. 접수를 위해 사무실로 들어서려다 불현듯 묘수가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캠핑장을 한 바퀴 쭉 훑었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캠핑장마다 요금 체계가 다르다. 사이트(site) 당 요금을 물리는가 하면 두(頭) 당 또는 텐트 개수로 계산을 하기도 한다. 이번 KOA 캠핑장의 규정에서 사람 머릿수대로 계산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라이더와 합쳐서 캠핑비를 분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라이더 메리(Mary)를 만났다. 이미 자리를 잡아놓고 부산하게 짐을 푸는 중이었다. 내 계획을 말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확답을 얻은 나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어이. 친구 혼자 왔나?"
"그럴리가요. 내 친구가 미리 와서 캠핑장을 잡아놨죠."
"한 사이트에 20달러인데 한 사람 추가에는 5달러야."

메리에게 돌아가 감사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까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실은 내가 굉장히 바빠. 컴퓨터로 자료를 만들어야 되거든. 너가 싫은 게 아니라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거든. 딴 사람한테 부탁해볼래?"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노트북과 각종 책자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척 봐도 할 일이 굉장히 많이 쌓여있는 느낌이었다. 여행 중에도 일상을 놓지 못하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며 옆 사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도날드 페터슨(DONALD PETERSON) 아저씨가 있었다. 다시 사정을 설명했더니 쪽지에 이름을 적어주며 흔쾌히 승낙했다. 모든 자전거 라이더는 친구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가 쳐 놓은 텐트 곁에 부산하게 잠자리를 마련한다.

옆에서 서성이던 도날드 아저씨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portland)에서 태어났지만 샌디에이고(Sandiego) 남쪽 88마일 지점인 멕시코 엔세나다(Ensenada)에 산다. 젊었을 적 여행을 하다 콜롬비아에 몇 년 동안 눌러앉아 배웠던 스페인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제 나라임에도 미국보다도 멕시코가 더 맘에 든다 했다.

"난 지금 혼자야. 얘도 낳지 않고 이혼했거든."
"어쩌다가?"
"모든 건 변해. 세상도. 사람도. 그런 거지."
"재혼할 생각은 있어요?"
"멕시코에는 좋은 여자들이 많지.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어?"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왔다는 도날드 아저씨. 겨울에 엔세나다(ensenada)로 놀러오라는 말을 남긴 채 그는 먼저 잠자리로 들어갔다. 근처를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모두들 잠이 들었는지 주위는 고요했다. 어둠이 나를 깊은 잠의 수렁으로 빨아들인다.

7월 18일 수요일

Dillon, MT - Wisdom, MT
65.5 mile = 104.8 km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니 어제 보이지 않던 형상들이 뚜렷이 보인다. Run4Diaper(기저귀를
위해 달립니다) 글자를 크게 써 붙인 RV 차량 한 대가 근처에 있다. 궁금증을 애써 억누르며 서서히 다가갔다. 문이 열리고 자전거 복을 입은 아저씨가 나왔다.

에릭 쉐들(Eric Shadle). 전직 산부인과 의사다. 미 해군에서 군의관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8년 전 유망한 직업을 포기하고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요?"
"의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거든."



미국 정부에서 저소득층에게 지원해주는 쿠폰이 있다. 식료품점에 가서 지정된 물품을 구입하면 쿠폰의 금액에서 차감된다. 지정 품목은 주로 생활필수품이지만 기저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빈곤층 아이들은 기저귀를 제때 충당하지 못해 피부병으로 고통을 겪는다. 에릭은 정부의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기저귀를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 캠페인을 위해 에릭은 라이딩을 하고 아내 팸(pam)과 2명의 동지가 RV 차량을 타고 지원에 나섰다.



워싱턴 주에서 시작해 워싱턴 DC에 도착하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만나 정부에 대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도날드 아저씨는 출발 준비를 했다. 인사를 하려 하자 그는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이어를 눌러보니 충분한 반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대략 40프사이(psi) 정도로 추측이 된다.



"타이어에 바람이 부족하면 펑크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접촉면이 커져서 속력이 잘 안 나와요."



바람을 더 넣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자 에어펌프가 못 버틸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대용 에어펌프는 임시방편이라 높은 압력을 줄 수 없다. 에릭 목사님에게 대형 펌프를 빌린 우리는 압력을 측정해보았다. 45프사이(psi)다. 손 끝의 느낌만으로 정확하게 알아맞힌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80프사이(psi)까지 바람을 집어넣던 도날드에게 에릭이 여분의 튜브를 두 개나 선사한다. 앞 뒤로 빵빵하게 바람을 채운 도날드는 내가 어제 왔던 길을 따라 출발했다. 그에게 행운 있으라.

여행에 대한 이들의 열정에 감탄 또 감탄 뿐이다.
▲ 커트 맥다니엘(Kurt McDaniel)과 메리 맥다니엘(Mary McDaniel) 부부 여행에 대한 이들의 열정에 감탄 또 감탄 뿐이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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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일행과도 일별하며 자전거를 탄다. 오늘은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하나는 1700피트, 다른 하나는 1200피트. 두 번째 고개를 앞두고 맥다니엘 부부를 만났다. 커트가 뒤에서 쫓아오는 가운데 메리와 나란히 달렸다.



이들은 늦깎이 부부다. 메리는 초혼이지만 커트에게는 재혼이다. 3년 동안 열애 끝에 결혼 한지 이제 3년이 지났지만 51살의 메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대신 커트와 전처 사이에 난 딸이 벌써 27살이 되었다.



커트는 대학교에서 컴퓨터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메리는 간호사로 일했다. 평소 자전거를 즐겼다 하지만 이렇게 기나긴 여정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커트에게는 10년 터울의 형이 있었다. 취미생활도 없이 집요하게 일에만 파묻히던 그는 암에 걸려 작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가 걸린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워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 중 하나다. 세 번의 생검을 거쳤지만 진단을 못 내려 결국 수술에 돌입하고서야 암을 발견했다. 임종을 지켜보던 커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잔뜩 회한이 서려 있었다.



"가라! 커트. 인생을 즐겨."



그날 이후 커트는 직장을 그만뒀고, 메리는 상사에게 부탁해 6개월의 휴가를 얻었다. 이리하여 7000마일에 이르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전봇대 위에 둥지를 지어놓고 아래를 조용히 굽어보는 물수리
▲ 위즈돔(Wisdom) 근처에서 발견한 물수리(osprey) 전봇대 위에 둥지를 지어놓고 아래를 조용히 굽어보는 물수리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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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듣다보니 어느덧 두 번째 고개를 넘었다. 평탄해진 길을 순조롭게 달려 우리는 위즈덤(wisdom)에 다다랐다. 지혜의 마을에 이르는 동안 나는 어떤 지혜를 얻었는가?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태그:#미국, #자전거,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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