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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의 화두를 꼽으라면 '경제민주화'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유력후보 모두 자신들 공약의 최전선에 경제민주화를 내놓았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요구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사실상 한국사회가 양극화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배경도 한몫했다.

특히 경제 성장의 과실이 특정 재벌이나 총수 일가로 집중되면서, 경제 민주화는 재벌개혁으로 옮겨가고 있다. 야당 후보 뿐 아니라 박근혜 후보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박 후보도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됐고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말할 정도다.

이들은 대체로 재벌 총수 일가가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얻은 부당한 이익이나 행태에 대해선 단호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은 "보수정당의 후보까지 재벌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와 엄정한 법집행을 약속한 것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재벌의 구조나 시스템 변화까지 이끌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후보 쪽에서 내놓은 '계열분리명령제'나 문재인 후보의 '기존 순환출자금지 3년 유예' 정도 등이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대안 정도다.

박근혜 후보는 아예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고 신규 순환출자금지만 약속했을 뿐이다. 또 재벌 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꼽혀온 대기업집단법 제정은 제외했다.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재벌개혁의 핵심 대기업집단법, 세계적인 선례가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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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가 대기업집단법을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적인 선례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행 법 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세계적인 선례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가 있다. 독립적인 개별 법률로서 대기업집단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대신 법 조항에 기업집단 자체를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해 놓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이른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콘체른(기업집단)법이다.

그동안 대기업집단법 제정을 주창해 온 김상조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기업집단법이라고 하면 독일 콘체른 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을 비롯해 포르투갈, 이탈리아, 헝가리, 브라질 등에서 유사한 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콘체른 법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식 콘체른 법 역시 별도 법률이 아니다. 대신 독일의 주식회사법(우리나라의 상법에 해당) 내용 가운데 제 3편에 기업집단의 실체를 인정해 놓고, 주주와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 등을 적어놓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집단 내 한 계열사의 주주가 다른 계열사의 거래관계에 대해 정보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독일 주식회사법 131조 제1항). 또 각 계열사 이사회는 회계연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다른 모든 계열사와의 거래관계 보고서를 작성해 감독 이사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제 312조). 이밖에 자회사의 노동자가 자신의 회사 뿐 아니라 모 회사의 이사회에 대표를 파견할수있도록 돼 있다(공동결정법 제5조).

김 교수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의 기업집단법 특징은 개별 기업의 경계를 뛰어넘어 기업집단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그룹차원의 공시와 지배회사의 지시권, 종속회사의 소액주주와 채권자 보호 책임 등을 명문화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집단법이 현행법과 충돌?...현행 공정거래법 등의 규정이 더 충돌 위험

참여연대가 29일 발표한 주요 대선 후보 재벌개혁 정책 비교
 참여연대가 29일 발표한 주요 대선 후보 재벌개혁 정책 비교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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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으로 기업집단의 존재를 인정해 놓고 있지 않다. 대신 공정거래법 등 개별 기업만을 규율 대상으로 삼고 있다. 김 교수는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기업만을 상대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국내 재벌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때는 기업 집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할 때는 개별 기업 차원으로 도피해 버리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집단의 법적 실체를 인정해서 실질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재벌총수와 핵심 참모 조직으로 불리는 비서실, 각 계열사 이사회와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집단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재벌에 대한 종합적인 법적 규율 체계를 만드는 일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10년 정도 장기과제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 캠프 쪽에 기업집단법 제정 취지와 내용을 설명했던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선 단계적으로 국내 경제법에 흩어져 있는 대기업 관련 법률을 하나로 묶어내는 특별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제안한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법'은 현행 공정거래법의 제 3장에 규정돼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억제 부분을 비롯해, 상법과 금융관련 법 등에 들어있는 조항들을 한 곳에 묶는 개념이다. 그는 "공정거래법 3장을 따로 떼어내서 별도 법으로 만들자는 논의는 그동안 계속돼 왔었다"면서 "다른 법률에 있는 재벌관련 규정을 모으고, 최근에 각 캠프에서 내놓고 있는 규제 등을 옮겨놓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 후보가 거부 이유로 밝힌 기업집단법이 기존 법 체계와 충돌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현행 공정거래법의 각종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들이 오히려 다른 법들과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법 3장에 있는 내용이나 최근에 나오는 재벌규제들은 오히려 기존 상법이나 금융관련 법 등에 두어야 할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결국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인식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지 행위만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것으로는 현재의 재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태그:#대기업집단법,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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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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