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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사천시 서동 유람선선착장 주변 유람선길. 바닷물에 침수된 도로를 차량들이 물갈을 가르며 지나고 있다.
 11월 15일 사천시 서동 유람선선착장 주변 유람선길. 바닷물에 침수된 도로를 차량들이 물갈을 가르며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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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해안가 도로가가 물에 잠겼다. 사천시는 해수유입 차단시설을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인 가운데 되풀이되는 피해로 인근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10시께. 사천시 서동 유람선선착장 주변 도로(유람선길)가 두 시간 넘게 물에 잠겼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발생하는 일이었다. 물은 도로경계석 위 인도까지 차 올랐고,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거친 물살을 일으켰다. 마치 9월에 불어 닥친 태풍 '산바'가 시간당 70mm의 비를 퍼부었을 때 모습을 연상했다.

하지만 침수 원인은 정반대였다. 빗물이 우수관을 못 빠져나가 발생한 침수가 아니라 우수관을 통해 바닷물이 역류돼 들어와 일어난 침수였다. 바닷물은 도로 인근의 한 업체 마당으로도 흘러들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 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반복되는 도로 침수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사천시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도로침수... 그렇다면 사천시는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도로를 점령한 바닷물이 인도와 인근 텃밭까지 위협하고 있다.
 도로를 점령한 바닷물이 인도와 인근 텃밭까지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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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한 결과, 사천시는 오래 전부터 서동 만구수산 뒤쪽 마을과 유람선선착장 인근 지역을 상습침수지역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2009년부터 '서부시장 재해위험지 정비사업'에 이 지역을 포함시켜 우수관을 정비하고 배수펌프시설도 갖췄다. 이 지역 공사는 올해 1월 사실상 끝마쳤다.

하지만 주민에 따르면 바닷물에 의한 도로 침수가 끊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서동 주민 정재술(73)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공사를 엉터리로 해서 그렇다. (우수관이) 바닷물과 만나는 곳에 차단막을 설치했는데, 이게 파도에 따라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물이 어찌 안 들어오겠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 따졌는데, 그냥 공사를 끝내버렸다. 게다가 지난 태풍 때 (해수차단막이)떨어져나가 아예 구실을 못한다. 여기에 수억 원을 썼다는데 누가 믿을 수 있겠나?"

정씨는 "사천시에 항의전화를 해도 그때뿐"이라며 격앙된 모습이었다.

우수관 맨홀 뚜껑으로 바닷물이 솟는 모습.
 우수관 맨홀 뚜껑으로 바닷물이 솟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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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와 공사 관계자에 물으니, 정씨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재해위험지 정비사업은 배수로 정비 중심으로 이뤄졌고, 집중호우가 쏟아지더라도 웬만한 빗물은 받아내도록 설계됐지만, 해수유입차단시설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곳에 설치된 수문은 유량 또는 수압에 따라 자동개폐 되는 이른바 '플랩게이트'였다. 즉, 육지부에서 많은 양의 빗물이 바다로 향하면 열렸다가 바닷물 수위가 더 높아지면 닫히게 되는 자동수문이다.

그런데 이 수문의 재질이 FRP로 매우 가벼워서, 파도나 너울이 일렁일 때마다 따라서 들썩거리는 게 문제였다. 말을 바꾸면 이 방식은 바닷물과 만나는 곳에서는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애초에 설계와 시공이 잘못된 셈이었다. 이로 인해 자동수문은 있으나마나한 시설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파도와 함께 수문이 들썩이며 내는 굉음은 또 다른 민원을 낳았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 주민들은 "파도가 심할 때면 '꽝..꽝' 하는 소리를 내질러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서동 주민 정재술 씨가 되풀이되는 도로 침수에도 사천시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서동 주민 정재술 씨가 되풀이되는 도로 침수에도 사천시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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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해 재해위험지 정비사업을 맡은 공사 관계자는 "소음으로 불편을 주는 게 사실이다, 우수관에서 공명현상이 생겨 소리가 커지고, 이게 우수관을 타고 주택가에 퍼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자동수문은 지난여름 태풍 때 망가져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이날 유람선길에 바닷물이 범람한 원인이기도 했다. 사천시에서는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침수 피해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바닷물 수위에 따라 침수 면적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되어 있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책 마련에도 소홀했다. 공사 과정에 플랩게이트가 무용지물임을 확인하고도 지금껏 마땅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게 그 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천포유람선협회에 근무하는 최동환 씨가 플랩게이트 시설물 일부가 뜯겨 나갔음을 설명하고 있다.
 삼천포유람선협회에 근무하는 최동환 씨가 플랩게이트 시설물 일부가 뜯겨 나갔음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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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천시는 플랩게이트가 태풍으로 이미 망가졌음에도 설계 변경을 통한 수문의 교체를 검토하기보다 '하자보수'란 이름으로 시공사 측에 플랩게이트 재시공을 요청한 상태다. 주무부서인 재난관리과에서는 "예산을 확보해 내년쯤 강제수문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또 있다. 지난 15일의 경우, 바닷물이 두 시간 넘게 도로에 차올랐는데도 이를 알리고 주의를 당부하거나 우회하라는 관계기관의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바닷물에는 염분이 있어 쇠를 쉽게 부식시킨다. 따라서 바닷물과 접촉한 자동차의 경우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그런데 이날, 물에 잠긴 도로를 지나면서 자신이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있음을 깨달은 운전자는 얼마나 있었을까?

인근 삼천포유람선협회에 근무하는 최동환씨는 상당수가 모른 채 지나간다고 봤다.

"(물에 잠긴)도로가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이 아니고선 바닷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이야기를 해줘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한 경찰관이 도로침수 현장을 살피고 있다.
 한 경찰관이 도로침수 현장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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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에 확인 결과 '역시나'였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말고는 교통통제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심하긴 사천경찰도 마찬가지. 지난 15일, 한 경찰관이 침수 도로를 살피는 듯 했지만 이내 자리를 떴다.

사천시 도로교통과 관계자는 "도로 침수가 수시로 일어나는지 잘 몰랐다, 앞으로는 경찰에 협조를 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지역주민들은 행정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걱정했다. 예전에 비해 바다 수위가 점점 오르고 있음을 경험을 통해 실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람선길 침수가 일어난 15일은 한 달 중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다는 '한사리'에 해당했고, 전날인 14일에도 침수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거의 매달 한 두 번씩 침수가 발생하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따라서 해안 상습침수지역에 대한 관리가 지금 눈높이가 아닌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한사리였던 15일 오전 10시께. 바닷물 수위가 인근 주차장 높이와 비슷해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한사리였던 15일 오전 10시께. 바닷물 수위가 인근 주차장 높이와 비슷해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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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천, #바닷물, #역류, #침수,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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