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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례'란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쓴 말이었다.
 '국민의례'란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쓴 말이었다.
ⓒ 이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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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11월 17일은 제73회 순국선열의 날로 전국 곳곳에서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이러한 나라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있는데 '국민의례(國民儀禮)'가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민의례를 "공식적인 의식이나 행사에서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따위의 순서로 진행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 위키피디어 사전에는 그 출전을 <영남판교회100년사,霊南坂教会100年史>로 밝히면서 "国民儀礼(こくみんぎれい)とは、日本基督教団が定める儀礼様式のことで、具体的には宮城遥拝、君が代斉唱, 神社参拝」である。" 곧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국민의례란 일본기독교단이 정한 의례의식으로 구체적으로는 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국민의례를 표준국어대사전이 그대로 베끼면서 스리슬쩍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더 황당한 일은 필자가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질문한 것에 국립국어원이 단 답변이다.

"'국위선양'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운 것이 내 심정"

2012년 11월 15일 필자의 국민의례의 어원을 묻는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국립국어원 답변
 2012년 11월 15일 필자의 국민의례의 어원을 묻는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국립국어원 답변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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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립국어원에 국민의례의 어원을 물었다. 그랬더니 국립국어원에서는 "모르겠다, 이러한 질문은 어원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죄송하다." 라는 답을 해왔다.

문제는 국민의례 낱말 하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국위선양이라는 말도 사실은 일본말에서 온 것으로 이 말의 음흉함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우리 동포가 원양 선박의 선장이 된 것도 자랑, 국제적인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는 것도 자랑, 어느 분야에서든지 이름이 났다하면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된다. 우리는 이것을 '국위선양'이라 하지만 이 말은 과거 왜인들이 즐겨 쓰던 말로 군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서 그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운 것이 내 심정이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던 정정화 항일애국지사가 그의 자서전 <장강일기>에서 한 말이다. 국위선양이 어째서 메스꺼울까? '국위선양'이란 말은 표준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왜일까? 그래서 필자는 '국위선양'이란 말을 국립국어원에 질의한 바 있다. 답변 역시 가관이었다. 

2011년 2월 21일 자 필자의 질문에 황당한 답변을 한 국립국어원
 2011년 2월 21일 자 필자의 질문에 황당한 답변을 한 국립국어원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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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말로는 국위+선양이 '국위선양'이란다. 그러나 국위선양이란 말은 명치왕이 1868년 4월 6일에 내린 5개조의 칙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는 '억조안무국위선양어신한(億兆安撫国威宣揚の御宸翰)'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어신한(御宸翰)이란 천황의 자필 문서를 말한다. 5개조 칙어를 종합하면 국위선양이란 한마디로 '명치왕을 중심으로 똑똑한 황국신민이 되어 전 세계에 일본을 알리자'라는 뜻이며 그것을 '국위선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을 우리가 쓴다는 것은 일본천황을 잘 받들어 모시자는 뜻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음흉한 뜻이 숨어 있는 일본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의 계절만 되면 나오는 서정쇄신도 미나미 총독이 조선인 길들이기 5대 지침 중에 나온 말이며 멸사봉공 또한 1939년 4월 19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 보면 "국민정신 앙양"을 위해 '충남 부여에 일본 신궁 창립, 지원병 강화, 황도정신 선양' 따위를 내세우면서 쓰던 말이다.

멸사봉공이란 말을 보면 중국에서는 '극기봉공(克己奉公)' 또는 '염결봉공(廉洁奉公)'이란 한자를 쓰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예전 문헌에는 '멸사봉공'이라 쓰지 않고 '배사향공(背私嚮公)'이라 썼다.

국민의례, 국위선양, 서정쇄신, 멸사봉공 같은 말들은 그 유래를 알면 쓰기가 께름칙한 아니 절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말이라고 아무렇게나 써서 될 일이던가? 이러한 말의 유래를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국가기관에서 안이하게 생각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필자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다룬 책 <사쿠라 훈민정음>에서 이러한 잘못을 지적한 바 있으며 그 제2탄 작업으로 국립국어원의 일본말 어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들어 <표준국어사전을 불태워라>를 곧 펴낼 예정이다. 우리가 써서 안 되는 일본말의 음흉한 의미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73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아직도 국민의례의 깊은 뜻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쓴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민의례, #국위선양, #서정쇄신, #멸사봉공,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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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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