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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눈이 오름 가는 길이다
ⓒ 조남희

기상예보를 보니, 오후 제주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바람도 분명히 거세질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오름에 가기로 마음 먹은 날이다. 채비를 하고 나섰다.  

제주도 남서쪽에 있는 대평리에서 차로 달리기 시작해 5·16도로를 거쳐 우측 비자림 방향인 1112번 도로로 틀었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렸을까. 완연한 가을 길가의 흐드러진 억새풀에 정신이 팔려 피곤한 줄도 몰랐다. 마침내 제주 동북쪽 구좌읍에 있는 용눈이오름의 굽이치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용눈이오름의 곡선이 아름답다
ⓒ 조남희

 탐방로를 따라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 조남희

'즈질체력'에게는 용눈이오름을 추천합니다

가끔 이런 사람을 본다. '제주도를 몇 번 가보긴 했지만 볼 것도 없고 어딜 가도 비싸기만 하던데... 난 별로였어'라고 말하는 사람. 난 그런 사람에게 묻고 싶다. 용눈이오름이나 다랑쉬오름에 가보았냐고.

오름에 올라가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리라 200퍼센트 확신하기 때문이다.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만 비싼 박물관에 들어간 건 아닌가 모르겠다. 제주도에는 박물관이 많다. 초콜릿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 인체 박물관, 테디베어 박물관 등. 심지어 성(性) 박물관은 4~5개나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 많은 박물관들이 왜 제주도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골라 먹는 재미인가?

하긴, 이렇게 말하는 나도 2009년부터 제주도를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본격적으로 오름에 가기 시작한 것은 금년부터다. 그리고 알게 됐다. 제주의 진면목을 보려면 오름에 가야 한다는 것을.

제주도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오름의 왕국'이다.

오름은 '작은 산'을 의미하는 제주말이다. 큰 화산 옆에 붙어 생긴 작은 화산으로, 기생화산이라고도 한다. 오름의 숫자가 많은 만큼, 다양하고 이름난 오름들이 있다. 유명관광지인 산굼부리도 오름인데, 제주 오름 중 굼부리, 즉 분화구가 가장 큰 오름이다. 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조천읍의 거문오름은 상당히 큰 규모이며, 사전예약자에 한하여 자연유산해설가의 안내로만 갈 수 있다.

그러나 나같이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을 좋아하고, '즈질체력'인 사람에게는 부담없이 오를 수 있되 오름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용눈이오름이나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 이들 오름은 제주공항에서도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 용눈이오름 초입의 산담 산담은 돌담을 두른 봉분이다. 제주도에서는 소중한 것에 돌담을 친다.
ⓒ 조남희

 오름은 제주도의 테우리(목동)들이 소와 말에게 풀을 뜯게 하는 곳이었다.
ⓒ 조남희

용눈이오름은 기생화산이 터지면서 여러 개가 포개져 능선과 굼부리가 흘러내려 굽이치는 곡선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꼭 용이 노는 모습 같아서, 혹은 용이 누워있는 것 같다 하여 '용눈이오름'이라 불린다. 

용눈이오름에는 큰 굼부리가 하나, 작은 굼부리가 셋이 있다. 동쪽 비탈은 남동쪽으로 얕게 벌어진 말굽형을 이루고 남서쪽 비탈이 흘러내린 곳엔 곱다랗게 알오름이 딸려있다. 알오름은 오름 속에서 생긴 새끼오름이다.

표고가 250미터 정도로, 탐방로를 따라 정상까지 15분이면 넉넉히 올라갈 수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다. 정상의 분화구도 10분이면 돌 수 있다.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왕릉의 능선을 걷는 것 같다. 숨을 헐떡이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는 착한 오름이지만 처음 가는 이는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터진 광경에 정신줄을 놓고 만다.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파노라마로 찍은 모습이다.
ⓒ 조남희

용눈이 오름서 다짐했다... '제주도에 살아보자고'

이전에도 다른 오름을 안 가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첫사랑 오름은 지난 여름에 만난 용눈이오름이다. 지난여름에 나는 서울을 버리고 제주도로 떠나왔다. 수중에 가진 것 하나 없고, 연고도 없고, 집도 없고, 밥 벌어먹고 살 기술 하나 없는, '직장인 나부랭이'였던 내가 제주도에 살겠다고 굴러들어왔다.

희망과 기대? 물론 새로운 땅에서 그런 부푼 마음이 없으랴만은, 이주를 넘어 '이민'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제주도 정착을 할 수 있을지, 밤마다 심란함에 애꿎은 한라산(소주)만 잡아먹는 날들이었다.

사진작가 故 김영갑씨의 김영갑갤러리라는 곳이 있다. 그가 20년간 오름에 천착하며 찍어온 사진들을 종종 보면서도 좀처럼 오름에 가는 것은 미루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보니 김영갑씨도 따지고 보면 나와 같이 육지에서 온 '육지 것'이었다. 그런 그가 미쳐있던 오름이 대체 어떤지 직접 봐야겠다 싶었다.

그의 사진 중 상당수가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을 찍은 것이다. 나는 여기서 또 비겁하게 다랑쉬오름은 좀 힘들다 하니 우선 용눈이오름에 가기로 했다.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걸 좀 귀찮아하는 나다.

용눈이오름에 처음 올라가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마을을 벗어나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인적없는 꼬불꼬불한 길을 찾아 들어가며, 눈 앞에 봉긋봉긋 솟아있는 오름들을 보면서, 여기가 제주도 맞아? 싶었다. 오름 정상에 올랐을 때, 가까이는 늠름하게 서 있는 다랑쉬 오름의 모습을 시작으로, 저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동서남북의 광경이 막힘없이 파노라마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제주라는 섬이 통째로, 날 것 그대로 삽시간에 내게 뛰어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때 '살자, 이 곳에서 살아보자'라고 결심했다. 그 오름들이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봐야지 싶었다.

오름은 한라산에 오를 때처럼 등산장비를 갖추고 그야말로 마음먹고 가야하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운동화를 신고 능선을 따라 터덜터덜 올라가도 되는 산이다. 그렇게 부담없이 용눈이오름에 오르다 보면 나는 어느새 토닥토닥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마음이 아플 때, 그립고 생각나는 이가 있을 때 나는 등산장비를 챙기고 싶지는 않다. 마음도 힘든데 몸까지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금세 정상에 퍼질러 누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를 들으면서 잠시 옛 기억에 빠질 수 있는 용눈이오름을 찾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믿을 수 없이 시원스런 광경을 보며 그저 흘려보내자고 속삭이고 만다. 용눈이오름은,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여도 탓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용눈이오름에서 보이는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의 모습
ⓒ 조남희

다랑쉬 오름, 그 아름다운 이름에 대하여

용눈이오름에서 내려와 다랑쉬오름을 찾았다. 이 두 오름은 1km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다랑쉬오름은 용눈이와 달리 표고가 382m, 밑지름이 1000여m, 전체 둘레가 3400여m에 이르는 넓고 높은 오름이다. 입구에서 탐방로 정상까지는 600여m로, 걸어서 삼십분 정도 걸린다. 오름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어 보인다 하여 '다랑쉬오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다.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형상 자체가 가진 대칭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뒤로보이는 무수한 오름들의 광경은 피곤을 잊고 정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다랑쉬오름은 구좌읍 세화리와 종달리에 걸쳐 있는데, 구좌는 1932년 1월 1만7천 명이 동원된 대대적 항일운동시위로 이어진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구좌 잠녀(해녀) 300명의 세화리 장날 시위가 시발점이었다.

이를 다룬 현기영의 소설 '바람타는 섬'에는 세화리 해녀 여옥이 동료해녀들과 다랑쉬오름에서 청년사회주의자들과 만나 시위 계획을 세웠던 곳으로 그려졌다. 연모하는 청년 시중을 오랜만에 만나 애틋함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다랑쉬 오름을 올라가며 내려다보이는 광경이다.
ⓒ 조남희

 다랑쉬 오름은 경사가 있지만 탐방로가 잘 되있어서 올라가기 어렵지않다.
ⓒ 조남희

다랑쉬오름을 내려와 상쾌한 마음으로 집에 가고 싶지만, 들러야 할 곳이 남았다. 탐방로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팽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 팽나무 한 그루가 이곳이 바로 다랑쉬 마을 터였음을 알려준다.

다랑쉬 마을 주민들은 제주 4·3사건때 경찰병력이 투입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마을은 전소됐고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그 좁다란 흙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다랑쉬굴로 가는 길이 나온다.

사건 당시, 인근 해안가 마을에서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다랑쉬굴로 숨어들어간 아이 1명과 여성 3명 등을 포함한 11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군경토벌대를 피해 숨어다니던 구좌읍 하도리, 종달리 마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토벌대가 굴입구로 불어넣은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 한다.

 다랑쉬굴 가는 길목. 용눈이 오름이 보인다
ⓒ 조남희

 다랑쉬굴, 이 곳에서 4·3사건때 있었던 희생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 조남희

▲ 다랑쉬굴 일대 다랑쉬굴 일대. 당시 희생자들이 썼던 솥, 항아리등 생활도구는 그대로 남아있는채 굴은 막혔다.
ⓒ 조남희

다랑쉬굴은 근처 오름들의 탐방로와는 달리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잡초만 무성하다. 굴을 바라보고 섰자니 슬픔이 밀려온다. 다랑쉬굴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제주의 센 바람에 넘어져 있다. 돌을 다시 덧대어 이정표를 바로 세우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다랑쉬굴까지는 선택의 문제지만(사실 혼자 비바람속에 다랑쉬 굴에 간다는 건 좀 무서운 일이었다) 이 가을 늦자락에 제주에 간다면 오름에 올라보자. 아니 사시사철 언제라도 좋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제주도에 대해 눈을 뜬다는데 '내 돈 모두와 손모가지'는 못 걸어도 대평리에서의 고등어회 한 접시를 걸겠다.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  


태그:#오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다랑쉬굴, #제주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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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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