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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경찰이 여대생을 성고문, 그것도 수십 차례 했다. 정말 온갖 짓을 다했다. 개인한테는 전자팔찌를 착용한다든지 하면서 가혹한테, 국가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 앞에서 최갑순(54)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울부짖듯 말했다. 최 쇠장은 감정에 북받쳐 그 자리에 앉아 버렸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쓰다듬고서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최 소장은 정성기 경남대 교수, 옥아무개씨와 함께 이날 부산고법 창원재판소에서 민사소송 판결을 받았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였던 이들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는데,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정성기 경남대 교수와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걸어 나오면서, 소송대리인 박미혜 변호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정성기 경남대 교수와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걸어 나오면서, 소송대리인 박미혜 변호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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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교수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마산) 회장이고, 최갑순 소장은 부회장으로 있다.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지난 2011년이었고, 1심인 창원지방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문혜정)는 지난 4월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1심 때 소송을 냈던 피해자는 모두 7명이었는데,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3명만 항소했다. 1심 때 피해자들은 각각 3000만 원씩을 요구했는데, 1심 재판부는 1명한테는 3000만 원을 선고하고 최 소장과 정 교수를 포함한 6명한테는 각 2000만 원,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1000만 원을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때 최 소장과 옥아무개씨는 각 1억원, 정 교수는 5000만원을 요구했다. 부산고법 창원재판소 제2민사부(재판장 조한창)는 이날 최 소장과 정씨에 대해 각 3000만 원, 정 교수에 대해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원고들은 부마민주항쟁 때 경찰에 불법체포되어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했고,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어 손해배상을 구한 것"이라며 "기록의 증거자료를 비춰볼 때 경찰 등의 불법구금과 고문, 가혹행위가 인정된다. 1심 판결에서도 국가의 잘못된 점이 나타났고 거기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인 최갑순 소장과 옥아무개씨에 대해, 재판부는 "1심에서 구금일수와 고문 등의 가혹행위 등을 고려했겠지만, 원고의 피해에 비해 충분하게 반영되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면서 "공동원고였던 다른 피해자들의 형평성과 다른 사건을 고려하고 참작해 금액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과거사정리위 조사결과부터 시효 인정"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 사이 부산·마산 일원에서 일어났던 '유신 저항'의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5월 25일 부마항쟁 조사보고서를 내놓았고, 국가의 잘못을 인정했던 것이다.

부마항쟁 피해와 관련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있어 소멸시효(3년)가 논란이었다. 정부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들은 과거사정리위의 조사 결과 이후부터 시효가 시작되기에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소감을 밝히면서 감정에 북받쳐 울면서 앉아버리자 아들이 쓰다듬어주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소감을 밝히면서 감정에 북받쳐 울면서 앉아버리자 아들이 쓰다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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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2심 재판부 모두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며 "과거사정리위의 진실규명이 있기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본다"고 했던 것이다.

경남대 학생이었던 최갑순 소장은 1979년 10월 18일 마산시위를 하다 경찰에 검거되어 53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당시 그는 검거·조사과정에서 경찰관과 수사관 등으로부터 성추행과 고문을 당했다. 석방 이후 그는 온갖 고문의 고통으로 오랫동안 불면증과 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렸다.

옥아무개씨도 경남대 학생이었는데, 경찰에 체포되어 성추행을 비롯한 온갖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최 소장과 같이 53일 만에 석방되었다. 정성기 교수도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서너 차례 물고문을 당하기로 했다.

"그때는 '국가 도가니'였다... 대법원 상고할 것"

이들은 1·2심 판결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혔다. 최갑순 소장은 "그 때는 '국가도가니'였다. 우리는 돈을 받기 위해 소송을 한 게 아니다. 국가의 잘못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때 퍼스트레이디(박근혜)는 구국청년봉사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유신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했다. 지금은 몇 퍼센트 지지율이 나온다고 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저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저는 30년을 참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라고 덧붙였다.

소송대리인 박미혜 변호사는 "남성인 정성기 교수와 여성인 최갑순 소장의 금액 차이가 1000만 원인데, 성추행 등을 당한 부분에 대한 위자료가 그 정도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1986년에 발생했던 '부천경찰서 권인숙씨성고문사건'의 경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금은 4000만 원이었다. 부마항쟁 여성피해자들은 그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았는데, 비교하면 너무 낮다"고 설명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정성기 경남대 교수와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걸어 나오면서, 소송대리인 박미혜 변호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인 정성기 경남대 교수와 최갑순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이 9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소에서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을 받은 뒤 걸어 나오면서, 소송대리인 박미혜 변호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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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교수는 "우리가 소송을 내면서 소멸시효 때문에 받아들여질 것인지 의문이 있었고, 소송비용 때문에 처음에는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부마항쟁 피해자들이 많은데 증거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아 소송을 못하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부마항쟁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갑순 소장과 정성기 교수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상고할 뜻을 밝혔다.


태그:#부마민주항쟁, #박정희정권, #최갑순 소장, #정성기 교수, #박미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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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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