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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다는 것은 자연이 내린 축복입니다. 우리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고 제주도가 없다면 그 허전함과 서운함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겠습니까... 낯설지만 그것이 내 것의 또 다른 모습 같기 때문에, 말하자면 '낯설어서 더 좋은 곳'입니다. (본문 가운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존지역으로 등재된 우리 국토의 보석 같은 존재 제주도에 몇 번 가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제주에 찾아간 사람은 처음엔 낯선 풍광의 자연에 매료당하게 된다. 다랑쉬 오름에 처음 올랐을 때 마주친 거센 하지만 싱싱한 바람과 주변의 이국적인 풍광, 큰 키의 삼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찬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비자림로, 신묘함이 깃든 신역(神域)으로 느껴지는 사려니 숲... 등에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을 맛본 사람들이 많을 거다.

그렇게 내면 깊은 곳에 꽂혀버린 몇 몇 곳을 잊지 못해 일 년에 한두 번씩 오가다보면 자연스레 이 섬의 문화와 역사, 독특한데다 정겹기까지 한 한 지명 이름들과 제주어, 바다에서 가뿐 듯 신비한 '숨비소리'를 내며 일하는 해녀의 삶 등에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관심을 품게 된다. 이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 - 돌하루방 어디 감수광>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제주 답사기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제주학 입문기'다.

전작들과 달리 한 권을 오롯이 제주에 할애해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 풍속, 역사와 사람 이야기로 풍성하게 채웠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잘 알려진 것들을 비롯해 육지인뿐 아니라 제주 현지인들조차 가까이 두고도 제대로 가 보지 못했던 곳이나 주목받지 못했던 곳들 또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제주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는 훌륭한 기행문이기도 하고 풍성한 내용이 담긴 좋은 여행기이기도 하다.

삼다도에 더한 삼보도(三寶島)의 섬  

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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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1만 8천의 신이 살고 있는 제신(諸神)의 고향이다. 제주도 산에는 산신당(山神堂), 바다에는 해신당(海神堂), 마을에는 본향당이 있다. 2008~9년에 시행한 '제주 신당 조사'에 따르면 모두 554곳으로 추산되었다. (본문 가운데)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생긴 별칭 삼다도에 더해 저자는 제주에는 '삼보(三寶)'가 있다고 말한다. 자연, 민속, 언어가 그것으로 이 세 가지를 모르면 제주도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정말 제주의 자연, 문화, 신앙, 언어, 역사 등을 학자의 깊이있는 시선과 역사적 사실, 적절한 인용, 말하는 것 같은 필치로 전해주는데 귀찮은 줄 모르고 여러 번 밑줄을 긋게 된다. 멋진 자연환경을 가진 섬으로만 여겼던 곳을 귀한 문화유산을 지닌 섬으로 탈바꿈시킨다.

다랑쉬 오름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오름과 아직도 발견되고 있는 동굴들, 이름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곶자왈, 돈지 할망당·갯것 할망당에서 엿볼 수 있는 제주의 신앙, 그리고 제주 해녀의 1/10이 여전히 활동 중인 하도리의 물질 풍경 등에선 제주의 자연과 속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나의 제주도 필수 여행지 목록에 오르기도.

저자의 그런 삼보 중 으뜸가는 장소로 꼽은 곳이 '와흘 본향당'이다. 본향당은 제주 마을마다 있는 신당으로 제주 사람들에게 영혼의 주민센터 같은 곳. 무려 높이가 13m, 둘레가 4m인 400살 먹은 거대한 팽나무 신목 두 그루로 이루어진 신당이다. 귀기로 범벅이 된 소름 돋을 정도로 신령스러운 장소란다. 이렇듯 저자의 깊은 안목이 돋보이는 곳들이, 듣도 보도 못한 풍속과 풍경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제주의 신앙과 민속의 힘을 알 수 있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풍속도 알게 되었다. 신구간은 '손 없는 날'과 비슷한 것으로 제주 신들의 교대기간으로 대한(大寒)후 5일부터 입춘(立春) 전 3일까지 일 주일을 말한다. 제주 신들의 교대기간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너나없이 이때 몰리기 때문에 제주엔 이삿짐센터가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없단다.

고단한 역사와 함께한 제주인의 삶 

어떤 분은 4·3민주항쟁이라고 부르지만 분명한 것은 350명의 남로당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이 1인 3만 명(현재 확인된 희생자만 약 2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적인 킬링 필드, 킬링 아일랜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은 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저 뭔가 억울한 일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지 40년이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그 전모와 진실이 밝혀졌다. 1947년부터 자행된 주민 학살이 한국전쟁 후에도 이어져 1954년에도 자행되었다니 이 사건 이후로 제주도민들이 육지인에 대한 반감이 심해질만도 하겠다.

저자는 제주도를 가장 비극적으로 만든 이 사건을 '외면한다고 잊혀 질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어 강조한다. 제주의 화가 강요배의 이름에서 멋진 다랑쉬 오름 아래 작은 마을에서 북촌리 너븐숭이 애기무덤에서... 4·3사건의 비극과 자취는 제주 어디를 가나 피할 수 없이 그렇게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제주의 고단한 역사는 고려 때부터로, 원나라의 목마장(牧馬場)으로 이용하기 위해 근 100년간 몽골에 예속된 채 식민지 지배를 받는 쓰라린 역사를 겪었다. 인조 7년(1629)에 제주인들의 육지 출입을 금하는 출률금지령도 그런 사례 중 하나. 제주인들이 모진 세금을 견디지 못하여 육지로 떠나버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군역에 동원할 인구가 줄어들자 취한 조치였다. 이 금지령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194년이 지난1823년에야 해제된다. 1945년 제주에서 벌인 일제의 '결7호(決七號) 군사작전'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제주 여행을 갔을 때 바닷가에서 운 좋게 마주친 해녀 할망들의 삶 이야기는 특별히 눈길을 끈다. '제주엔 이렇게 힘든 물질을 하는 해녀만 있고 해남은 왜 없을까?' 궁금했던 내게 조선 인조 때 제주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한다'는 엄명을 내렸다는 등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전복 공납과 일제의 착취에 시달렸던 지난한 해녀의 역사를 통해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이외에도 제주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김만덕 할머니의 일생, 비운의 화가 이중섭,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간 하멜 표류기의 선원들 등 제주에서 숨 쉬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한라산 영실
 저자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한라산 영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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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제주 여행 안내기

제주 사람은 / 한라산이 몽땅 구름에 묻혀야 / 그때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것도 딱 한 번 바라보고 그만둬버린다 / 정작 한라산 전체가 드러나 있는 때는
그 커다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 거기에 한라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괜히 어제오늘 건너온 사람들이 / 해발 몇 미터의 한라산을 어쩌구저쩌구 한다
삼양리 검은 모래야 / 너 또한 한라산이지, 그렇지 
- 정지용의 시집 <그믐밤> 가운데  

저자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곳은 한라산 영실이다. 특히 영실과 어리목 산행길이 만나는 코스와 한라산 윗세오름 올라가는 길이 압권이란다. '영실! 한라산 영실은 안 본 사람은 제주도를 안 본거나 마찬가지'라고 외친다. 면암 최익현, 노산 이은상 등 옛 문인들이 쓴 한라산 기행문을 인용한 글도 낯설지만 새롭게 읽힌다.

제주도 마을의 토지와 주민을 수호해 주는 신을 모시는 와흘 본향당, 제주인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삼성혈, 조천 신촌리에서 3대째 이어가는 덕인당 보리빵집, 제주 4·3사건의 아픔이 묻어있는 곳이며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기도 한 너븐숭이, 오름 중에 으뜸으로 불릴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동부지역의 최고의 오름인 다랑쉬오름, 해녀들이 물질 작업을 끝내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몸을 데우고 옷을 갈아입는 곳인 하도리 해녀불턱 등 생소하지만 흥미롭고 의미 있는 곳들이 풍성하여 좋은 제주 여행 안내서로도 손색이 없다.

한번 빠지면 거기서 나오기 힘든 곳 제주, 이제 가보고 싶은 곳이 다시 또 제주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권-제주편(창비/1만8천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유홍준 지음, 창비(2012)


태그:#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도, #유홍준 , #4.3사건 ,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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