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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안철수는 답답하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너무 정책이 나오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를 권유하기 민망할 때도 있다"고 말 할 정도다.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도 이런 답답함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유권자도 이런데 기자들은 오죽했을까. 개인적으로 아는 한 기자는 최근까지도 "대선 출마 선언은 그렇다 해도 공약이 나오지 않아 정치부 기자들이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5일 전남대 강연 직전, 전남대 총장실에서 독대한 안철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지난 5일 전남대 체육관에서 '2012, 1997년의 새로운 변화가 재현됩니다'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에는 2500명이 이르는 학생 및 시민들이 참여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지난 5일 전남대 체육관에서 '2012, 1997년의 새로운 변화가 재현됩니다'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에는 2500명이 이르는 학생 및 시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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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남대 방문, 강연 전 꼭 만나야 한다

안철수 전남대 강연 소식을 4일에서야 알았다. 지난해까지 전남대학교 신문인 <전대신문>에서 활동했기에 학내 돌아가는 소식엔 나름 '빠삭'했다. 그래서 하루 전날에야 대선 후보가 전남대를 찾는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이젠 닥치고 도서관에 박힐 시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한 학생이 강연 당일인 5일 오전, 페이스북에 "오늘 안철수가 우리 학교에 온다는 게 사실? 학교에선 홍보 안하나?"라는 글을 올렸고 여러 학생들이 공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그 흔한 현수막 하나 없었다.

생각해보니 학교 차원에선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4월 3일에도 전남대를 찾았다. 그땐 교수였고, 지금은 대선 후보이니 현수막 하나 거는 것도 조심스러웠을 거다. 강연 당일인 5일 오전 9시에야 강연 주최 측인 사회과학대학 이름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안내 글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안철수에겐 좋으면서도, 나쁜 기억이 있다. 지난 4월 3일 '안철수 교수'는 강연 시간보다 3시간 앞서 전남대를 방문했다. 마침 그가 <전대신문> 편집국 바로 아래층에 있는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어 우연찮게 '밀착 취재'가 가능했다. 당시 취재를 맡은 <전대신문> 편집국장은 '단독'으로 강연 직전까지 학내 곳곳을 돌며 안철수와 대화를 나눴다.

지난 4월 3일 전남대를 찾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강연보다 3시간 가량 앞서 전남대를 찾은 안철수를 <전대신문> 편집국장이 밀착 취재 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전남대를 찾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강연보다 3시간 가량 앞서 전남대를 찾은 안철수를 <전대신문> 편집국장이 밀착 취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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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안철수의 답변이었다. 도서관에서 이르렀을 때 당시 화두였던 그의 대선출마 여부를 묻자 안철수는 "대선 출마는 내가 결정할 몫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관련기사-안철수 "대선 출마 결정, 내 몫 아니다"). 그는 전날 서울대 강연에서 "내가 만약 사회에 긍정적인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 있으면 그게 설령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 '4월의 기억'을 되새기며 이번 강연 전날인 4일, '강연 전, 미리 학교를 찾은 안철수 잡자'는 계획을 품었다. '야권 단일화'와 관련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안철수와 '단독 만남', 하지만...

오전 10시 학교로 갔다. 안철수 팬클럽인 '안철수와 해피스'에 있는 지인, 강연 자원봉사를 하게 된 후배, 학교 직원, 안철수 캠프에 있는 교수에까지 '안테나'를 세웠다. 안철수의 동선만 파악할 수 있다면 계획의 반은 성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답은 "지난 4월과 다르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목적 없이 대선 후보가 한가로이 학교를 도는 것도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연 시간이 다가와도 강연장엘 가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교 주요 건물들을 배회했다. 부질없었다. 계획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완전히 굳힌 건 오후 1시께. 강연장인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연 시작 23분 전인 오후 1시 37분, 여러 안테나 중 하나에서 정보가 전달됐다. 3분 후인 오후 1시 40분, 총장실에서 안철수와 총장직무대행(지난달 총장 '재선거'가 마무리 된 전남대는 현재 총장이 없다)과 면담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본부 5층에 있는 총장실로 달려갔다.

강연에 앞서 전남대 대학본부 5층 총장실에 방문하기 위해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 안철수 후보(위)와 총장실 안에서 기자와 대화하는 장면.
 강연에 앞서 전남대 대학본부 5층 총장실에 방문하기 위해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 안철수 후보(위)와 총장실 안에서 기자와 대화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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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언론의 기자는 아무도 없었고, 학교 홍보실 직원과 안철수 캠프 측 사진사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전대신문> 후배 사진 기자 한 명이 그 사이에 끼었다.

오후 1시 40분 조금 넘어서 안철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후배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나는 종종 걸음으로 안철수의 뒤를 쫓아 총장실로 함께 들어갔다.

안철수와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 그리고 송경안 전남대 총장직무대행과 보직교수 여럿이 총장실에 둘러앉았다.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의례적인,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갔다.

잠시 대화가 멈칫한 틈을 타 나는 "<전대신문> 학생 기자"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갑자기 웃음바다가 됐다.

이어 안철수 후보에게 "제가 이렇게 좋은 자리에 왔는데 후보께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아마 학생들이 뭐라고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뭐라고 안 할 것 같은데"라며 웃었다. 좌중은 다시 한 번 유쾌해졌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원하는 답을 얻기 힘들 것 같았다.

단일화 문제를 물었다. 대답 대신 안철수 특유의 미소가 돌아왔다. 박선숙 본부장은 나를 향해 "훌륭한 기잡니다"라며 모호한 표현을 했다. 또 한 번 여러 사람은 웃음을 주고받았다. 배석해 있던 한 보직교수는 "손님을 모셔놓고 결례가 될 수 있다"며 나를 제지했다.

그럼에도 하나 더 질문을 했다. '단일화 방법'을 물었다. 이번엔 박 본부장이 "그건 답변 안 하겠습니다. 이따가 강연 들어보세요"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안철수에겐 "뭐라고 안 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만 들었다.

강연서 단일화 발표... 마지막 다리 건넜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5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와 내가 먼저 만나서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 혁신에 대해서 합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연 중 가장 큰, 그리고 가장 긴 박수가 쏟아졌다. 그 박수 소리에 동화돼 유권자로서 시원한 감정이 들었다. 기자로서 총장실에서의 일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강연을 듣고 나온 한 학생은 "구체적인 공약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없었으나, 어쨌든 야권 지지자들의 답답함을 해소해 줘 좋았다"고 평가했다. 강연을 들은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강연은 마친 안철수 후보가 청중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강연은 마친 안철수 후보가 청중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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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안철수의 행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답답함을 느꼈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 출마 여부를 두고 유권자를 답답하게 했고, 대선 출마는 더했다. 출마 선언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안철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답답함의 아이콘'이 됐다. (관련기사-"안철수, 단일화 소극적" - "문재인 사과? 못 믿어")

하지만 돌아보면 안철수는 뭔가를 결정을 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물론 결정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불출마 발표 후 곧바로 박원순 후보 당선에 힘을 실었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또 이번 전남대 강연 직후 6일 문재인-안철수 단독 회동이 성사됐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전남대 강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러 정치평론가들이 '아름다운 단일화는 없다', '후보 단일화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마치 저주라도 하듯 말했지만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보란듯이 담백하고 멋있게 결과를 만들어 국민에게 선사하기를"이라는 글을 남겼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논의 시작을 직접 발표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철수 후보는 돌아갈 수 있는 다리 하나를 불태운 셈이다. 유권자로서 안철수 후보가 '답답함의 아이콘'에서 벗어나는 게 흥미롭다.

원래 모든 대결은 '진검승부'가 재밌는 법이다. 정정당당하되 서로 물러서지 않는 명쾌한 승부를 이번 대선에서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소중한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안철수, #전남대, #야권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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