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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삼합. 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장흥삼합. 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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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예술이네."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이건 뭐,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무늬와 때깔이 고운 일등급 한우만도 고마운데 향긋한 표고버섯에 우유빛깔 고운 자태의 키조개 관자까지 더해진다. 전남 장흥의 명물 '삼합' 이야기이다.

지난 10월 22일 월요일 새벽 4시 30분, 경기도 파주에서 전남 장흥으로 출발하며 일행은 장흥삼합을 화제로 삼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장흥삼합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최근 들어 업무 때문에 지방 출장이 잦다. 하지만 식사는 그 지방의 대표음식 대신 고속도로를 오가며 휴게소에서 때우기 일쑤다. 고된 지방 출장 중 즐거움이라면 단연 향토 음식을 맛보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기필코 장흥삼합을 맛보리라 굳게 다짐한다. 전남 장흥이 옆 동네도 아니고, 언제 다시 찾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곳 아닌가. 

"먼 곳까지 힘들게 오셨으니, 점심 식사는 하시고 올라 가셔야죠. 군내 식당을 예약했으니 함께 가십시다."

업무 협의를 끝마치자, 위점복 장흥고 교감 선생님이 일행에게 설레는 말씀을 건넨다. 식당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탐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장흥교 사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식당일까 조심스레 간판을 살핀다. 순간 '옳다구나' 쾌재를 부른다.

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의 환상조합

장흥삼합.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장흥삼합.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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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가 큰 접시 한가득 푸짐하게 나온다. 붉은색과 선홍색, 하얀색과 우윳빛깔이 어우러진 삼합의 겉모습은 일단 합격. 맛은 어떨까. 달궈진 불판에 소고기를 먼저 올리고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순으로 살짝 데치듯이 구워서 시식 준비 완료. 키조개 관자를 맨 밑에 깐 뒤 그 위에 표고버섯을 놓고 마지막으로 소고기를 얹어서 삼합과의 첫 만남을 시도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맛이 오묘하다. 씹히는 게 전부 소고기인 것도 같고 관자인 것도 같다. 표고버섯이 소고기의 부드러움과 관자의 쫄깃함을 함께 버무려준다.

장흥삼합의 표고버섯은 특이하게도 냉수에 10초 정도 담갔다가 불판에 올린다.
 장흥삼합의 표고버섯은 특이하게도 냉수에 10초 정도 담갔다가 불판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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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버섯을 중간에 넣고 먹으라는 종업원의 설명이 대충 이해된다. 삼합이 어울리는 비율에 따라 표고버섯의 식감은 소고기인 듯 관자인 듯 헷갈린다.

표고버섯은 특이하게도 냉수에 10초 정도 담갔다가 불판에 올린다. 정화수마냥 불판 옆에 웬 물이 놓여있나 했더니 표고버섯을 목욕 재개시키는 용도다.

물기를 머금은 표고버섯은 타지 않으면서 씹을 때 소고기, 관자와 함께 즙을 뿜어낸다. 장흥삼합의 완성은 표고버섯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위아래로 소고기와 키조개 관자에게 보호받을 자격이 충분한 표고버섯이 새롭다.

한우 1++ 600g 꽃등심 3만8천원, 갈비살 4만2천원

한우는 물론이고 키조개와 표고버섯은 그 이름값만큼이나 가격도 비싸다. 당연히 서민들이 자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장흥에서라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삼합의 재료가 모두 장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장흥삼합 밑찬에 딸려 나오는 천엽과 생간.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신선하다.
 장흥삼합 밑찬에 딸려 나오는 천엽과 생간.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신선하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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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한우(6만여 두)가 장흥군민(4만여 명)보다 많을까. 또한 장흥은 서울 광화문의 정남쪽에 자리한 정남진으로 남해 바다와 맞닿아 있다. 신선하고 맛좋은 키조개 공급이 가능한 이유다. 표고버섯 역시 전국 유통량의 12%가량을 차지할 만큼 유명하다.

그 덕분에 장흥삼합은 비싸지 않다. 정육점을 함께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소고기를 비롯해 표고버섯과 관자를 따로따로 구입해 먹을 수 있다. 장흥군의 또 다른 명물인 토요시장 한우판매협의회가 내건 한우 가격을 보면 1++(특1등급)이 600g을 기준으로 부채·갈비살 4만2천 원, 꽃등심 3만8천 원, 업진살 3만7천 원이다.

이날 찾은 식당 역시 정육점이 별도로 있다. 한우 암소 1등급 꽃등심, 갈비살, 업진살이 공히 100g에 7천 원 안쪽이다. 부위와 물량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체로 소고기 1인분 150g을 기준으로 했을 때 1만 원 정도인 셈. 키조개와 모둠버섯 묶음 1만5천 원에 상차림 1인당 3천 원을 지불하면 장흥삼합을 맛볼 수 있다.

오래 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장흥삼합을 먹는 장면이 방송됐었다. 자리를 함께 했던 지인은 "원래 유명했던 장흥삼합이 방송 이후로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고 귀띔한다. 장흥터미널 주변 곳곳에는 이름을 달리한 삼합집들이 줄지어 있다. 지인은 "장흥의 어느 식당을 방문하더라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전라도의 유배 문화가 음식을 발달시켰다?

지인은 "전국을 많이 다녀봤지만 장흥삼합도 그렇고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라며 "나중에 여생을 전라도에서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른 지인이 말을 받는다.

"이게 다 전라도로 유배당했던 선비, 학자들 덕분이에요. 그 양반들이 책 읽으며 하릴 없이 뭐 했겠어요. 까다로운 입맛 맞추느라 아녀자들이 매일 음식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그 바람에 남도 음식이 철 따라 지역 따라 특산물을 이용해서 맛있는 거라고요."

조선시대 도별 유배인수. 전라남도가 압도적 1위다. <제주 유배한시>(임순필, 제주대학교, 1983). 유배 문화가 전라남도의 음식 문화를 발달시켰다는데...
 조선시대 도별 유배인수. 전라남도가 압도적 1위다. <제주 유배한시>(임순필, 제주대학교, 1983). 유배 문화가 전라남도의 음식 문화를 발달시켰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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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동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전라남도는 조선시대 유배지로 압도적인 1위다. 한양에서 멀고 오가기 힘들다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흥 역시 연산군의 외삼촌 윤구를 비롯해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민정중 등의 유배지다. 장흥의 옆 고을인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간 유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서적을 저술한 곳으로 유명하다. 진도와 흑산도 역시 마찬가지.

장흥은 정말 멀었다. 이날 일행은 파주에서 왕복 900km가 넘는 길을 달렸다. 폭풍우를 동반한 날씨 때문에 새벽 시간을 제외하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일행의 다른 승용차는 올라오는 도중 앞바퀴 부근에 번개를 맞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유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죽을 고생을 하며 다녀온 장흥이었다. 그곳에서 맛 본 장흥삼합은 이래저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전남 장흥의 명물, 장흥삼합 장흥삼합에 취해, 술잔에 취해 키조개 관자를 화면에 미처 담지 못했다. 설명 발음도 약간 꼬인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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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흥삼합, #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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