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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굵은 초가 왜 저렇게 많은지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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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과 사위, 아들이 차려준 화려한 환갑상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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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정말 우진엄마가 직접 한 거니?"
"그렇다니깐."

우리 집에서 뛰어난 음식솜씨를 지닌 언니도 딸아이가 차린 상차림을 보고 놀란다. 올케,남동생은 물론 우리 집에 모인 가족친지들이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조카들도 "언니가 진짜 이걸 다 만든 거예요?", "그래 그건 내가 보장한다" 했다.

지난달 27일 딸아이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았다.내가 봐도 상차림이 화려한 것이 먹음직스럽다. 미역국은 물론이요. 칠면조, 고추잡채, 소갈비찜, 대구매운탕, 베이컨말이, 새우전, 주꾸미볶음, 돼지고기볶음 등 가짓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흔히 말하는 퓨전요리가 눈길을 확 잡아당긴다.

내 생일 일주일 전에 딸아이가 집에서 차린다기에 "힘들게 뭐하러 집에서 하니 편하게 나가서 간단히먹자"라고 했다. 말이 좋아 집에서 미역국 끓이고 밥만 한다지만 일을 벌이다보면 어디 그런가? 이것도 해야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할 것같고. 무언가 더 해야지 상차림이 어울릴 것만 같으니 말이다. 장보기부터 재료 다듬고 볶고, 지지고, 끓이고, 또 그 뒷설거지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한 번쯤은 내 손으로 직접 엄마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어. 그런데 나도 잘 몰라 그때 가서 마음이 변하면 나가서 먹던지" 하더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준비한 것이다. 상차림을 본 난 "네가 엄마보다 낫다 이런 걸 언제 다 배웠니?", "배우긴. 사실 이것들은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야. 그런데 엄마 오늘은 보통 생일이 아니고 환갑이라서 이렇게 한거야. 엄마 매번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곤란해" 한다. "그럼 누가 매번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겠어. 한 번이라도 감지덕지이지" 하며 한바탕 웃었다.

몇 년 전엔 남편의 생일상과 시아버지 생일상을 제 집에서 차려 준 적이 있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생일을 돌아가면서 직접 차려 주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아마 시부모님 생신상을 차려드리지 않았더라면 나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양가 부모님 생일상을 한 번쯤은 제 손으로 차려주고 싶은 자식의 마음인 듯 했다.

딸아이는 그 전날 금요일(26일) 동생을 제 집으로 오라고 했다. 하여 딸과 사위, 아들 세 명이서 음식을 장만한 것이다. 물론 딸아이가 제일 많이 고생을 했을 것이다. 회사에 갔다오면 틈틈이 장을 봐다 놨을 것이고 토요일은 아침일찍 일어나 음식을 만들었다. 사위는 메뉴정하는데 한몫 단단히 했고, 아들아이는 새우전과 무채말이 담당을 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흐뭇해졌다. 그렇게 딸아이집에서 만든 음식을 우리집까지 공수해와 상차림을 한 것이다. 우리집에서 하면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27일, 약속시간이 되자 언니, 남동생, 올케, 조카내외, 조카들이 속속 도착을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니, 올케, 나는 딸아이가 만든 음식을 한 가지 한 가지 맛을 보면서 음미했다. 조카애도 "어 언니 언니가 만든 거 간도 잘 맞고 다 맛있다" 하며 흥을 돋구었다. 딸아이가 차려 놓은 음식 옆에 내가 만든 음식을 몇 가지 올려 놓으니 표가 확 난다. 퓨전음식과 옛음식이 함께 있어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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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들이 사준 예쁜 목도리,요즘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것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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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사준 겨울양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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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씩 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아마 내가 제일 크게 부른 것 같다. 촛불은 손자들과 함께 껐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선물증정시간이 되었다. 보통은 봉투를 준비해서 주었다.

그런데 아직 대학생인 두 조카들이 준비했다면서 아지자기한 꽃무늬의 스카프를 내놓는다. "고모 우리가 가면 늘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해요. 생신 축하드리고 건강하세요"라는 짧은 편지와 함께. 생각지도 않은 선물이기에 더욱 감동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스카프를 목에 둘러보고 편지도 큰소리로 읽었다. 요 며칠 추운 날씨에 녀석들이 선물해준 스카프가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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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준비해준 생일 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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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전에는 수영친구들이 깜짝파티를 해주어 나를 다시 한 번 감동시켜 주었다. 카카오스토리 앞면에 보면 생일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알았던 것이다. 난 간단히 점심이나 먹을 줄 알았는데 케이크에 꽃, 선물까지 준비해서 넘치도록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 상급반에 가지도 않았는데 오리발 선물까지. 오리발 낄 때마다 그 친구의 마음이 그려질 것 같다.

내게 환갑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젊어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난 어느새 환갑이 되었다.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고, 선물을 준비하고, 마음을 써준 모든 이들이 새삼 더욱 고맙고 사랑스럽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고 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도 잠시 생각해본다.  요 며칠 아침마다 딸과 친구들에게 받은 꽃바구니에서 번지는 향기가 온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요함 속에서 번지는 그 향기 속에서 나도 문득 은은한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딸아이가 차려준 생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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