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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에게나 진보에게나 너나 없이 이주노동자는 동네북 신세다. 지난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중앙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무성씨가 국민소통위 회의에서 이주노동자를 거론했다. 그의 말을 직접 빌리면 이렇다.

"제가 놀면서 그리스·이태리·스페인·포르투갈 남유럽 4개국을 갔는데 이 나라가 완전히 유럽의 빈국이 됐다. 과잉복지에 빠져서 애를 낳아도 공짜, 아파도 공짜,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가 일하다 팔이 부러져 병원 가서 치료하고 나와도 전부 무료다." 

김무성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이러한 현상이 진보의 탈을 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성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민후보를 자처하는 안철수 후보는 29일 새벽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수진리 고개 인력시장을 찾아 1시간 가량 일용직 건설 노동자와 운수 노동자들을 만났다.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힘드시다는 분들, 개인 노동자임에도 특수고용형태로 레미콘 일을 하니 아파도 개인 비용으로 감당한다는 분들, 4대 보험도 되지 않고 어음 형태로 지불을 받으니 현금이 없다는 분들의 얘기도 와 닿았다."

유력 대선 주자들은 왜 이주노동자 때리나? 

한 사람은 유력 대선주자의 선거를 총괄하는 선대본부장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유력 대선주자 당사자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사회복지에 무임승차하고, 나라를 거덜 내는 과잉복지의 수혜자로 묘사하면서 소통이라 이야기한다. 또 국민 후보를 자처하는 사람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의 삶을 힘들게 하는 가해자라는 인상을 충분히 줄 수 있는 말을 '가슴에 와 닿는다'며 진지하게 던졌다.

내가 유감스러운 점은 최소한 2007년 대선 때는 대선주자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야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례로 MB는 대통령 후보 시절 외국인 지원 단체인 남양주 샬롬의 집을 찾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기회가 되면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은 이주노동자를 입으로 때리고 있다. 때려도 너무 아프게 때리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사회가 외국인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반감이 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보수, 진보, 두 진영으로부터 동네북 신세가 된 이주노동자. 과연 두 진영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은 보편성을 띠고 있고, 일반화할 수 있는 말인지, 정당한 것인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당사자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이주노동자들과 하트를 날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이주노동자들과 하트를 날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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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들의 입장은?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뺏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들까지 원망할지 모른다. "왜 일자리를 자신들에게 주지 않고, 이주노동자에게만 주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들은 할 수 있다면 내국인노동자를 우선 고용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사실상 외국인고용허가제 역시 내국인 고용 노력을 의무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고 한다.

지난 26일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이주노동자 쿼터 5000명에 대한 조기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8월 올해 쿼터가 소진돼 중소업계에서 하반기 외국인 1만 명 증원을 요구하자 내년 쿼터 5만 2000명 중 일부를 앞당긴 것이다.

발표 당일 현장에서 4명의 외국인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모 산업 대표는 "최소한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게 인력을 공급해줘야 하지 않냐"면서 "고용부가 중소업계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3명을 신청했다 대기로 밀린 모 업체 관계자는 "중소업체 대부분 생산직이 50대고 30~40대는 거의 없다. 외국인이 없으면 공장을 못 돌린다. 어쩔 수 없이 불법 체류자까지 쓰는 게 현실이다"라고 답답해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힘든 여건의 중소업체에서 내국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내국인이 주물·도금 등 3D 업종을 기피해 고용부가 우려하는 외국인 일자리 잠식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생산 가능 인구는 오는 2016년 정점에 이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경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국인 인력 유치는 불가피하다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청년실업문제'나 '내국인 고용시장 대체' 등의 문제를 고려하여 외국인력 제도를 가장 보수적으로 운영한다는 고용노동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주노동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다만 그 운영에 있어서 내국인 일자리 잠식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적 고려를 우선하기 때문에, 일부분 노동시장에서의 충돌 혹은 잠식이 있을 수 없지 않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들이 일반화시키듯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 잠식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퇴직금 받으려면 행정심판하라?

어떤 사회든지 사회적 약자일수록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면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과 관련한 재판을 통해 이들의 처한 현실을 살피고, 그를 통해 이들의 입장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난 26일 비자 갱신 차 출국한 이주노동자가 재입국한 경우 근무하던 회사가 파산해도 근로관계가 계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행정심판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6일 이주노동자가 근무하던 건설회사가 파산해 지급받지 못한 퇴직금을 국가로부터 받기 위해 청구한 행정심판에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북부지청이 출국 이전의 근로기간을 체당금 산정에서 제외한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태국인 이주노동자 탁아무개씨 등은 지난 2005년 7월 도로공사와 택지조성공사를 주로 하는 C사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체류기간(3년)의 만료가 다가오자 본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재발급받은 뒤 돌아와 계속 근무하기로 회사와 계약했다. 탁씨 등은 2008년 7월 출국했다가 한 달 뒤 돌아와 같은 곳에서 계속 일했지만, 2010년 8월 회사가 파산했다. 이 과정에서 탁씨는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해 체당금 신청을 했다.

그러나 지방고용노동청은 "최초의 근로계약과 재입국 후의 근로계약은 별개의 고용허가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근로관계가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탁씨가 출국 전 일했던 기간은 체당금 산정 대상이 아니라고 통지했다.

이에 대해 행심위는 "출국 이후 재입국까지 기간이 1∼2개월에 불과하고 이 기간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불가피한 시간"이라며 "비자 갱신 이후 재입국해 계속 근무하기로 계약을 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재입국 이전부터 근로관계가 계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지방고용노동청의 결정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재판이야말로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와 이주노동자 단결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이주노동자 노동절 행사 인종차별 철폐와 이주노동자 단결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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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채권보장법이 있는데도 재판을 해야 했던 이유?

'임금채권보장법'에는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거나 법원의 파산선고 등이 있는 경우 파산선고일로부터 1년 전부터 3년 내의 기간 중에 퇴직한 경우 근로자는 사업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최종 3개월분의 임금과 최종 3년간의 퇴직금 중 일부를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만일 내국인 노동자라면 태국인 탁씨처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재판을 하면서 체당금을 받아내기 위한 재판을 할 이유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단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탁씨 등은 재판을 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의 계약 연장을 위한 일시 출국을 고용 중단으로 보고, 퇴직금 산정에서 제외하는 등의 문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일정기간 근무하다가 재계약을 하고 일시 출국했던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 산정에서 최초 근무를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고용허가제 실시 초기부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반복되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을 적게 주려는 고용주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급여와 퇴직금을 받기 위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상당수는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누릴 권리도 재판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면 차별이 아닌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법의 보호에서마저 공권력에 의해 무시되는 이주노동자 현실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를 복지의 무임승차자로, 내국인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몰아세우는 것은 치졸한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예를 찾아보라면 한 둘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는 산재 인정받으려면 재판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작업 중 허리부상을 당했지만, 산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회사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한 끝에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30대 이주노동자의 예를 들어 보겠다.

지난 2009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온 압둘라(37)씨의 경우다. 부산 사상구에 소재한 모 제조업체에서 4년 동안 일을 해 온 압둘라씨는 지난 6월 작업 중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놓였다. 하지만 회사 측은 압둘라씨에게 "인근 병원의 검사 결과 퇴행성 허리디스크 진단이 나왔다"며 산업재해를 인정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에 대해 압둘라씨는 고향에 있는 아내와 세 명의 어린 딸, 늙은 노부모 앞에 일을 할 수 없는 가장이 되어 돌아갈 수 없다며 외로운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 압둘라씨는 종합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았고, 병원으로부터 "압둘라씨의 부상은 작업 중 부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압둘라씨와 관련 단체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해 이달 초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실상 피해를 구제받기 어렵다. 피해자 본인의 적극적인 권리 주장과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제공해 주는 병원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간혹 이주노동자를 겁박하기 위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임금체불 등의 문제로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 이주노동자 상담 모습 임금체불 등의 문제로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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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지 몰아야

중국동포 이아무개씨는 올해 2월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중 차량의 급정거로 척추와 견갑골, 손가락을 다치는 큰 부상을 당한다. 척추를 고정하고 목에 깁스를 하며 치료를 받던 이씨는 중국동포이긴 하지만,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우리말도 어눌하다. 이런 이씨에게 버스공제조합측에서는 변호사를 통하여 영문도 모르는 서류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마치 모든 것을 합의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치료도 다 끝나지 않은 사람에게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필요함을 통보하면서 아주 소액의 합의금을 받을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계속 치료를 요구했다. 그러자 버스공제조합측은 이씨가 무리한 합의금을 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 병력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합의금을 법원에 공탁 걸어버린다. 이어서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운운하며 피해자를 파렴치한 사람 취급했다.
 
천만다행으로 이씨의 경우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소개받아 재판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고, 교통사고 피해자임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법원은 재판 진행을 위해 병원을 지정하여 검진을 하게 했다. 병원 측에서는 이씨가 버스의 급정거로 인해 척추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 맞고,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됐으며 이는 과거 병력과는 무관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이씨가 사고를 미끼로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려는 파렴치범이 아니고 피해자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한국 물정 모른다고 사람을 몰아세우던 버스공제조합의 모습이나 선거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길 수 있는 언행을 하는 유력정치인들이나 다를 바가 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법의 보호에서마저 공권력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이에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8월 30일 국가별인권상황정례보고(UPR) 검토에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차별, 착취, 저임금과 임금체불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우려한다"고 밝히면서 외국인력제도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는 대한민국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권고이며, 우리나라가 지켜야 할 법률이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 제 6조 1항에서 "헌법에 의해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약이 헌법상 적법하게 체결되면 별도로 이행 입법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국내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이주노동자를 사회복지의 무임승차자로, 내국인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몰아세우는 것은 치졸한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찰이 국제규범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선, 유력 주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위한 선한 공약을 내놓기를 바라지는 못할망정 말로써 이주노동자를 때리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태그:#안철수, #김무성, #박근혜, #이명박,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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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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