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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시 성적인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겨 관계의 유지가 어렵게 됩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대 여성과 남성 956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상황에서 성적의사소통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그 결과를 보여주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함으로써 보다 원활한 성적의사소통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기자말>

 영화 <연애의 목적> 한 장면
ⓒ 싸이더스

대략 7, 8년 전 지하철 역 광고판에서 < Mr.히치 >라는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다. 주인공 윌 스미스가 자신감 넘치면서도 다소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명함을 내밀며 '연애가 어려우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른 사람들의 데이트를 코치하며(정확히 무엇에 대한 성공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공률 100%를 자신하는 주인공이, 과연 자신의 사랑은 성공할 수 있을지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였다.

비슷한 방식으로 소위 연애의 기술이나 남녀의 심리를 분석해준다는 각종 비법들이 세상 사람들을 홀리고(?) 다닌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에는 '(여자를) 픽업'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온라인 사이트와 학원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했고, 성폭력 상담을 하고 있는 본 상담소에도 '연애 기술'을 빙자하여 성폭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 사례들이 들어온다.

사실 데이트나 연애와 같은 '성적인 관계 맺기'는 누군가 일정한 시기에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알아서·눈치껏 정보를 습득하고 알음알음으로 지식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정보들은 대체로 개별 상황과 맥락이 삭제된 '행위의 결과들'이다. 예를 들어 고백할 때 하면 좋은 말이나,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등을 추천해달라는 것들. 그리고 이른바 '스킨십 진도'에 관한 무수한 내용들이다.

성적의사소통, 제안도 거절도 쉽지만은 않은 현실

데이트 관계에 임할 때 우리는 다양한 성적 상황들을 마주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관계와 여타 관계를 구분할 때 '성적인 접촉(스킨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보면, 분명 스킨십은 성적인 관계를 맺음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누구나 관계에 임할 때에는 각자의 욕구와 방식을 투영하기 마련인데, 데이트 관계에서의 스킨십 상황 역시 서로의 기대나 욕구, 방식에서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종종 소통의 어긋남이나 갈등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인 소통의 어긋남은 불안과 분노와 상처를, 때로는 걱정과 두려움을, 또 때로는 당혹감과 성가심과 짜증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 성적인 관계에서 상호적이지 못한 소통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갈등 상황으로 우리를 내몬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는 2012년 7~8월에 걸쳐 '데이트 관계에서의 성적의사소통 경험과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0대 여성과 남성 956명의 설문 응답과 7인의 심층 인터뷰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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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그 중 상대가 나에게 스킨십을 할 때 거절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여성의 60.4%, 남성의 27.1%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관계 유지에 있어 적신호일 수밖에 없다. 상대의 스킨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누구도 유쾌하지 않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제안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거절하지 못한 채 내키지 않는 스킨십에 응해야 하고, 제안을 한 사람으로서는 일방적인 욕구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돼 버린다.

한편, 여러 가지 스킨십 중에서 내가 먼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스킨십은 어떤 것인지를 물었더니 여성과 남성 모두 손잡기(85.9%)-포옹(74.2%)-키스(56.6%)-애무(30.9%)-섹스(25.5%)-전부 불가함(6.2%) 순으로 점차 가능 응답 비율이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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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특히 애무와 섹스를 제안할 수 있다는 응답은 여성과 남성 모두 절반 이하에 그쳤는데, 이 경우 해당 스킨십에 대한 욕구가 생겼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제안하지 못해서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제안 없이 무작정 행동을 이행하는 경우다. 전자는 상대가 먼저 스킨십을 제안하지 않는 한 욕구를 적절하게 실천할 수 없는 수동적인 상태에 놓인다는 점에서, 후자는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신체 접촉을 시도함에 따라 상대방과 당사자 모두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성적의사소통에서 '나'와 '너'는 어디에?

이렇듯 스킨십을 제안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의 배경에는 여전히 성을 금기시하는 태도나 여성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한다. 설문조사 결과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많은 응답이 '상대방이 무안해할까봐'(53.7%)인 것을 보면 성적인 제안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거절 역시 어려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성에 대한 금기나 차별적 인식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스스로의 성적인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당사자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답을 서로의 성적의사소통을 통해 얻기보다는 '눈치'나 '감'에 의존하거나, 개별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부정확한 정보에 기대거나, 상대방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답을 구하려고 함으로써 혼란 속을 헤매곤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갈등의 해결책을 어디에서 찾는가? 어떤 이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인터넷 지식 게시판에 묻기도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찾아보기도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는 혹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와 너'의 소통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면서 정작 '나와 너'를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갈등이 '성적' 갈등이기 때문에 더욱 소극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연애가 쉽지 않고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와 상대방의 성적의사소통 방식을 점검해보기를 권한다. 서로의 욕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안과 거절의 의사표현이 모호하지는 않은지, 상대의 의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성찰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갈등의 상당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제안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 최김하나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fc.womenlink.or.kr) 활동가 입니다.



태그:#성적의사소통,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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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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