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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리 백탑, 국보 39호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끼가 끼지 않고 흰 색을 유지해가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나원리 백탑, 국보 39호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끼가 끼지 않고 흰 색을 유지해가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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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도로를 타고 안강읍까지 들어와 남쪽으로 형산강을 끼고 내려온다. 경북 영천에서 경주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두 기의 '국보' 탑 중에서 정혜사터 13층탑은 이미 보았지만, 나머지 하나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8세기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국보 39호 '나원리 오층석탑'이 그 주인공.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676번지에 있는 이 탑은 특이하게도 온 몸이 하얗다.

탑 앞의 안내판을 읽어보면 이 국보탑은 '경주 부근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는 보기 드물게 아직도 조성 당시의 원형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각 부의 아름다운 비례로 석재의 순백함과 아울러 청신한 기품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끼가 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여 <나원 백탑>'이라고도 불린다.   

8세기 작품 나원리 백탑, '신라 팔괴(八怪)' 중 하나

이끼가 끼지 않는 희귀한 백탑이라는 이유로 이 탑은 옛날부터 '신라 팔괴'로 꼽혀왔다. 신라의 여덟 가지 기이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남산 부석(浮石),
모래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보일 만큼 맑은 남천 도사(倒沙),
여름에 단풍이 지자 최치원이 신라 멸망을 알았다는 계림 황엽(黃葉),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솔에 순이 돋아 불교의 흥성을 알렸다는 백률 송순(松筍),
기러기들도 쉬다가 간다는 형산강과 알천 합류 지점인 금장의 낙안(落雁),
바람이 불면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듯한 경치의 압지 부평(浮萍),
불국사의 모든 것이 다 비치지만 석가탑만 비치지 않는 불국 영지(影池),
천 년이 지나도 이끼가 끼지 않고 흰 탑의 모습을 간직한 나원 백탑(白塔)

나원리 백탑
 나원리 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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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괴 중에서도 나원리 백탑이 으뜸이 아닐까

다른 것은 모두 자연 현상이지만, 나원 백탑만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그런 뜻에서 신라 팔괴(八怪) 중에서도 이 5층석탑이 가장 돋보이는 '괴(怪)'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이 팔괴는 또 다른 기이한 점도 보여준다. 절터 일대를 발굴해본 결과 탑이 금당 뒤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금도 탑 뒤쪽에 근래에 세워진 나원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왜 그렇게 배치를 하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무릇 알 수 없는 일들이 더러 있는 법이다. 그래서 '괴(怪)'다. 어쨌든 나원리 오층석탑은 국보에 걸맞게 아름답다. 심지어 탑은 노을을 받아 흰 색을 잃었을 때에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황혼 무렵이면 탑은 온통 노랗게 변한다. 흰 탑인 까닭에 노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한껏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두 번째 여왕 진덕왕의 무덤

조금 더 내려오면 선덕여왕의 동생인 28대 임금 진덕여왕의 무덤이 오른쪽 산비탈에 숨어 있다. 현곡면 오류리 산 48번지, 사적 24호.

'숨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덕왕의 무덤이 형산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눈에는 띄지 않기 때문이다. 금척 고분군에서 시작하여 법흥왕릉, 무열왕릉, 서악리 고분군, 진흥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 문성왕릉, 흥무대왕릉, 진덕여왕릉까지 기라성 같은 무덤들이 대천과 서천 강변을 따라 죽 이어지는 것을 보면 당대에는 이 묘역 능선이 신라인들에게 멀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어찌 진덕여왕릉은 지금 이토록 홀로 외진 구석에 버려져 있는 듯 숨어 있을까.

진덕여왕릉
 진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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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대신 선덕왕, 진덕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물론 신라인들이 '여'를 넣지 않은 시호를 사용했고, '여'왕에 대한 일반적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김부식 개인은 '여'성이 왕이라는 데 잔뜩 불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당나라 황제가 신라 사신에게 내뱉은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부터 경멸을 당하고 있고, 주인을 잃은 채 도적이 들끓어 편안한 시절이 없다. 내가 나의 친척 한 명을 보내 너희 나라의 임금을 삼겠다' 식의 망언을 자세히 소개한다. 당나라 황제가 '신라 사신의 사람됨이 용렬하여 군사를 요청하고 급한 상황을 호소할 인재가 되지 못함을 개탄'하였다고 장황하게 기술한다. 하지만 당나라 황제의 어불성설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진덕여왕릉
 진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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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왕은 무엇 때문에 유명해졌나

647년부터 654년까지 재위한 진덕여왕. 언니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여왕으로, 본래 이름은 승만이었다. 삼국사기는 진덕왕이 '자태가 곱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7척이었고, 팔을 늘이고 있으면 그 길이가 무릎을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진덕여왕은 엉뚱한 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648년의 일이다. 왕은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원군을 요청했다.

'백제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중략) 천자께 저희들이 조회하는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대국의 군사를 파견하여 흉악한 적들을 없애주지 않으시면 저희 나라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되고 말 터이니, 앞으로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조공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당태종은 이를 받아들였고, 이윽고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 황제의 비위 맞추기에 열성 보인 진덕왕

즉위 3년인 649년에는 중국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즉위 4년에는 처음으로 중국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비단을 짜서 그 위에 무늬를 놓아 당나라 황제에게 바쳤다. 그 무늬가 바로 유명한 '太平頌(태평송)'이다. 

당나라가 일어서니 황제의 업적이 나날이 커지는도다
전쟁은 끝나 천하는 평정되고, 학문으로 다스리니 백세에 이어지리라
(중략) 황제의 명을 거스르는 오랑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순박한 풍속이 골골마다 퍼져나니 좋은 일들이 다투어 일어나는구나
(중략) 삼황과 오제의 덕이 하나가 되어 당 나라를 밝게 비추는도다

김부식은 말한다.

'나랏사람(國人)들이 시조 혁거세부터 진덕왕까지 28대 왕을 성골(聖骨)이라고 불렀으며, 무열왕부터 마지막 임금까지를 진골(眞骨)이라 불렀다.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는 "그 나라(其國)에서는 왕족을 제 1골이라 부르고, 나머지 귀족을 제 2골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덕여왕릉 앞 안내판의 평가를 읽어보자. '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이 국력을 키워 삼국통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임금'이다. 안내판의 해설을 읽으며 답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의견들이 분분할 듯하다.
무궁화 지도 수. 왼쪽 것은 남궁억의 무궁화 지도수 도안에 따른 1950년대 작품(32*44cm)이고, 오른쪽 것은 근대 작품이다(32*40). 중앙정부 국장이던 남궁억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시골로 내려가 교사가 되었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가마니를 덮고 살았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궁화 지도 수를 도안하여 나라 안에 널리 퍼뜨렸다. 그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이끈 죄로 일제의 고문을 받아 60세에 타계한다. 진덕여왕의 '치당태평' 수와 남궁억의 '무궁화 지도' 수는 시간의 차이는 많지만 예술의 주제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사례일 듯하다. 사진은 대구의 '수 박물관' 소장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다.
 무궁화 지도 수. 왼쪽 것은 남궁억의 무궁화 지도수 도안에 따른 1950년대 작품(32*44cm)이고, 오른쪽 것은 근대 작품이다(32*40). 중앙정부 국장이던 남궁억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시골로 내려가 교사가 되었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가마니를 덮고 살았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궁화 지도 수를 도안하여 나라 안에 널리 퍼뜨렸다. 그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이끈 죄로 일제의 고문을 받아 60세에 타계한다. 진덕여왕의 '치당태평' 수와 남궁억의 '무궁화 지도' 수는 시간의 차이는 많지만 예술의 주제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사례일 듯하다. 사진은 대구의 '수 박물관' 소장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다.
ⓒ 박물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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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원리, #진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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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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